"여기서 일하면 고자나 암환자 된다"
    2010년 11월 16일 10: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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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진중공업 해고자이자 민주노총 지도위원인 김진숙 씨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노동과 함께한 그녀의 삶 중 기억에 남는 건 열여덟 살에 들어간 가방 공장 이야기였다.

“우리가 쓰는 수첩, 핸드폰 케이스 이런 게 전부 화공약품 처리한 레쟈 인조가죽이에요. 가방 공장엘 가면 가죽 가공부가 있어요. 가공부에 있는 아이들은 톨루엔, 신나 이런 거를 막 물처럼 조몰락거려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생리를 안 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때 얼마나 무식했냐하면요. 반장한테 옥수수식빵 사다주고 뇌물을 쓰는 거예요. 가공부 보내달라고. 저기 가면 생리 안하니까 거기 가고 싶다고. 그땐 그게 유기용제에 의한 산업재해라는 얘기를 아무도 안 해줬습니다.”

춥고 배고픈 70년대였다. 밥 굶지 않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길 강요받아 건강이나 인권 따위를 챙길 여유가 없던 때였다.

그 후 2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끝낼 수 없는 저항. 

그 후 20년이 지나도 변한 것은 없었다. 1993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엔지니어로 입사한 송창호 씨는 TCE라는 화학약품을 사용했다. 세정제로 쓰이는 TCE는 작업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라인에 TCE가 항상 있었죠. 아예 옆에 두고 썼어요. 잘 녹여주고 잘 닦이니까 정비하는 입장에서는 제일 좋은 약품이었죠. 당시에는 TCE가 뭐로 만들어졌는지 몰랐으니까요.”

TCE라 불리는 트리클로로에틸렌은 급성 독성물질이다. 그 외에도 송창호 씨가 일하는 도금 공정에는 무수히 많은 약품들이 사용됐다. 작업을 하다보면 약품이 종종 옷에 튀었다. 집에 와서 옷을 벗으면 속옷에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약품에 닿으면 손에 낀 고무장갑이 녹았고 바닥에 칠한 페인트가 삭았다.

그곳에서 6년을 일한 송창호 씨는 2008년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는다. 옆 공정에서 일한 동료 김옥이 씨도 백혈병에 걸렸다. 그녀 역시 세척 작업을 위해 TCE를 사용했다.

다시 10년이 흐른다. 변한 것은 없다. 2000년, 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한 신송희 씨는 8라인 클린룸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검사했다. 각 공정에서 불량이 난 웨이퍼들을 재검사 하는 일이었다. 입사 첫날, 작업장에 들어간 송희씨는 ‘어떻게 이런 곳에서 일을 할까’ 하고 놀랐다고 한다. 작업장에는 역겨운 지린내가 진동했다. 웨이퍼에서 나는 냄새였다. 웨이퍼에는 각종 공정에서 처리된 화학약품이 묻어 있었다.

냄새를 못 이겨 일하는 도중에 구토를 하기도 했다. 먼지를 철저하게 차단하는 클린룸이니 함부로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쓰레기통을 뒤져 비닐봉지를 찾아, 그 안에 토사물을 쏟아냈다. 당시 공장에 소문이 돌았다. “여기서 계속 일하면 고자가 되거나 암에 걸린다.”

엔지니어들이 농담처럼 말하곤 했지만 불안했다. 그러나 약품이나 설비에 대해 관리자나 엔지니어들에게 물으면 “지금 하는 일이나 잘 해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그럴 때면 자신이 대학을 나오지 않고 생산직 일을 하니 무시당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위축돼 더는 묻지 못했다.

안전 교육도 없었다. 대신 그녀는 다른 걸 배웠다. ‘웨이퍼는 비싸다’는 교육이었다.
“설비 안에 들어간 웨이퍼가 안 나올 때가 있어요. 웨이퍼가 비싸서 깨트리면 안 되는데. 깨지게 되면 사유서도 써야 하고. 안 깨지게 스크래치 안 나게 해야 하는데 매번 설비 엔지니어를 부를 수도 없고, 부르면 한두 시간 뒤에 오는데 그럼 물량이 잔뜩 쌓이거든요. 교대하는 사람에게 그 많은 걸 넘기기 너무 미안하고 그러니까 그냥 제가 손으로 직접 꺼내서 고치기도 하고 그랬어요.”

냄새만 맡아도 고역인 웨이퍼를 손으로 직접 만져야 했다. 코와 피부로 흡수되는 약품이 무엇인지 몰라도, 기계가 비싸고 웨이퍼가 귀하고 물량을 빨리 빼야한다는 것은 알았다. 일은 힘들고 몸은 말라갔다. 결국 신송희 씨는 6년 동안 다닌 삼성반도체를 퇴사한다. 그리고 2009년 유방암 2기 판정을 받는다.

유해물질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가 병에 걸린 사람들의 제보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신기한 점은 제보의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각자 다른 곳에 살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인데 똑같은 이야기가, 한 곳을 향해 가고 있어요.”
화학약품 노출이 많았고,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고, 화학물질 이름도 몰랐고, 하혈을 하거나 생리를 하지 않는 일이 빈번했고, 몸이 안 좋아 결국 퇴사를 하게 됐다. 이것이 그/녀들의 일관된 진술이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거대한 이윤을 낳는 공장. 하지만 노동자들의 꿈과 건강을 살해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그녀들은 머리가 아프고 하혈을 하고 체중이 줄고 소화가 안 됐다. 그러나 아픈 원인을 몰랐다. 화학약품을 많이 쓰는 게 불안하긴 했지만, 약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가 있다. 화학물질을 관리한, 바로 삼성반도체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삼성은 말한다.

‘반도체 공장 내에서 사용하는 화학약품 중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해물질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경인일보), ‘백혈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물질로 알려진 벤젠과 같은 물질은 아예 쓰지도 않는다’(뉴스포스트)

어떠한 유해 물질도 사용하지 않으며 보호장비도 완벽하게 지급한다는 것이 삼성의 주장이다. 반도체 산업은 백혈병과 무관하며, 2만7천여 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공장이니 자연발생적으로 백혈병에 걸리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삼성은 자체적으로 유해물질 노출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를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맡겼다. 올해 9월 그 결과가 발표됐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의 화학물질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조사를 한 5라인에서 사용되고 있는 99종의 화학물질 중 59종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등 관리가 부실했다. 10종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성분자료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발표가 있은 후, 삼성은 해명 자료를 냈다. 서울대에서 발표한 결과 중 일부는 사실이 아니며,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로부터 빚어진 오해라고 했다.

그러나 앞서 5월에는 ‘한겨레21’을 통해 <환경수첩>이 공개됐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약품이 기록된 환경수첩은 97년, 기흥공장 엔지니어들에게 배포된 것이다. 수첩에는 송창호 씨가 사용한 TCE를 비롯한 시너, 아르신, 황산 등 6종의 발암물질과 수십 개의 유해물질이 적혀 있다.

내가 사용한 물질이 무엇인지

2010년, 어느 날 반올림 온라인 카페에 제보 하나가 들어왔다.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요 몇 년 사이 백혈병 문제가 화두가 된 이후로 회사에서 이것저것 많이 바꾸고 있습니다. 백혈병 문제가 터졌을 때, 회사와 연관 없다는 말로 외부에 대응하면서 내부로는 기존에 없던 규칙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파티클(먼지) 측면에 좋다는 이유로 얼마 전부터는 IPA 용액이 메탄올 용액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때 느꼈습니다. 파티클 때문에 바꾼 게 아니고 ‘그 전에 사용했던 IPA 용액이 건강에 많이 안 좋았구나’라구요."

가방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옥수수식빵을 내밀며 자신의 건강을 버린 지 40여년, 이제 막연할지라도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의 유해성을 인식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직업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고 다친 지 수십 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반올림’이 만들어진 지 3년째다.

이제 몇십 년이 남은 걸까. 노동자가 자신이 사용하는 작업물질의 이름과 성분, 유해성을 아는 것이 당연해질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현재 유해물질을 둘러싼 삼성과 백혈병 피해자들의 진실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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