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 전, 엄혹한 세월 함께 한 '동지'
    By 나난
        2010년 10월 29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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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회에 이어서 96년 이야기를 좀 더 하려 합니다. 이 상황에서도 우스운 에피소드가 몇 개 있었습니다. 연행이 되면서 경찰들은 출판사 ‘민맥’ 사무실과 ‘꽃다지’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습니다. 지금은 명확하게 저에 해당하는 물건들만 압수수색을 하라고 버티고 싸울 수 있지만, 처음 당하는 일이다 보니 그냥 넋 놓고 이것저것 가져가는 것을 지켜만 봤겠지요.

    책상 서랍과 책꽂이를 뒤져 이것저것 챙기더니 급기야 컴퓨터 본체와 자판, 모니터, 프린터까지 가지고 갔다는 겁니다. 지켜보던 사람들 눈에도 그것들을 왜 가져가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내용을 보여준 모니터와 프린터, 그리고 뭔가를 입력해 준 자판들이 무엇을 입출력하고 보여줬는지 취조하려는 모양이었겠지만, 그들에게서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자 정작 본체는 연결도 하지 않고 플로피 디스켓에 있는 내용들만 잔뜩 출력을 해왔더군요.

    근데 플로피 디스켓이라는 게 이사람 저사람이 들고 다니다가 돌고 도는 물건이던 때라 저도 알 수 없는 다른 단체들 자료나 개인들의 자료까지 잔뜩 있어서 참으로 난감했더랬습니다. 그 시절 모 통신사의 한총련 CUG를 폐쇄하라는 명령을 듣고 경찰들이 그 회사를 찾아가 어느 방이 한총련 방이냐고 했다는 기사를 시사월간지에서 본 적이 있었기에 그저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한총련 방은 어디?

    또 하나 어이없었던 일은 검찰 조사 내용 중에 ‘민맥’에서 출판된 서적들에 대한 심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 난 그 책들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했더니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남편에게 의식화 당했을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제가 지난 회 때 이야기한 것처럼 남편은 사실 전혀 운동의 경험이 없는 사람입니다.

    처음 93년 범민족대회 무대 미술을 도와줄 때도 총 기획자한테 한참 설명을 듣고 난 후 제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범대회가 무슨 대회야? 남한 호랑이랑 북한 호랑이 데려다 싸움시키는 건가?”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툭하면 물었습니다. “민가협은 무슨 뜻이냐”고, “사람이름이냐”고, “가노방(가자 노동해방의 줄임말)은 무슨 가게 이름이냐, 열사는 무슨 뜻이냐” 등등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 제가 남편에게 의식화 당했다 하니 기가 막혀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남편이 제가 구속이 되자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마나 막막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한겨레신문 기자와 민가협에 연락을 했답니다. 그러자 민가협 상근자들과 몇몇 사람들이 모두 장안동 대공분실 앞으로 바로 모였답니다. 장안동 대공분실 철문 앞에서 임신 8개월인 한 여성이 깡통을 들고와 문을 마구 두들기고 발로 걷어차며 당장 석방하라고 외치더랍니다.

    그 여성간사는 남편의 절친한 친구의 부인이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쩔까 하는 생각에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 존경스럽기도 했답니다. 정작 자신은 소리도 나오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런 후에 같이 노래를 부르고 해산을 했는데, 그 노래가 <동지>였습니다.

    가슴에 와닿은 노래, ‘동지’

    남편은 <동지>라는 노래가 그렇게 아름답고 가슴에 와 닿는 노래인 걸 처음 느꼈다지요. 결혼 전부터 꽃다지 공연이나 집회에서 그 노래를 많이 들었지만, 그 노래의 가사가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로 들리면서 우리들의 노래가 얼마나 절절하고, 각 상황마다의 아픔이나 동지에 대한 믿음이 담겨있는지를 그때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남편은 매일매일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꽃다지 사무실에서 기거하며 탑골에 가고, 또 면회를 오고, 민가협 집회에 가고, 꽃다지 공연을 같이 다녔습니다. 면회를 와서는 그날그날 있었던 일과 변호사(아, 그 때 제 변호를 맡아주셨던 백승헌 변호사님께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에게 들은 사건의 진척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50일 만에 보석으로 나왔는데, 그날은 같이 구속이 된 원용호 대표의 결혼 10여 년 만에 얻은 첫아이 100일이었고, 또 석방된 이틀 뒤엔 친정어머니의 회갑이 있었지요. 석방되기 전날 남편이 면회를 와서 우울한 표정으로 내일은 면회를 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매일 와준 것도 고마운데, 괜찮다고 했더니 금새 장난스런 웃음을 지면서 내일 석방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저의 고생도 고생이지만 밖에서 저보다 더 힘겨운 투쟁을 했을 모든 이들에게 감사했고, 또 안도했지요. 석방이 되던 날 서울구치소 앞에는 꽃다지 식구들과 많은 지인들이 모여 저와 원용호 대표를 맞아주었고, 다음날 탑골공원에서는 석방 환영식과 그간 지지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지막 거리공연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꽃다지 거리공연에 큰 도움을 주셨던 탑골 공원 어르신들께도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재판이 계속되던 4월에 꽃다지 봄 정기 콘서트가 시청 앞 세실극장에서 열렸고 공연 중 한 부분에 제가 무대에 출연해서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드릴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시부모님들도 공연에 오셨고, 연일 공연장은 꽃다지를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이 빼곡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약 1주일간의 콘서트라 매회 무대에 올라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자리였지만, 매번 다른 분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새로운 느낌이었고, 그 때마다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거르지 않는 결혼기념일 여행

    남편은 아직도 결혼기념일에 여행을 가지 않으면 잡혀갈지도 모른다며 꼭 여행을 가자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고, 또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결혼기념일 여행을 가지요. 또 그 당시 제가 뜨개질로 시아버님 덧신을 짜고 있었는데, 제가 다시 뜨개질을 하려 하면 불길하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객관적으로 전혀 상관이 없는 일조차도 다 그런 사건으로 연결이 되게끔 남편의 몸과 머리에 각인이 된 것이겠지요.

    15년가량이 지났지만 아직도 몇몇 노래를 들으면 그 때 생각이 납니다. 어떤 상황에 접했을 때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고, 또 어떤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사람, 기억, 느낌이 있지요. 여러분 모두에게도 그런 노래들이 많길 바랍니다. 남편에게 노래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준 <동지>를 같이 들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냥 부르는 노래도 좋지만 좀 아쉬운 감이 있으니 꽃다지 대합창 편성으로 듣겠습니다.

       
      

     

    <동지>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딪혀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보았다
    살을 에는 밤, 고통 받는 밤,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며 우린 맞섰다
    사랑 영원한 사랑 변치 않을 동지여
    사랑 영원한 사랑 너는 나의 동지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가 먼저 죽는다 해도
    그 뜻은 반드시 이루리라 승리하리라
    통일되는 날 해방되는 날
    희망찬 내일위해 싸우며 우린 맞섰다
    투쟁 영원한 투쟁 변치 않을 동지여
    투쟁 영원한 투쟁 너는 나의 동지

    *음원출처 : 노동가요 공식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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