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도우미, 솔라나스 & 박칼린
    2010년 09월 29일 08: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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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추석이라니. 가뜩이나 바랄 건, 보송보송하고 간즈러운 햇살과 맑은 보름달 뿐이거늘. 나이 먹는 설움 중의 하나는, 더 이상 추석이나 크리스마스, 생일이 다가와도, 폴짝 뛸 만큼 기쁜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된다는 거다.

어릴 적엔 왜 내 생일에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만화를 하지 않는 건지를 의아해 할 만큼, 분명히 내 세상인 날들이 있었고, 축제와 축제가 아닌 날의 빛깔은 확연히 달라 보였건만. 해를 거듭할수록, 눈이 내리지 않는 크리스마스는 물론, 상에 미역국조차 깜빡 잊고 올라오지 않는 생일날도 심심치 않게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우린 터벅터벅 나이를 먹는다.

파리에도 추석 보름달이 뜨는구나

추석이나 설날, 설렘 대신 두려움들이 차츰 밀려온다면, 우린 오갈 데 없는 어른이 된 거다. 서로의 정상성과 안위, 혹은 지나친 성장을 가족의 이름으로 측정하고 견제하면서 일 년에 몇 번씩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로서의 표준화 정기검진을 받노라면, 온 몸에 비수처럼 꽂아두던 자아가 전 부치는 기름 냄새와 함께 허공 속에 말려 사라져 버린다.

제사도 안 지내는 콩가루 집안에서 자랐건만, 추석 따위가 그저 퐁당 건너 뛰어버리고 싶은 부산스러움의 덩어리로 다가올 무렵, 그러니까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발견한 추석을 즐기는 방법은, 밝고도 고운 보름달과 눈을 맞추는 일이었다.

파리에도 같은 날에 같은 모양의 달이 뜬다는… 당연한 사실을 잠시 신기해하며, 며칠 전, 현세구복적인 소원을 몇 개 빌어보긴 했다. 한국에서 보냈던 지난 8월, 폭우 속에 지하철이 끊기고, 거리의 공중전화 박스들이 몸져눕던 그날, 하필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가야 했기에, 빗속에서 안 잡히는 택시를 잡으려 몸과 마음을 축냈던 나는, 폭우가 휩쓸고 가버린, 기도 안차는 추석의 광경을 멀리서 보며 계속 심란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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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내와 남의 여자

   
  ▲솔라나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나는 앤디워홀을 쏘았다> 포스터

그 축축하고도 씁쓸한 추석연휴는 하나의 아연한 죽음이 인터넷 공간 위에 둥둥 떠오르며 섬뜩하게 마무리 된다. 실로 쌍팔년도에나 들어보던 “야타”의 수법으로 여자를 차에 태운 뒤, 집에 가서 한잔 나누던 남자.

여자의 직업이 노래방 도우미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를 힐난하고, 거기에 “그럼 네 엄마는 얼마나 다를 것 같냐”는 당돌한 발언으로 맞받아치자, 그녀를 죽였다. 단순히 목 졸라 죽인 게 아니라, 약을 먹이고 욕조에 물을 틀어 익사시켰다.

이 대목에서 “남자들에게 어머니는 성녀이며, 아내는 다스려야할 철부지 계집이고, 남의 여자들은 창녀일 뿐”이라고 말한 발레리 솔라나스(Valerie Solanas)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 살인도 불사한 대단한 효자인 이 남자. 거리에서 쉽사리 유혹한 여자를 집에 데려와 술을 마시면서, 남자들에게 유흥을 베푸는(바로 지금 그녀가 그를 위해 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직업을 폄하하고, 당신의 어머니도 나와 별로 다를 게 없는 “성녀이며 계집이며 창녀인 운명의 여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여자를 죽인다. 이 남자는, 한 여자에게 몇 가지 다른 기준을 순식간에 들이대고 있는 것인가. 그의 모순은 오직 그만의 것인가.

솔라나스, 앤디 워홀을 쏜 여인

발레리 솔라나스는 1936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열살 때 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 다음해 부모의 이혼으로 버려진 후, 알콜중독자인 할아버지에게서 양육되다 15살에 또 다시 버려진다. 그 후, 매춘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대학에서 올A의 성적으로 심리학 공부를 마친다.

이후 몸을 팔거나 동냥을 하면서 미국 전역을 여행한다. 서른 살, <Up your ass>라는 희곡을 쓰고, 31살, 앤디 워홀을 만나 그녀의 희곡으로 그가 작품을 하기를 희망하며 희곡을 내민다. 워홀은 그 희곡에 흥미를 느꼈고, 답할 것을 약속했으나, 이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이윽고 그 희곡을 분실했다.

67년, 솔라나스는 페미니스트들에게 고전으로 남은 SCUM(남자근절클럽) 선언문을 작성했다. 68년, 솔라나스는 희곡을 분실하고 돌려주지 않은 워홀을 향해 총을 쏘았고, 세 번째 총알이 워홀의 몸을 스쳐가며 치명적 상처를 입혔다. 3년을 감옥에서 보냈던 솔라나스는 이후 비극적인 삶을 살다가 52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그녀의 원고는 수년 뒤, 워홀의 팩토리 내, 조명장비 상자 구석에서 발견된다.

솔라나스는 SCUM선언문에서, “사회는 여성에게 순하며, 착하게 자라도록 요구하는 한 편, 남자들은 모험심 가득하고 튼튼한 사나이로 자랄 것을 요구한다. 사회가 여성에게 부드러울 것을 요구할수록, 두 성 간의 차이를 강조하면 할수록, 사회는 동시에 남자들이 더 폭력적이 되기를 부추긴다. 그들이 공격적이 될수록, 그들은 점점 더 욕구불만에 쌓일 것이며, 그들이 불만에 가득 찰수록, 그들은 점점 더 여자들을 창녀처럼 대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재판에서 그녀는 워홀에게 총을 겨눈 이유에 대해, “그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어린시절부터 뿌리뽑힌 들풀처럼, 짓밟히고 거리에 팽개쳐졌던 솔라나스가 겨눈 총은, 어쩌면 그녀를 끊임없이 뒤흔들어 대던, 남성중심의 이 버거운 세상 전체를 향한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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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박칼린

축축했건, 보송했건, 추석은 결혼이란 이름으로 엮인 남자와 여자가, 그들이 처한 계급의 차이를 확연히 직시하게 되는 시간이다. 제 아무리 진보와 합리를 뒤집어쓰고 사는 남자도, 감히 성녀인 어머니 앞에서 하녀 혹은 철없는 계집에 지나지 않는 아내가 고개를 드는 꼴은 용납하지 않는다.

여자는 그녀의 자존과 신념이 남자의 동의 하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것임을 확인하는 열패감에 사로잡히고… 추석을 전후해서 주고받는 한국의 여자들과의 메일 속에는, 그래서 여전히 떨리고 있는 미세한 분노의 여진과 자포자기로 무너져 내린 가슴의 포연들이 뒤섞여 있다.

박칼린, 감동의 복판에 있는 것들

성녀도 하녀도 창녀도 아닌 그들과 같은 인격을 지닌 존재로서, 여자를 바라볼 때, 남자들을 비로소 손을 맞잡고 세상을 함께 구성해나갈 든든한 한쪽의 파트너인 여자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어머니도, 아내도, 길에서 만난 그 어떤 여자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예능프로그램 하나로, 갑자기 대한민국이 열광하는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른 박칼린. 그녀는 성녀도 하녀도 창녀도 아닌 하나의 건강한 열정을 품은 인간으로서 세상에 다가갔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녀의 태도 속에는 그 어떤 성적, 민족적 편견도 얄팍한 예능코드, 저명한 예술가의 허세도 없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보이는, 오로지 자신의 신념과 인간과 음악에 대한 사랑에만 굳게 발 딛고 서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이 맑게 빛났다.

박칼린이라는 인간의 강렬한 아름다움과 시청자들이 만나게 된 과정은 부산한 절차들, 맛난 음식들을 다 저리 밀치고, 오직 밝게 빛나는 영롱한 달빛 속에서 가장 큰 위로를 찾게 되는 추석의 정취 같다.

그러나 “모두가 좋다고 하는데, 왜 나는 솔로인가”라고 자문하는 그녀의 단단하지만 약간은 쓸쓸한 눈빛은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한 인간이 현실의 삶 속에서 또한 행복한 여성이 되기는 힘들게 하는 우리사회의 모순을 슬쩍 드러낸다. 여성에게 더도 말고, 인간을 허하라. 그녀들의 탄환이 어느 날 과녁을 제대로 맞추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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