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면목동 29세 청춘들의 자화상
    2010년 09월 28일 08: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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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당일, 29살 동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예전 같으면 결혼할 나이지만 다들 변변찮게 살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고향에 내려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간만에 만들어진 술자리

가장 가방끈이 길어서 가장 출세할 것 같았지만 여전히 돈도 안 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 전문대에서 미용을 전공으로 배웠으나 신용대출 업체에 다니는 S. 전문대에서 부동산학과를 나와서 ‘프로젝트 부동산’에 2년 다니다가 땅을 못 팔아서 부동산 감정평가사를 준비하고 있는 B.

학교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어서 연예인이 많이 다닌다는 4년제 대학의 연극영화과로 갔으나 이미 데뷔시기를 놓쳐서 B와 함께 부동산 감정평가사를 준비하고 있는 C. 가장 철이 일찍 들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컴퓨터 업체에 취직한 J. 모두다 돈에 주렸고, 술에 주린 상태였다.

한 사람 당 만 원씩 모아서 맥주 한 잔을 하려고 해도 생각보다 쉽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나마 이번 추석에는 전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굴지의 대기업’의 지방 공장에 들어가서 결혼도 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 L이 집으로 올라와서 자리가 마련된 것이었다.

7개월 된 L의 딸내미 재롱에 녀석들은 굉장히 신기해했다. 뛰듯이 빠르게 기어 다니는 아이가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통에 정신이 없었지만 모두는 한 번씩 아기를 안아보자면서 담배에 절은 얼굴을 비비대다가, 뽀뽀하려고 하다가 L의 아내에게 혼이 나곤 한다. 하여간 아기는 좋아하는 것 같으니 혼기가 찼는지도 모르겠다.

L의 부모는 술상을 봐주셨다. 소시지와 햄, 게맛살 부침(물론 이것들은 제사상에 올라갔을 것이다), 오징어와 새우에 튀김옷을 입힌 탕수오징어와 탕수새우. 맥주 페트 몇 개를 마시다가, 소주를 좀 마시고, 조금 지나니까 제사상에 올라갔던 인삼주 비슷한 것이 상에 올라온다. 어른 대접 받는다고 서로 좋아한다.

술이 떨어지자 나는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가서 지난번에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았던 양주 한 병을 가져왔다. 양주가 간당간당하자 L은 선심 쓴다며 맥주 페트 몇 개를 더 사왔고, 안주가 떨어질 때가 되면 B가 쏜다며 보쌈을 시키고, 조금 지나 또 안주가 떨어지자 그나마 월급을 받는 S가 치킨을 시켰다.

   
  ▲ 그림 = 이창우

우리들의 안주 거리

저녁 6시에 시작된 술자리는 점점 무르익고, 이미 저녁을 지나 밤을 경유해 새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의 안주거리 소재는 이런 거였다.

S는 가장 가방끈이 기니까 뭐든 알거라며 나에게 ‘중국어 학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나는 중국어를 배운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하자, S는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씨발놈아!”라며 욕을 한다. 그러더니 S는 요즘 신용대출 회사에서 수금이 잘 안 되어서 언제 잘릴 지도 모르고, 이래가지고 어디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도대체 전망이 안 보인다며 하소연을 한다.

중국에 여자 친구의 삼촌이 있는데, 가서 중국어 면접이라도 어떻게 대충 보면 월급이야 여기보다는 더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 결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언젠가 보았던 중국에서 늦깎이로 진출했던 한국 기업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야반도주하고 있다는 기사가 떠오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회사가 강남이니 근처에 있는 학원을 물어봐주마, 하고 이야기는 멈춘다. 담배 한 개비가 타올랐다가 스러진다.

B는 독서실 총무를 하면서 PC방 알바도 한다. 나는 PC방 알바는 그만하고 시험 볼 때까지는 독서실 총무만 하면서 공부할 시간을 늘리라고 말했다. B는 그러면 생활비가 안 빠진다며 집에서 안 그래도 임용고시 준비하는 누나 때문에 돈을 타서 쓸 수가 없다고 말한다.

PC방에서 하루 6시간 일하고, 독서실 총무 보면서 이래저래 시달리면서 공부하면 지금 대학에서 1~2학년 때 공인중개사 따고, 3~4학년 때 감정평가사 준비하면서 따는, 파릇파릇한 애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하려다가, 그냥 소주 한 잔을 ‘짠’하면서 “그래. 씨발.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하고 말았다.

친구가 아직 졸업을 못한 이유

옆에 있던 같이 준비하는 C는 추석 대목에 대형 마트에서 월급 ‘따블’로 쳐준다고 알바하고 돌아와서인지 온 지 얼마 되지 못해 뻗어버린다. 생각해보면 C가 졸업을 아직 못하고 있는 이유도 감정평가사 준비 때문이 아니라 알바로 학비를 메우다보니 그랬던 거였다.

모두 담배 피우러 마당에 나와 있는데, J는 다음 번 상여금을 받으면 차를 뽑겠다고 L의 차를 보면서 말한다. L은 새 차 사지 말고 자기 차를 사라면서 “싸게 해줄게”라고 말한다. L은 도무지 아이를 키우는 견적이 안 나온다며, 서울에서 애 키웠으면 죽을 뻔 했다고 말한다. 한 달에 150만 원이 우습게 들어간다고 말한다.

150만 원 액수의 ‘거대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150만 원을 한 달에 내면서도 다른 생활의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에 백수 일변인 녀석들은 한 번 더 기가 죽는다. 따져보니 돈 천 만원을 모아놓은 사람이 우리 중에 J와 L밖에 없었다. S도 천만 원을 모으지 못했다. 결혼하는데 돈 1억은 있어야 한다고 누가 내뱉자 헛헛한 표정으로 담배만 한 개비 입에 더 문다. “로또 맞으면 씨발! 그냥!”하고 누군가 말하자 다들 웃는다.

새벽이 다 되어가자 늘 ‘착하게’ 말하는 B가 내게 말한다. “넌 그래도 공부도 많이 했고, 아는 것도 많으니까 꼭 출세할 거야. 아, 나도 고등학교 때 좆나 열심히 좀 공부할 걸. 나이 먹어서 공부하려니 좆나 빡세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친구들에게 꿈이라 이야기해온 PD가 되어서 연예인 좀 만나게 해달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소녀시대 윤아 팬과 FX의 설리 팬들이 경합한다. PD는커녕 아직 학교도 졸업 못한 내가 괜히 생색을 낸다.

우리는 한 편의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물론 앞으로의 우리가 한 편의 ‘드라마’를 쓸지도 모른다. 아니 썼으면 좋겠다. 하지만 먹물이 많이 들어 ‘신자유주의’와 ‘청년 실업’, ‘불안정 고용’ 그리고 ‘희망 고문’의 개념만 맴맴 도는 내게는 그 ‘드라마’의 윤곽이 도대체 잡히질 않는다.

우리에게 추석에 소원을 빌 보름달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끊었다던 담배만 두 갑을 피우고, 소주는 2병, 맥주는 알 수 없을 만큼 마시고서야 애기 아빠 방에서 녀석들과 뒹구르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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