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를 보면 시대가 보인다"
    2010년 09월 24일 08: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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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매년 메이데이, 전국노동자대회, 여성의 날 등 각종 기념일에 의례껏 포스터를 제작한다. 해당 시기 노동계 주요 현안이 주로 포스터에 등장하다. 이런 포스터들은 조합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지만, 사진은 과거의 특정 시간을 ‘포착’해서 정지시킨다. 하지만 관찰자는 그 사진 속에서 ‘흐르는 시간’을 기억해낸다. 포스터 역시 마찬가지. 특정 시기 제작된 포스터는 노동을 매개로 한 그 시대 상황을 압축적으로 표현해준다.  

<레디앙>은 2차례에 걸쳐 최근 몇 년 동안 민주노총이 제작한 포스터를 선정해 제작에 얽힌 얘기들을 정리해봤다. <편집자 주>

노조의 포스터는 사실 전달이 기본이다. 그리고 포스터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그림과 짧은 문장으로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노조의 선전담당자들은 보다 눈에 띄는 그림과 문장을 만들어 내는데 골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간혹 이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어떤 포스터는 의도와 상관없이 논란을 빚기도 한다. 보다 많은 대중에게 노출되는 포스터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포스터, 논란의 중심에 서다

지난 2005년 비정규직법 제정 논란 당시 사용됐던 포스터(아래 왼쪽)는 ‘남성주의’를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정량이 폐기되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당시 사용됐던 포스터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모습과 함께, “우리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 비정규직법 통과되면 큰일인데…”라는 문구를 명시했다.

문제는 남성이 여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데다, “우리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는 말을 남성이 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발생했다. 당시 포스터 제작에 참여한 황혜원 진보신당 용산구당원협의회 위원장은 “이 포스터의 핵심은 ‘비정규직의 확대로 젊은이들이 삶을 설계하지 못할 정도로 암울하다’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여성의 어깨에 손을 걸고 있기에 남성 주도적인 포스터라고 해석됐다”고 설명했다.

   
  ▲ 비정규직 관련 민주노총 포스터.

그는 이 같은 평가 때문에 “당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대외 시민용으로 이 포스터를 제작했지만, 민주노동당은 중앙위에서 해당 포스터가 문제가 되자 당 차원에서 500부를 폐기한 바 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내부에서는 문제의 포스터와 관련해 ‘두 사람 모두 남성이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깨에 팔을 올리지 말았어야 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포스터는 내부의 일부 비판과 달리 시민선전 당시 많은 20~30대가 ‘나의 이야기’라며 공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고용 방패막’이라는 일반적 인식을 포스터(위 오른쪽)에 담아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지난 2001년 노동법 개악에 맞서 만든 포스터다. 포스터는 비정규 악법 총알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슴을 관통한 뒤 비정규직 뒤에 숨어 있는 정규직 노동자의 가슴까지 관통하는 그림이다.

입장에 따라 평가도 차이

해당 포스터는 “비정규직이 먼저 매들 맞고 그 다음은 정규직 차례가 아니겠습니까…(중략)…어느 사용자가 비정규직을 놔두고 정규직을 쓰겠습니까”라며 “정규-비정규 손을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간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고용 방패막이로 여겨왔던 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확대되면 결국 정규직 역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 포스터와 관련해 정규직에 대한 폄하와 잘못된 고정관념 확산을 우려하는 소리가 나왔다. 황 위원장은 “당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사업을 많이 한 데다, 정규직 노조 역시 사업비의 30%를 비정규직 사업에 내는 등 비정규직 악법 저지 투쟁에 적극 나서는 상황에서 이 같은 포스터 내용이 일부 조합원들에게 반감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일부에서는 ‘속이 시원하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포스터라는 것이 몇몇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일반과 그들과 비슷한 의식을 가진 조합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포스터로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비정규직법 관련 포스터 중 좋은 평가를 얻은 것도 있다. 지난 2008년 6월 14일 열린 비정규직 철폐 노동자대회 당시 쓰인 포스터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포스터는 어린 아이 두 명이 “엄마 아빠 비정규직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라는 손피켓을 든 사진과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마저 비정규직 88만 원 세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로 확산되는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각인시켰다.

   
  ▲ 2000년 전국노동자대회 당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200여 명의 부상자가 속출하자 민주노총은 ‘천원 모금’ 활동을 펼쳤다.

DJ 시대 노조탄압 실상 폭로도

황 위원장은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연령이 40대로, 아이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 노동자 당장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일은 구조조정 등 극단적 상황이 아니면 발생하지 않지만, 그들의 자식에게는 비정규직 문제가 바로 자신들의 일”이라며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향후 비정규직이 될 수 있음을 각인시키며,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는 측면에서 무엇보다 조합원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또 지난 2000년 노동자대회 당시 경찰의 강공진압에 발생한 부상자 200여 명의 치료비와 훼손된 방송차량 복구 등을 위해 진행된 ‘천 원 모금’ 포스터도 “신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경복을 착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림에다 그의 평소 말투를 패러디한 “에~ 다음엔 더 씨게 칩니다요!”라는 문구가 어우러져 코믹하면서도 당시 정권의 노동계 탄압 상황을 명확하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황 위원장은 포스터와 관련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과 카피가 어우러져 ‘재밌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포스터는 만드는 집행단위와 조합원 및 시민의 의식을 반영해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며 “공지성만을 강조한 포스터는 한계가 있음으로, 조합원과 시민들에게 감동과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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