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적, 객관적 학자는 없다"
        2010년 09월 19일 09: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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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17일) 거의 죽을 만큼 피곤했는데, 좀 수확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운좋게 한양대에서 개최됐던 한-러 수교 20주년 학회에서 참석하게 됐는데, 각종의 재미난 발표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제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저의 옛날 스승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한 상트페테르부르그대 교수 쿠르바노프의 이야기였습니다.

    러시아 학계의 대한반도 인식 변화

    남북한에 대한 러시아 학계의 인식 변화 추이를 추적한 발표문이었는데, 거기에서 주목을 끌었던 부분은 1990~91년간의 소련 몰락, 북한 빈곤화의 시초, 남한과의 수교와 남한으로부터의 원고료나 강의료 등 자금 유입을 계기로 생긴 ‘180도 인식 변화’였습니다.

    예컨대 1979년에 남한 경제에 대한 미제 자본의 지배를 질타한 단행본을 냄으로써 그 학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수슬리나 박사는, 1997년에 남한 재벌의 경험을 러시아이들도 베워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해 재벌 중심의 자본 집중적 ‘규모의 경제’를 ‘모델’로 설정한 것이죠.

    물론 바로 그 재벌들의 초청으로 몇 번 그 질타의 대상이었던 남한에 왕래하여 ‘대접’을 잘 받은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 초기의 단행본들을 어렵게 국역하여 셔클 활동하면서 윤독했던 남한 운동권 출신들은 과연 그 놀라운 변신을 어떻게 봐야 했을까요?

    뭐, 이재오 등의 사례가 증명하듯이 그들 중에서도 ‘대세에 따른 변신’의 천재들은 러시아 학계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 연구자이었다가 1991년 이후에 한 때에 ‘북한몰락론’의 대표자가 된 톨로라야 박사, 북-소 무역사의 권위자로서 북한과의 ‘친선’을 쌓았다가 1993년에 낸 북-소 무역사 관련 연구서적에서 북한의 경제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오류’로 정의해버린 바자노바 박사 등등의 사례도 있습니다. 선배들의 ‘소신 변천사’를 담담하게 나열해주는 쿠르바노프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낯짝이 그냥 부끄러움으로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뭐, 1990년대 초반의 러시아처럼 망한 나라에서 남한 정부와 재벌이 던져주는 몇 푼도 안되는 동냥을 줍느라고 과거의 ‘소신’ (그것도 진짜 소신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때도 그저 ‘시키는 대로’ 한 것이었을까요?)을 폐기처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칼 만하임의 이야기대로 우리는 대개 학자 등의 지식인들을 ‘자율적인'(free-wheeling) 존재로 인식하려 하고, ‘학자의 의견’이라면 뭔가가 중립적이고 객관성에 근접하려는 것으로 보려 하지만, 실제 예컨대 세계의 소위 ‘지역 연구’를 보면 연구 동향과 해당 국가의 대외 학자 지원 능력의 관계를 당장에 눈치 챌 수 있습니다.

    학문의 객관성과 연구비

    예컨대는 비록 일부의 용감한 비주류 비평가들이 그 주장을 미국에서도 하긴 하지만 (http://www.counterpunch.org/christison11082003.html), 팔레스타인인 등 비유대계들에게 이스라엘의 국토의 90% 가량 되는 국유지를 절대 팔아주지 않고 이스라엘 국가의 ‘유대인적 성격'(Jewish character)를 지키려는 시온주의가 사실 인종주의의 일종이라는 점을 자세히 분석하는 학자를 특히 미국의 유대학 (Jewish Studies) 학계에서는 찾아보기가 아주 힘듭니다.

    이미 정년 보장을 받아 쫓겨날 위험이 없는 교수라 하더라도 연구비를 주로 시온주의에 친화적인 유대 자본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재단이나 이스라엘쪽으로부터 받는 만큼 비판을 많이들 자제하죠. ‘부드러운 비판’ 정도는 몰라도, 시온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학자적 자세를 ‘스폰서’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한국학 학계는 하도 넓고 또 그 일부가 운동권 등의 경험을 한 한반도 출신들이기에 민중운동 연구나 노동계급운동사 연구, 그렇지 않으면 남한 군사주의 연구나 현재 비정규직 조합화 시도들의 연구를 하는 몇 명의 사람들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습니다.

    가끔 가다 예컨대 최근 브리티쉬 컬럼비아대의 전지혜 교수님이 내신 ‘주변부에서의 조직화'(http://www.amazon.com/Organizing-Margins-Symbolic-Politics-United/dp/0801447119/ref=sr_1_1?s=gateway&ie=UTF8&qid=1284810100&sr=8-1)처럼 미국과 남한의 비정규직(특히 환경 미화원)의 조합화와 상징 정치를 아주 훌륭하게 비교, 분석하는 역작들도 발견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진정으로 아픈 문제들 – 군 폭력부터 비정규직의 차별까지 – 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당수는 학제 소속은 ‘한국학’이라기보다는 사회학 등 일반 사회과학입니다. 한국으로부터의 지원금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학의 경우에는 비판하더라도 스폰서들을 지나치게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들 합니다.

    비백인 일상적 차별, 남한이 훨씬 심해

    그러면 외국인 ‘주류’ 학자들의 스폰서가 될 위치에 있지 않은 북한에 대한 연구 저서의 말투는 보통 어떤가요? ‘어버이 같은 수령의 사랑스러운 보호하에서: 북한 일상생활'(http://www.amazon.com/Under-Loving-Care-Fatherly-Leader/dp/0312323220/ref=sr_1_3?s=gateway&ie=UTF8&qid=1284810374&sr=8-3)과 같은 연구서적의 주제에서 느끼시겠듯이 북한을 ‘비꼬는’ 것은 ‘미덕’으로 쳐주고, 북한 이데올로기의 일부분일 뿐인 인종론적 요소를 마치 그 이데올로기의 전체인 것처럼 배치전환시키고 북한인들을 ‘인종주의자’, ‘파시스트’로 지칭하는 유사 연구서적 (http://www.amazon.com/Cleanest-Race-Koreans-Themselves-Matters/dp/1933633913/ref=sr_1_5?s=gateway&ie=UTF8&qid=1284810374&sr=8-5)은 학문의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비백인에 대한 일상적 차별, 모독, 구타는 외국인의 수가 매우 적은 북한보다 남한에서 백배 심한데도 (요즘의 한 사례: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00918023511573&p=hankooki), 남한의 태심한 인종주의를 제대로 분석하는 연구 논문을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스포서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북한에 비해 남한은 많은 면에서 비교 못할 정도로 구미권 외국인에게 ‘접근성’이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그 ‘성장의 기적’에 압도감을 느끼는 것도 작용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만약 북한의 노동당이 한국국제교류재단만큼의 재원을 손쉽게 운영할 수 있었다면 과연 국제 ‘한국학’ 학계의 사정은 약간 바뀌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찢어지게 가난하고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는 동북아 최빈국한테는 기본적으로 ‘해외 연구자’들에게 존중을 받을 자격은 없다는 것이죠.

    이 세계에서는 존중을 ‘받는’ 것이 아니거든요. ‘사는’ 것입니다. 북한이 악질 독재국가니 당연히 존중 받을 자격은 없다고 제게 반박하실 분이 계시리라 예상합니다. 네, 악질독재 국가는 맞습니다. 절대 다수의 국내 기업들이 ‘악질적 부당노동행위자’인 것처럼 그것도 사실상 맞는 말입니다.

    중국 공산당 독재에 대한 구미 연구자 태도

    그런데 유형이 비슷한 중국 공산당의 독재에 대한 구미권 연구자들의 태도는 과연 어떤가요? 저도 교수할 때에 많이 이용하는 리벨탈 교수의 역작 『중국 통치하기』(http://www.amazon.com/Governing-China-Revolution-Reform-Second/dp/0393924920/ref=sr_1_1?s=gateway&ie=UTF8&qid=1284811178&sr=8-1)를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중국이 고속 성장을 성취하면서도 예측가능한 미래에 당연히 독재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등소평을 ‘천재’로 명명하는 리벨탈 교수는, 과연 중국 공산당에 대해 ‘불경한’ 표현을 한 번이라도 썼나요? 답은 뻔하거든요.

    악질 독재라 해도 부유해지고 강해지기만 하면 그에 대한 ‘민주국가’ 출신 외국 학자들의 태도는 당장 확 달라집니다. 단, 북한의 ‘강성대국’ 드라이브가 성공될 리가 만무하니 아마도 끝까지 부유한 나라들의 학자들에게 웃음거리, 욕해도 무방한 대상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자율적 학자’, ‘객관적 학자’는 신화입니다. 소수의 양심파들이야 늘 있지만, 사회, 인문과학 분야의 대다수의 학자들의 판단은 본인의 성장과정으로 인한 편견부터 연구비 지원 기관의 묵언의 요구까지 수많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우됩니다.

    외형적으로 ‘민주화’된 나라들의 학자들이 꼭 지배계급의 ‘입’만은 아니지만, 지배계급의 편견이나 요구로부터는 전혀 자유롭지도 않으며, 대다수의 경우에는 자유로워지려 하지도 않습니다. 쿠르바노프 교수가 나열한 소련 한국학자들의 ‘변천사’는 그 극단성으로서는 다소 돋보이지만, 그 외 다수 학자들도 정도 차이에 불과합니다. 

    정치인도 성직자도 절대 믿을 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세상이 다 알지만, 학자도 크게 봐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어제 학회에서 얻은 중요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참, 추석이 시작되는 월요일, 즉 내일 모레 새벽에 한국을 바로 떠나야 하니 좀 슬프네요. 외국에서 사는 게 고생이긴 고생입니다. 한데, 국내와의 비판적 ‘거리 유지’에 그 외국살이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그 고생을 감수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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