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당원 심상정을 기대하며"
        2010년 08월 24일 11: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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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시대, 송(宋)나라와 정(鄭)나라가 전쟁하던 때 얘기다. 송나라 장수 화원(華元)이 결전을 앞두고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양고기를 먹였다. 그러나 전차를 모는 양짐(羊斟)에게는 전투와 직접 관계가 없다며 주지 않았다.

    이튿날 전투에서 화원은 전차를 적의 병력이 허술한 오른쪽으로 돌리라고 명령했으나 양짐은 반대방향으로 몰았다. 방향을 바꾸라는 명령에도 양짐은 “어제 양고기는 장군의 뜻대로 한 일이고, 오늘의 일은 내 생각대로 할 것”이라며 그대로 몰았다. 결국 화원은 생포되었고, 송나라 군대는 전열이 흐트러져 대패했다.

    이 이야기로부터 ‘저마다 스스로 정치를 하여 전체의 조화와 협력을 어렵게 한다.’는 각자위정(各自爲政)이란 말이 나왔다. 설사 화원(華元)의 처사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전투상황에서 벌어진 양짐(羊斟)의 각자위정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전투를 끝내고 얘기할 것이지……

    중앙당기위의 궤변

    심상정 전대표에 대한 징계가 경고로 결론 났다. 놀라운 일이다. 당기위원회에서는 정치적 행위를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당론이 없었는가? 궤변이다. 정당의 당기위원회가 국가의 사법부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아니, 국가의 사법부조차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데 정당의 당기위원회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정치적 문제와 무관한 척 하는 당기위원회의 입장을 보며 민감한 문제를 회피하는 기회주의적 정치행위를 발견한다.

    나는 통합진보정당을 만들자는 안에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심상정 전대표의 문제제기에 대해서(한국을 떠나 있는 몸인지라 그의 생각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충분히 토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는 큰 정치적 결단을 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큰 결단을 했을 때는 ‘징계를 감수’한 결단인줄 알았다. 결전의 순간을 앞두고, 개인의 자유로운 결단은 결단대로 했으면, 그 정도는 대범하게 감수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세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징계를 부당하게 생각하고 재심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는 재판에서 이겼다.

    민주노동당 시절의 일이다. 나는 대구의 한 지구당 위원장직을 맡고 있었고 우리 지구당의 당원이 있었는데, 그는 나의 오랜 동지이자 친구였다. 그는 노동운동 시절의 절친한 선배가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자 그를 도우러 갔다. 경쟁당의 후보를 돕다니 이런 일이!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정치적 판단’이라고 다 용납되나?

    고민을 하는 중에 주위에 말이 돌기 시작하고 문제 제기가 늘어만 갔다. 결국 나는 그에게 탈당을 권유했다. 그는 탈당했다. 당시 나는 슬그머니 탈당으로 끝낸 것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주문한 당원들한테 비판받았다. 당원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의 인간적 고뇌를 알면서도 안아주지 못한 것에 대해 탈당한 그에게도 역시 미안하게 생각했다.

    타 정당 후보를 돕는다는 이유로 평당원을 탈당하게 했던 내가, 후보를 사퇴하고 타당 후보를 지지한 대표급 인사에 대한 징계수위가 고작 경고에 그쳤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과연 진보신당은 전시든 평시든, 지도자든 평당원이든 개인의 자유로운 ‘정치적 판단’에 의한 행위를 용납하겠다는 것인가?

    그가 당을 위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는 충정을 이해한다고 치자. 그래서 진보신당은 이런 방식의 문제제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충격요법이 재발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것인가?

    이제 끝난 일이다. 뒷북치는 것 같다. 다만 나는 아직 기대하고 있다. 심상정 전 대표가 다시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일부의 권유를 물리치리라는 것을… 대표가 아닌 평당원의 자격으로 후보를 사퇴하면서까지 얘기하고자 했던 그 정치적 비전을 열심히 설파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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