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탈린, 폴 포트 그리고 이재오
        2010년 08월 09일 05: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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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로 삼복 더위가 지났지만 무더위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몇 주 전부터 밤이면 밤마다 습한 공기와 더운 열기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하고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봐도 계속 내 등 뒤에 있다. 어디가도 무기력이요, 불쾌지수는 높은 그야말로 짜증나는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무더위를 싹 날려버릴 시원한 얘기

    이렇게 날씨만으로도 버거운 삶이 계속되고 있는데 20대들은 더욱 더 힘겨운 삶을 보내고 있다. 떠지지 않는 눈을 부여잡고 내년에 치를 공무원시험 준비를 위해 벌써부터 새벽에 땀을 질질 흘려가며 학원 앞에 줄을 서야 하고 아니면 학비의 단 10%라도 보태기 위해 밤낮없이 아르바이트에 매진해야 한다.

    20대 가운데 유독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은 만큼 그들은 아마 휴가다운 휴가도 한 번 쓰지 못하고 해수욕장 풍경을 머릿속으로만 그리며 오늘도 특근에 잔업이라는 명목으로 출근해 밤낮없이 공장을 돌리고 사무실을 지켜야 할 것이다. 나랏님이 실내 온도를 26도로 통일하라는 지침까지 내리셨으니, 그나마 공장과 사무실이 시원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 20대들이 올 여름 겪고 있는 무기력함과 무더위를 싹 날려버릴 시원한 얘기가 터져 나왔다. 주인공은 이재오 은평을 국회의원 당선자. 얼마 전까지 국민들의 권익을 고민하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는 특수임무를 수행해야 할 사람이다. 이 정권의 핵심 중의 핵심은 정치권 중앙에 복귀하자마자 20대 대책을 발표했다.

    그는 제안했다. “재수생들은 공장이나 농촌에 보내 일을 시켜야 하며, 이를 입법화하겠다”고, “대학 졸업 뒤 중소기업에서 1~2년 일하게 한 뒤 대기업 입사 자격을 줘야 한다”는. 이 정도면 시원하지 않은가?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이것은 ‘시원함’이라기보다 공포영화를 본 뒤 느끼는 ‘서늘함’이 맞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헌법까지 무시해가며 이런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20대 문제를 바라보는 이 나라 지도층의 관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할 수 있다. 몇 달 전에는 대통령께서 “왕년에 나도 그랬다”며 청년들에게 “백수 되기 싫으면 지역으로 내려가라”고 염장을 긁더니, 이번에는 2인자께서 복장을 뒤집은 것이다.

    ‘잉여’ 청소에 나선 자들

    왜 재수생들이 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지옥같은 고3생활을 한 해 더 보내려 하는지, 수십만의 공시족들이 무엇 때문에 청춘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지, 왜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대학의 낭만을 포기하고 ‘스펙’ 따기에 열을 올리는지, 저들은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20대 재수생은, 공시족들은, 청년백수들은 단지 ‘잉여’에 불과할 뿐.

    저들이 잉여에게 벌이는 일은 청소다. 그래서 재수생들을 공장이나 농촌에 보내야 한다는 말이 저토록 서스럼없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스탈린의 시베리아 강제이주이고 ‘킬링필드’의 폴 포트가 수백만의 도시민들을 소개해 농촌으로 내려보낸 바로 그 개념이다.

    그것도 바로 얼마 전까지 ‘겸손재오’를 내세우며 은평 바닥바닥을 엎드려 다녔던 그가 당선되자마자 그것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입법화’라는 무기를 휘두르며 안 그래도 힘겹게 살아가는 20대 청년들의 마음을 이렇게 휘갈겨놓을 수가 있는 것인가?

    그 같은 논리라면 이재오 당선자도 당장 국회의원 때려치우고 구의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2선 구의원 이상만 시의원 공천 응시자격을 주는, 뭐 이런 것들도 입법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부처 장관을 하려면 그 부서 9급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더운 여름날 한 편의 공포영화를 봤으니 비명을 질러줘야 한다. 비록 별점 하나짜리 슬래셔 호러무비에 불과한 발언이지만 저들이 국민을 이토록이나 얕본다는 게 드러났으니 말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비명이라기보다 고함이 될 것이다. 그들의 간담이 서늘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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