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드스탁, 1회성 사건일 수밖에 없는 이유
        2010년 08월 04일 08: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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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 포스터

    이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2009년)은 역사상 가장 놀라운 록 페스티벌이었던 우드스탁의 무대와 록커들을 중심으로 하는 대신, 그 무대가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면서 기획자가 된 동네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다.

    화가가 되려던 청년이 어쩌다 기념비적인 록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그 축제를 치르면서 겪은 것이 무엇인지를 실존 인물 엘리엇 타이버(드미트리 마틴)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풀어낸 영화다.

    어쩌다 역사적 페스티벌을 기획한 청년

    그러니까 <테이킹 우드스탁>의 주인공은 뮤지션이나 공연 전문 프로듀서가 아니라 미국 뉴욕주 외진 시골마을에서 싸구려 모텔을 꾸려나가는 파산 직전의 부모에게 닥친 경제적 곤경에 휘말려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엘리엇(헨리 구드먼)이다.

    엘리엇이 망해가는 모텔 좀 살려보려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세기적인 난장으로 커져버리는 과정에 얼떨결에 휩쓸리면서 ‘자유’의 의미를 발견하는 청년의 성장영화인 것이다.

    <테이킹 우드스탁>은 흥행 대목인 여름 극장가에서 옛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명성이나 <색,계>, <브로크백 마운틴>같은 화제작으로 막강한 티켓 파워를 과시하던 이안 감독의 여느 작품과는 다르게 ‘테이킹 이안’이라는 이름의 이안 감독 회고전 상영작으로 선정되어 몇몇 예술영화 전용관을 통해 개봉되고 있다.

    이런저런 록 페스티벌이 한국에서도 여름마다 꽤나 소란스런 휴가철 놀이문화로 자리잡고 올해만 해도 12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아 업계 쪽 셈으로 수백억 원대의 수익을 내는 상황에서 유명 감독의 2009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작품이 소개되는 방식치고는 좀 초라하다. 한국의 록 페스티벌 관객들이 ‘원조’에 관심 없어서만은 아니다. 북미에서 개봉되었을 때도 개봉 첫 주말 3일 동안 346만 달러라는 저조한 흥행성적에 주말 박스오피스 9위 정도였으니까.

    우드스탁에 대해서는 이미 마이클 와들레이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드스탁>(1970년)이 당시 현장의 모습 이모저모를 기록한 고전으로 남아있다. <우드스탁>은 삼일 낮밤 동안 벌어지는 난장을 담아내기 위해 분할화면이라는 기법을 사용했다.

    와이드 스크린 화면에 여러 대의 카메라로 현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모습들을 찍어 한꺼번에 무대와 관객뿐 아니라 알몸으로 진흙탕을 딩구는 사람들, 약과 자기 흥에 취해 수풀 사이에서 놀다가 쉬다가 하는 사람들, 음악의 열기와 일탈의 흥분으로 한 장소에 있으되 각자 다른 즐거움에 빠져있는 거대한 사람들의 통합되지도 통합될 필요도 없는 축제를 한꺼번에 보여주되 굳이 하나로 모으지 않는다.

       
      ▲ 영화의 한 장면

    이렇게 나누어진 화면을 통해 장악되기도 하고 분유되기도 하는 와이드스크린과 분할 화면의 사용은 우드스탁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사태에 양면성에 조응하는 형식으로서의 화면 사용과 편집을 통해 <우드스탁>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기록영화’적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자유 또는 일확천금의 기회

    이안 감독 역시 <테이킹 우드스탁>에서 억지로 통합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다양한 장면을 동시다발적으로 담아내는 이 분할 화면 기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분할 화면은 록 페스티벌의 여러 측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히피들이 몰려드는 것을 꺼려 이웃 마을에서 취소한 록 페스티벌을 유치해서 망해가는 모텔 영업 좀 해보려다 어마어마한 현금 다발을 바로 뭉텅이로 받고, 그 돈다발보다 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페스티벌을 준비하기 위해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엘리엇의 어리둥절한 시선과 미처 정리되지 않는 판단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인 불안한 사회 분위기에서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늙은 유태계 미국인들이 모여살던 마을은 초라하고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사는 것이 팍팍할수록 오직 ‘돈’밖에 믿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나 정직보다는 자기 이익만 따지다 망해가던 마을 전체가 순식간에 바뀌어간다.

    엘리엇의 부모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에게 록 페스티벌은 문화가 아니라 일확천금의 기회다. 이미 돈독이 오를대로 올라있던 사람들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은 돈을 물 쓰듯 하는 정신 나간 히피들일 뿐이다. ‘사랑과 평화’를 꿈꾸는 히피 관객들은 배게나 이불이 더럽다고 투덜거리지도, 물값이나 술값, 방값이 터무니없이 매겨졌다고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부르는 대로 돈을 내고, 즐기고, 자신들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놓고 하고픈 대로 즐긴다. 그저 그들에게는 ‘해방구’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 영화의 한 장면

    그러다보니 모처럼의 기회에 장사에 열 올리는 부모와 페스티벌 장소를 내어준데 대해 감사하는 공연 관계자들과 몰려드는 축제 인파 속에서 휘둘리느라 페스티벌을 기획했던 엘리엇은 결국 한 번 제대로 공연을 보지도 못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할 것 다 해보고 느낄 것 느끼게 되었다는 것, 마침내 자신을 옭아매왔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우드스탁은 단 한 번의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안 감독이 그려낸 우드스탁의 의미다.

    자본에 투항한 결과

    그러므로 <테이킹 우드스탁>에는 지미 핸드릭스도, 조안 바에즈도, 더 후나 제니스 조플린도 등장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 소식은 당시 뉴스화면을 통해 나오지만 정작 우드스탁 페스티벌 무대를 달구었던 뮤지션들의 모습은 재현으로든 기록화면으로든 전혀 비춰지지 않는 것이다. 너무 유명해져버린 뮤지션들의 초상권이며 저작권에 대한 비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대신 <테이킹 우드스탁 OST>라는 이름으로 당시 참여했던 뮤지션들의 노래를 담은 앨범이 영화 개봉에 맞추어 음반시장에 나왔다. 영화에서는 멀리서 웅웅거리는 사운드로만 울리던 음악이 어떻게 영화의‘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라고 묶여 나올 수 있는 걸까? 록 페스티벌이 청년의 도전과 성장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과 발전에 투항한 결과가 바로 이렇게 드러났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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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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