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대서 '살상 기술' 배우는 거 맞다"
        2010년 07월 26일 07: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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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군필자 남자들이 술을 마시면 군대 이야기를 한다. 남자들끼리 모였을 때 하고, 여자들이랑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한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유격 행군 때 먹었던 씨레이션에 대한 이야기, A형 텐트치고 비 오는 땅에서 잔 이야기, 유격 PT 체조하는데 조교를 죽이고 싶었다는 이야기, 휴일에 끌려 나가 눈 치우고 잡초 뽑은 이야기 등등을 하면서 서로의 군 생활에 대한 ‘연대감’을 만들곤 한다.

    군대 얘기와 ‘훌륭한’ 남자들

    다른 한 편 여자들과 있는 자리에서 예비역들이 하는 이야기는 “군대는 x 같아” 버전과 “난 군 생활 열심히 잘 했어”라는 버전이 있다. 이 두 가지 버전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 같은 데 사실은 같은 이야기다. 군대는 힘든 곳이다. 그리고 자기는 그 과정을 마친 ‘훌륭한’ 남자라는 이야기이다.

    2010년 7월 24일. “남자들은 군대 갔다 왔다고 좋아하죠, 그죠? 뭐 자기가 군대갔다왔으니까 뭐 해달라고 만날 여자한테 떼쓰잖아요? 근데 그걸 알아야죠. 군대 가서 뭐 배웁니까? 죽이는 거 배워오죠.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으면 걔네들은 죽이는 거 배우잖아요. 그럼 뭘 잘했다는 거죠, 도대체가? 뭘 지키겠다는 거죠? 죽이는 거 배워오면서. 걔네 처음부터 그거 안 배웠으면 세상은 평화로워요.”라고 장희민이라는 EBS 언어 영역 강사가 강의하는 도중에 이야기했다는 동영상과 스샷(캡처화면)이 돌기 시작했다.

       
      ▲ EBS 장희민 강사가 인터넷 강의 도중 "군대는 죽이는 것 배워오는 곳"이라고 말하는 장면.

    온라인은 순식간에 달궈지기 시작했다. ‘코갤’(디씨인사이드 코미디 갤러리) 등을 위시하여 ‘네티즌 수사대’가 그녀의 ‘신상 털기’를 시작했고, 급기야 그녀의 미니홈피는 해킹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녀와의 ‘직접 통화’ 시리즈가 블로그와 게시판을 날아다닌다.

    동시에 EBS에는 그녀의 ‘사과문’이 게시되었고, 7월 25일 EBS는 ‘긴급경영회의’와 ‘확대간부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로 ‘보도자료’가 나가고, 곽덕훈 사장의 사과문이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다. 그녀는 강사직을 그만 두었다. 

    많은 군필자들이 “우리는 죽이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라면서 항변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장희민을 죽였다. 사적으로, 공적으로 그녀의 ‘사회적 생명’은 끊어졌다. 물론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범죄와 단죄가 판별할 틈도 없이 ‘공습작전’처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다이내믹 코리아!

    범죄와 단죄 사이, 다이내믹 코리아!

    여기서 잠깐 장희민의 주장을 살펴보자. “남자들은 군대 갔다 왔다고 좋아하죠” 여기에 문제가 있나? 한편으로는 군대가 싫었다고 다들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여러 설문조사들에서 군필자들에게 군 경험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었냐고 물으면 과반수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가장 핵심적인 주장인 “군대 가서 뭐 배웁니까? 죽이는 거 배워오죠”를 살펴보자.

    군인이 자기의 ‘몸’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교육받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총기이다. 총의 용도는 살상에 있다. 예컨대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사격술 예비훈련)는 피나고 알배기고 아픈 훈련일 뿐만 아니라 능숙하게 ‘죽이기’ 위한 자세 훈련이다. 수류탄의 목적, 크레모어의 목적, 전차, 자주포, 전투기 모두는 ‘죽이는 거’가 목적이다. 그것의 기술을 배우는 것은 ‘죽이는 거’가 아닌가? 훈련만 생각해봐도 알 일이다.

    작게는 부대 ATT(Army Training Test 전투력 측정 훈련)에서 크게는 UFG(을지 프리덤 가디언, UFL에서 2008년 바뀜), 호국훈련 등의 각종 훈련에서 ‘죽이는 게’ 얼마나 우스운지는 군대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모두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죽이는 거’는 국가의 군대, 즉 국군이기 때문에 국가통수기구/군사지휘기구로부터 국방부, 밑으로 내려오면 각급 지휘관에 의해 통제될 따름이다. 군대를 갔다 와서 죽이는 걸 안 배웠다는 예비역들은 도대체 어느 군대를 갔다 온 건가?

    “내 부모와 가족, 애인을 위해서 군대 갔다 왔는데, 죽이는 걸 배웠다고?”라고 화를 내는 것은 ‘살상’이라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군대를 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군대에 ‘끌려’ 간다.

    하지만 그들의 ‘선량한’ 목적과 상관없이 그들이 ‘죽이는 거’를 배우는 것은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다. 장희민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화를 어디다가 내고 있는 건가? ‘만만한 상대’에게 뿜고 있는 거 아닌가.

    남성적 자아와 피해자 의식

    하지만 군필자들의 감정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징병제 군대에 ‘빽 없어서’ ‘신의 아들’이 되지 못해서 들어간 것, 그리고 그 안의 위계적인 군대의 악습들과 여러 가지 병폐를 겪은 것들에 대한 분노는 군대를 경험하는 절대 다수의 남성들은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을 ‘피해자’로 느끼는 것도 온당하다.

    예컨대 이런 이중 감정이 등장한다. 군필자들은 자신들의 ‘남성적’인 자아도 그대로 보존 받고 싶으면서, 자신들의 ‘피해자’로서의 지위도 유지 받고 싶어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까 이야기한 대로 “군대 x 같아”와 “난 군 생활 열심히 잘 했어” 두 가지를 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자신들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병역 비리’를 저지르지 않은 ‘훌륭한’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완전히 인정해주는 집단은 술자리에서의 군필자들밖에 없다. 결국 이에 대해서는 ‘군필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무도 이야기할 수 없다.

    군대는 이미 ‘성역’이 된다. 더 문제는 군대를 이렇게 ‘성역’으로 만든다고 해서 군필자들의 ‘분노’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분노’를 만드는 것은 장희민이 아니라 군대와 징병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EBS 사장이 성명을 통해 밝힌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 것을 설명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다. 군필자들의 분노는 결국 국가주의에서 결론을 맺게 되는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이들의 ‘고충’은 결국, 국가가 위무해주면서 ‘멋진 사나이’로 ‘인증’하는 선에서 봉합되고 만다.

    국방부를 움찔하게 하려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대에서 제기해야 할 문제가 얼마나 많던가. 이를테면 장희민을 조리돌릴 시간에 병사들의 임금 현실화와, 내무생활 개선, 전군의 적절한 휴가, 핸드폰 사용, 전역 후 ‘현실적인’ 퇴직금 지급 등을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그 에너지였다면 국방부가 움찔하지 않았을까?

    결국 이런 식의 구도는 군대를 가지 않은 ‘병역 비리’를 저지른 이들/병역거부자들과, 갈 수 없는 이들 즉 여성들과 장애인들과 소수자들의 시민권만 약탈하는 수순으로 끝난다. 남성 군필자들의 ‘분노’는 늘 같은 방향의 쳇바퀴를 돌며 분출할 상대를 찾아다녔을 뿐이다. 이걸 반기는 건 과연 누굴까? 우파들은 손 안 대고 코를 푼 셈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자. 1999년의 ‘군가산점제 위헌 판정’, 2001년 ‘월장 사태’부터 시작해서 가깝게는 2010년의 ‘재범이 사태’까지 이르는 동안 매번 군대와 관련된 사회적 논란은 ‘상식’과 ‘몰상식’ 혹은 ‘여성’과 ‘남성’의 구도로만 진행되었다.

    ‘진보’ 혹은 ‘개혁’ 진영 논자들은 늘 ‘상식’이라는 준거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곤 했다. 내가 의아한 것은 여기에서 ‘좌파’의 논점이다. ‘상식’이라는 기준은 ‘몰상식’하고 ‘파시즘’의 징후를 가지고 있는 대중들에 대한 ‘비판’ 혹은 ‘계도’라는 방향의 논의로만 끌고 갔다.

    "사이버 테러, 너무 몰상식하다” 식의 담론이 전부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민주적 군대’라는 판타지는 노무현 정부에 의해 ‘자주 국방’이라는 ‘상식’을 가지고 “국방개혁 2020”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좌파 지식인들은 대한민국의 ‘군사주의’를 문제 삼거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 정도를 제시하는 수준에서 늘 멈추곤 했다. 그 다음으로 나와야 할 좌파들의, 특히 진보 정당이 말하는 한국 ‘군대’에 대한 다른 담론과 정책을 본 적이 없다.

    군대, 좌파의 대답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수준에서, 예컨대 국가가 부르주아들의 집행기구인 것처럼, 근대 국가의 징병제 군대는 억압적 국가기구가 맞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분쇄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군대다”라는 문제제기는 적절했지만, 그 다음은 무엇인가?

    게다가 군대는 계속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더불어 변화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 군대에 대해 접근하는 다른 종류의 남성들의 전략과 대응들도 있는데(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다), 계속 ‘파시즘/국가주의’의 구도에서 ‘평화 군축 반핵’이라는 구호만 외칠 것인가? 좌파의 구체적인 대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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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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