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2010년 07월 13일 07: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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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님은 7월12일치 한겨레 칼럼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연합정치 논의에 대해 “선거공학적 계산만 있을 뿐,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일상의 정치에 대한 내강(內剛)이 없다”고 일갈하시며, 특히 “민주노동당에서 분리되어야 했던 배경과 이유에 관해 유연성을 보이는데, 그야말로 ‘내강 없는 외유’의 전형”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

내강 부족해 연합정치 유혹 빠지는 것 아냐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소중한 존재에게 홀대하는 대신 저 너머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기대한다”고 지적하고 “몸 담고 있는 절집이 너무 작은가. 그래서 품은 뜻을 펼치지 못하겠다는 스님, 스스로 ‘큰스님’이라고 믿는 분은 큰 절집으로 떠날 일이다”라며 극단적인 언어로 질타를 하셨습니다.

일상의 정치에 대한 내강이 없다는 통렬한 지적이 아픕니다. 그렇습니다. 선거에 커다란 비중을 실으며 일상의 정치를 실종시키지 않았는지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일상의 정치가 평가받는 과정이 선거라는 지적에 완벽히 공감합니다.

사실 진보신당은 지방선거에서 노회찬, 심상정, 김석준과 같은 후보 외에 진보신당의 일상정치로 평가받을 그 무엇이 없었습니다. 민주당보다는 왼쪽이고 민노당보다는 합리적으로 소통될 것 ‘같은’ 이미지가 진보신당이 가진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무엇이 차별화된 정책인지 명쾌하게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지 못한 것입니다.

쇠고기 촛불집회나 용산 참사에 대한 당의 투쟁, 쌍용차 연대투쟁, 4대강 삽질 반대 투쟁 등등… 한다고는 했습니다. 조직력이 부족했고, 마이크도 작았습니다. 단순히 ‘쪽수’를 보태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라 보지 않았기에 정당 고유의 역할을 고민했고, 풀뿌리 정치의 근거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버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나 실천이 부족한 탓에 무엇 하나 만족스런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비판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내강의 부족 때문에 연합정치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논리라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힘이 없는 정의의 허망함

연합정치를 선거공학적 계산으로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홍 선생님도 언젠가 힘이 없는 정의의 허망함에 대해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보정치세력이 고통 받는 것이 이념이나 가치, 그것을 표현하는 정책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등록금 상한제와 후불제 같은 정책도 진보정당이 주장하면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한나라당이 주장하면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실력이 있느냐는 얘기는 그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현실적 영향력, 세력이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진보정당이 당면한 고민은 이처럼 세력의 문제입니다. 세력을 고민하면 정치공학이 된다면 힘없는 정의를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력의 문제를 고민하면서도 우리는 ‘묻지 마’ 반MB연대가 아니라 대안연대를 바탕에 깔아야 한다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홍 선생님이 제안하셨듯이 한나라당 일당독주 구도를 흔들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진보신당의 주장이 파묻히고 고립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수세적 대응을 넘지 못했습니다. 진보대연합에 바탕을 둔 반MB연대 주장이 패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입장이 바뀐 게 아닙니다.

유연성은 선거 국면에서만 요구된다는 말씀도 약간 생각이 다릅니다. 선거가 끝났습니다만 연합정치의 화두는 최소 2012년까지 지속되는 전환기입니다. 선거 결과가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민주당이 좋아서 민주당을 밀어 준 것이 아니라 MB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민주당을 활용했다는 것, 더 정확히 얘기하면 야권 연대를 지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보신당을 비롯한 비민주당 진보 개혁정당들에게 17%의 지지를 보내 준 것은 이들 비민주 진보개혁정당이 하나의 세력으로 결집한다면 민주당을 대체할 세력으로 지지할 용의가 있다는 것도 보여 준 것입니다.

조직적 유연성 요구받는 때

이 전환기에 우리는 ‘조직적 유연성’을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들 말하듯 개혁세력은 좌클릭하고 진보세력은 좀 더 유연해지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저는 진보신당이 노동과 생태적 가치가 강조되는 복지국가를 추구해 나가면서 열린 광장에서 경쟁하는 헤게모니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세화 선생님은 “선거를 마치자마자 통합을 말하는 것은 자신의 강령에 기초한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하더라도 그 결과가 선의를 배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돌다리 두드리듯 조심스러워집니다.

제가 알기로 진보신당의 강령이 지향하는 것은 자유로운 만남을 통해 완전해지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강령에서 이행강령까지가 진보신당의 강령을 구성하고 있으며, 집권을 위한 정치 전략이 현실에서 다양한 얼굴을 드러냅니다.

저는 정치 전략의 기본도 만남이고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지향을 나침반처럼 간직하며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 민심에 귀 기울이고 진보를 현실적 실재로 구성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 분당 이후 낡은 민족주의 운동권 정당의 모습에서 탈각해 진화해 온 것 같습니다. 최근 이정희 의원들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진보적 대중정당’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보신당이라는 진보정당의 경쟁 상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진화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을 따돌리고 진보정당의 대표선수 자격을 유지했고 이번 지방선거의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진보신당과 현격한 격차를 벌이며 성장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여전히 경기동부연합이니 광주전남연합, 울산연합 등과 같은 민주노동당의 패권 정파가 대주주로 건재하며, 시대착오적인 정치노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극복이 이루어졌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선거 결과 진보대연합 노선보다는 민주노동당 강화 노선이 승리했고, 이에 기초해 반MB연대를 전략적 기치로 들고 나갈 것으로 예상되기에 여전히 민주노동당 주류는 진보의 재구성에 대해 절박감을 갖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의 대통합 정당 건설을 이야기했던 것은 ‘밥 먹여주지 못한’ 진보개혁 세력의 무능에 대한 자기반성과 혁신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당면한 이명박-한나라당 정권과 맞서고, 민주당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작은 이익을 위해 대의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시대적 화두를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 어떻게 안고 갈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라고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홍세화 선생님,
진보신당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우리가 ‘민중’이라고 불러왔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바로 이런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해 있었습니다. 아비와 남편을 잃고도 범죄자가 되어야 하는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의 참담한 현실 속에 늘 꽂혀 있었습니다. 이들과의 굳건한 연대란 무엇입니까?

함께 비를 맞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비를 맞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하는 이유이기에 비를 가릴 수 있는 천막을 찾아다니는 그 시선을 어떻게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거나 선망하는 시선이라고만 말할 수 있습니까?

‘절집’이 작아서가 아니다

“통합을 말하기 전에 강령을 다시 읽어볼 일이며 무엇보다 서로 존중할 일이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충고를 따르겠습니다.

진보신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연합정치를 모색하는 것은 진보신당이 그 주체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한 이유는 진보하지 않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운동권 진보의 관념적 폐쇄회로에 갇혀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진보신당은 애초에 ‘진보의 재구성’을 목표로 한 ‘연대회의’로 새로운 진보 정당을 건설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진보의 재구성은 이념과 가치의 재구성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한 세력의 재구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진보신당은 그 자체로 완성된 ‘절집’이 아니라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한 비계목 같은 것이 아닐까요?

몸담고 있는 절집이 작아서가 아닙니다. 절집이 개인의 수양에 그치는 공간이어서는 안 되며 사부대중과 함께 불법을 공유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합정치에 대한 고민은 진보세력의 고독한 독백이나 절집에서만 외는 염불이 아니라 저자거리로 나아가 진토분신(塵土粉身), 화광동진(和光同塵)하려는 자세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설픈 말이 길었습니다. 늘 강건하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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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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