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홍명교의 '자유주의자'일까?"
        2010년 07월 13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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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찰은 인정한다만

    조병훈 비판이라는 부제가 달린 <무지한 반성이 ‘학생운동 위기’ 지속시킨다>를 처음 볼 때와 달리 덧글로 이어진 논의와 그의 두번째 글 <"내가 비판한 건 ‘유령’이 아니다" 386 자유주의 맞서, 20대가 할 일>을 지켜보면서 나는 안타까워졌다.

    우선 <왜 진보신당에 입당 안해?>에서 내가 현재 진보신당 지도부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비판하기 위해 기존 학생운동권의 몰락을 다루면서, 고려대 학생행진 등으로 나타난 좌파 학생운동조직의 사례와 각 부문 운동의 일부 밑거름이 되었던 학생운동권 출신 활동가들까지 무리하게 재단했던 것은 나의 불찰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홍명교가 과거 학생운동권의 충실함을 주장하기 위해 가져온 것들은 몹시 자의적이어서 동감할 수도 없거니와 각각의 활동에 점수를 매기는 걸 보고 있으니 실소만 나온다. 그랬거나 말거나 자유주의에 대한 정의는 결국 내려지지 않았고, 데리다의 ‘귀신’은 반가웠지만 결국 자기 팀을 챙기면서 퇴장했다. 뭐 그것도 능력이다.

    안티테제는 자기소멸적 전술

    그의 비판의 요점은 ‘기존 조직론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도덕주의적 비난’이며, 과거 학생운동권을 반복적으로 호명하여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자기 정치를 세워내는 그룹들은 사실 자기 정치의 빈약함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이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학생회에 비유한 비판은 처음부터 상투적인 상황을 겨냥해서 쓴 것이었는데, 그걸 ‘자유주의’의 반동으로 본 것은 아마도 홍명교에게는 ‘자유주의자’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정작 궁금했던 것은 그가 규정한 ‘자유주의자’의 범주와 그 기준 근거였다. 화려한 초식을 구사하느라 정의를 깜빡한 이 ‘자유주의’야 말로 홍명교가 결국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라고 비판하고 단편선이나 박원익 등이 댓글란에 공격해 마땅하다며 진보신당에 던진 문제제기의 요체 아닌가?

    10년 전 자유주의 비판에 대해

    홍명교가 던진 ‘자유주의’라는 용어에서 내 머리를 스친 것은 장석준의 글 한 편이었다. 90년대 말에 나온 것으로 기억되는 그 글에서 장석준은 당시 문화운동 계열을 비판하면서 자유주의 학생들이 말하는 욕망의 직시와 성찰이 ‘자기에 의한 성찰’로 제한되는 한 중간계급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반면, 공장으로 들어갔던 선배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존재 이전’을 통한 ‘자기에의 성찰’이야말로 타자를 마주하게 되는 진정한 성찰이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좌파 학생조직이 비록 ‘스탈린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현장과 결합하지 않은 상상력만을 부르짖는 ‘자유주의’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성찰과 규명이 있었노라고 회고한 것으로 기억한다.

    현장과 결합할 때 진정한 성찰이 가능하다는 데에 나 또한 이견이 없으며, 누구든 자신의 현장에 발을 딛지 않고는 혁명은커녕 어떤 만남이나 연대도 일으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에 대한 장석준의 명료한 비판은 이해도 쉽거니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어떠한 태도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2010년 홍명교의 자유주의

    그렇다면 홍명교가 ‘조병훈같은 사람’을 ‘자유주의’로 규정하고 혐의를 씌운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비판한 건 ‘유령’이 아니다>에서 홍명교는 91년 소련 붕괴 후 절망한 386들이 부여잡은 ‘자유주의’가 실용을 이유로 계속해서 소환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노사모나 반MB와 동일한 멘탈을 공유하고 있으며, ‘진보’, ‘시민사회운동판’을 뒤흔드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가 실용을 이유로 소환되는 것인지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모든 것이 자유주의인지 홍명교의 글로는 여전히 부정확하다.

    하지만 그가 겨냥하는 것이 ‘오른쪽으로 이동할수록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믿는 진보신당 내의 진보연합론/통합정당론이라는 것은 이제 확실해졌고, 다른 형태로 소환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물타기라는 것도 알겠다. 그러고 보니 홍명교는 나에게 왜 진보신당 지도부를 겨냥하여 비판하지는 않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자유주의’ 운운한 적장자론

    그렇다면 홍명교는 비판 대상을 잘못 잡았는데, 그러다보니 학생운동권에 대한 내 불찰을 지적하면서 제시한 사례들도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나 역시 진보신당이 선명한 이데올로기를 강령으로 하는 정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이데올로기가 현장의 사례에 기초하여 정교하게 작성되고 동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선명한 이데올로기정당의 조직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의 전통적 조직루트로 제한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그가 나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유라면 반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협소한 부문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자유주의자’의 이데올로기라면 그 자의성은 기준치 초과다.

    과거나 지금이나 안타까운 것은 이데올로기를 선명히 해야 한다는 미명으로 적의 스펙트럼을 과대하게 규정하여 상대를 재단하는 것이다. 대세를 잡고 있던 NL학생회 그룹이 폐쇄적으로 지도부를 지키는 선택을 했던 반면, 90년대 좌파학생조직은 홍명교의 말처럼 수 차례 자기 내부의 구조변혁을 통해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위하여’ 진화했고, 더 많은 현장으로 진출했다.

    ‘기존 운동권’의 좌파 학생조직 출신 학생들이 각 부문에서 활동한 바에 대해서는 홍명교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과 시민단체 활동가의 차이는 무엇인가. 설마 좌파는 좌파 학생운동조직 출신이라는 등식이 홍명교의 논리 구조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아니겠지.

    전위정당의 현재성

    부문은 각 현장으로 나뉜 열린 영역일 뿐, 당파적 일관성을 지닌 정치그룹은 아니다. 그래서 자주 쓸데없는 대립을 하기도 하지만, 폭넓은 토론도 가능하다. 내가 공산주의에 대해 가장 열심히 토론했던 것도 좌파 조직에서가 아닌 지역공동체 운동진영에서다.

    20대 당사자 운동 역시 부문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20대라는 부문 내에서도 당파적 견해가 충돌하는데, 여기에는 문화라는 20대 특유의 동력이 더해져 그 논의가 복잡하다는 것이 나의 관찰이다. ‘개드립’이라는 개념에 대한 김슷캇과 홍명교의 반응은 다르지만 두 입장 모두 좌파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20대라는 부문은 90년대까지의 20대와는 달리 ‘존재 이전’하지 않아도 자기에의 성찰이 가능한 환경에 처했다는 특징이 있다. 학생은 더 이상 특별한 현장조직가가 아니다. 다른 현장으로의 진출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곧 현장이고, 자신의 욕망이 즉시 개입해야 할 현장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20대라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아직 빈도는 적지만 격렬하다. 잉여든 좀비든 누가 어떤 이름을 붙이건 간에 말이다. 복잡한 문화적 배열 속에서 언제 어떻게 20대가 이데올로기 무장을 하고 급진적으로 당파성을 획득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각 현장에서 당파 선언에 우왕좌왕하는 대신 꾸준히 실험하는 것 아닌가. 그런 현장이 당과 결합할 때 그 당은 현재적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나의 정의는 생존을 위해 남을 소멸시킬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약자를 소멸시키는 대신 공존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에 대한 나의 정의다.

    그러나 각 정파의 계보와 논법으로 선언하고 인증해야 하는 운동권의 문화에서 나는 무당파성을 주장하는 편을 택했다. 그것이 좌파 조직의 힐난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현장에서 장애가 된 적은 없었다. 홍명교가 조병훈 같은 이들을 모두 ‘자유주의’로 묶는다면 더 이상 여기에 대해 논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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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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