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라보예 지젝의 자본주의 출구전략
    By 나난
        2010년 07월 02일 06: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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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하며 독보적인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개입정책, 그리고 그에 대한 좌우파의 혼란스러운 입장과 태도 등을 특유의 도발적 시선으로 진단했다.

       
      ▲책 표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슬라보예 지젝, 창비, 15,000원)에서 지젝은 21세기 서두에 벌어진 심상치 않은 두 가지 세계사적 사건, 9·11테러와 세계금융위기를 맑스의 유명한 경구를 차용해 각각 비극과 희극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금융위기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또 사태에 대한 급진주의적 입장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따져본다. 이 과정에서 지젝 특유의 씨니컬한 풍자는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금융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폴 크루그먼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의 경제학자들은 이미 예견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고’는 은폐되고 탄압받았다. 지젝은 우리가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된 것처럼 ‘믿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결국 선택하기가 아닌 무릅쓰기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지젝은 미국 공화당이 국민의 세금으로 재벌들을 살리려는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안을 비난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논리적 필연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지젝은 “현재의 위기에 있어 지배이데올로기의 중심 과제는 붕괴의 책임을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부차적이며 우연적인 일탈”로 돌리기 때문이라 말한다.

    결국 미국의 좌파와 우파 모두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있고 지젝은 이러한 “좌파의 (자유주의적) 관점과 보수적 공화당원의 (도덕주의적) 관점 사이의 예기치 못한 중첩”이 결국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데서 생겨났다”고 본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와 경제는 대립될 수 없으며 오히려 국가는 자본의 순환이 원활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상부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젝은 “자유주의와 도덕주의는 본질을 흐리는 외설적 ‘공갈’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러한 거짓 선전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더 이상 도전을 받지 않아도 되는 탈이데올로기화된 자연(유토피아) 그 자체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일조”한다.

    지젝은 “오늘날의 시대는 끊임없이 자신을 탈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선포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이러한 부정은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이데올로기에 깊숙이 파묻혀 있다는 데 대한 궁극적 증거를 제공할 뿐”이라며 “이러한 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 탈색은 좌파를 비롯한 진보세력이 처한 새로운 곤경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잃을 것은 족쇄밖에 없는’ 시대는 지났고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고 충고한다. 금융위기가 발휘하는 일차적 효과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의문이라기보다 더 심도있는 ‘구조조정’을 강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초석을 닦는 것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역사적 필연을 거슬러 행동하려는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이라고 말한다. 그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의 또 다른 이름이며 “대타자란 없다는 것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패권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것이 도발적인 그의 ‘출구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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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슬라보예 지젝

    1949년 슬로베니아 수도인 류블랴나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 및 사회학 등을 전공하고, 류블랴나 대학 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파리에서 라캉 연구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슬로베니아에서 최초로 자유선거가 시행되었을 때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독일 관념론에 깊은 이해와 관심이 있으며, 칸트에서 피히테, 셸링, 헤겔에 이르는 흐름을 복원하고자 노력한다. 독일관념론을 되살리기 위한 지적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이다. 단순한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실천하는 이론가로서, 매년 2~3권의 책을 출간, 왕성한 집필활동을 한다.

    지은 책으로 <삐딱하게 보기>,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할리우드의 정신분석>, <향락의 전이>,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환상의 돌림병>, <믿음에 대하여>,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 <진짜 눈물의 공포>,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이라크: 빌려온 항아리>,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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