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하고 위험한 영화
        2010년 06월 25일 02: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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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이런 노래는 노래로 끝나지 않고 장행회 때마다 실제로 혈서를 쓰게 했고 견적필살 見敵必殺 천하용사출전 天下勇士出戰 진국보충 盡忠報國이라는 일제시대 어휘를 그대로 붉은 피로 써서 그것을 치켜들면 면민 전체의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증발되었다. (고은 – 1950년대 그 폐허의 문학과 인간)

       
      ▲ 영화 <포화 속으로> 포스터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에 등장하는 포항여중 전투에 나선 학도병에 대해 작가 고은은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한국이 노벨 문학상을 받기를 애타게 바라는 문인의 기록에 등장하는 ‘장행회(壯行會)’란 조선인 청년학생들을 ‘학병’으로 내몰기 위한 행사로 1943년 12월 12일에 열린 ‘보전 장행회’에서 김성수는 "학병 지원은 이 시대 최고의 영광이며, 한번 길이 열린 이 순국의 대도에 시종여일하게 돌진함으로써 학도의 머리에는 영광이 길이 빛날 것이다"라며 제자들을 황국신민으로서 전장에 나가도록 독려했다. 이 일제시대의 용어는 여전히 ‘장한 뜻을 품고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고 송별하기 위한 모임’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포화 속으로>의 주인공 ‘남성 스타 4인방’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인 학도병 중대장 오장범(T.O.P, 최승현)은 어머니를 그리며 편지를 쓸 때마다 장행회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회상 속의 장행회에서 장범의 곱디고운 어머니(김성령)는 전장으로 떠나는 아들을 애달파 하지 않는다. 입에는 살포시 미소를 머금고 눈에는 잔뜩 힘주고 흔들림 없이 곧게 서서 아들을 떠나보낸다.

    대개 전란을 그리는 영화에서 여성, 특히 어머니는 곧 조국의 상징이다. 어머니를 구하고 지키기 위해 ‘아들들’은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전장에 나선다. 장범의 나이는 열 여섯, 그런데도 장범의 어머니는 전쟁에 나서는 아들을 다른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서 초연히 떠나보낸다. 군인보다 더 의연한 이런 어머니의 모습은 한국적 어머니라기보다 천황폐하를 위한 멸사봉공의 길에 자식을 보내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일본제국의 어머니 상에 가깝다.

       
      ▲ 학도병 중대장 오장범(가운데, T.O.P)

    "학생은? 군인이다!"

    학도병의 공식적인 역사는 1949년 학교마다 설치되었던 학도호국단이 전쟁이 발발하자 학도의용대로 바뀌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 1950년 6월 25일을 기점으로 전쟁이 실제로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이 나라는 학생들을 군인으로 호명할 태세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학도병들이 참가했던 가장 참혹했던 전투로 꼽히는 포항여중 전투에 훈련도 받지 못한 소년들을 소총 한 자루에 250발의 탄환만 지급한 채 남겨놓을 때 국군 대위 강석대(김승우)가 “학생은 군인인가, 아닌가?”라고 묻는 것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하는 질문이다. 학생들 스스로가 그 물음에 “학생은? 군인이다!” “학생은? 군인이다!” “학생은? 군인이다!”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71 명의 학도병들만 남겨 두고 떠나면서 어떻게 무기를 다뤄야 하는지 조차 몰라 불안해하는 어린 소년들에게 "너희들의 조국이다.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 믿는다." 는 강대위의 신뢰는 사실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군사적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전략은 인민군 766부대장 박무랑에게 고스란히 읽힌다. 그래서 박무랑은 학도병들을 ‘군인이 아니라 총알받이’라고 보고 항복을 권유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박무랑의 부대에는 남쪽의 학도병들보다 더 어린 소년병까지 있다.

       
      ▲ 학도병에 자원한 건달 우갑조(권상우)

    그 소년병과 맞닥뜨렸을 때, 중대장인 장범의 쏘지 말라는 명령을 거스르고 구갑조(권상우)는 방아쇠를 당긴다. 자신을 비난하는 장범의 눈빛에 맞서 갑조는 핏대를 세우며 발악한다. “빨갱이잖아! 총 들었잖아! 빨갱이고 총 들었으면 다 쏴 죽여야지!”라고.

    소년병의 피로 얼룩진 일기

    빨갱이에 대한 적개심으로 뭉친 갑조는 학생인가, 아닌가? 부모를 빨갱이한테 잃었다는 갑조는 살인미수로 수감되어 처벌을 받는 대신 학도병에 자원한 건달이다.

    ‘똥꼬가 찢어지게 가난해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본’ 갑조는 글도 읽을 줄 모르지만 학사모를 쓰고 학생 행세를 할 때보다 총이며 칼을 들고 전투에 나서게 될 때 ‘학생’으로 호명된다.

    명령을 거부하든, 사고를 치든, 매복해야 할 때 치고 나가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리든, 전투를 앞두고 무단이탈을 하든 빨갱이와 맞서기만 하면 갑조는 학생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포화 속으로>는 실제 포항여중 전투에 참가했던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이우근의 일기로부터 비롯된 영화다. 이우근은 만 18세도 되지 않아 정확히는 학도병이 아니라 ‘소년병’이었다. 국군 제 3사단 소년병으로 포항여중 앞 벌판에서 전사한 이우근의 핏자국으로 얼룩진 일기는 “어머니, 전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시작한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라는 고뇌로 이어져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라는 다짐 뒤에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로 끝난다. 그러나 이우근의 이 일기는 끝내 어머니에게 가닿지 않았다. 이우근의 어머니도 전쟁 중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우근의 어머니 대신, 그리고 당시 전투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수많은 학도병의 어머니 대신 이 일기를 받아든 이재한 감독은 이우근을, 그리고 학도병들을 작정하고 지워버린다. 그러면서 그 어머니들도 지워버린다. 장범이 마지막까지 그리워했던, 살아서 돌아가고 싶어했던 어머니는 한 마디 대사조차 없이 그저 상징으로만 어른거릴 뿐이다.

       
      ▲ 국군 대위 강석대(김승우)와 인민군 대장 박무랑(차승원)

    이재한 감독의 학도병들은 일제시대 학병처럼 혈서로 ‘포화 속으로’라는 글귀를 써서 머리에 두르고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장범을 제외한 나머지 학도병들은 내력도, 성격도, 고뇌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71 명을 대표해서 오직 장범만이 기표로 내세워질 뿐이다.

    학생을 군인으로 호명하려는 징후

    학도병들을 ‘군인이 아닌 학생’으로 보고 아량을 베풀던 인민군 대장 박무랑은 박격포 한 발에 악귀로 돌변해 “다 죽여버리갔어.”라며 덤벼들고, 학도병들을 사지에 총알받이로 내세워 11시간 반 동안의 후퇴 시간을 벌었던 조국은 뒤늦게 달려와 ‘미안하다’고 할 뿐이다. 그 조국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학도호국단을 유지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대학에 가면 문무대와 전방입소 훈련을 받게 했다.

    1949년에 설립되었던 학도호국단은 4·19혁명 이후 해체되었다가 5·16 군사 쿠데타 이후학풍 쇄신과 정신력 배양을 목적으로 발족한 ‘재건학생회’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1975년에 유신정권의 문교부 주도로 전국중앙학도호국단이 다시 발족했다.

    고등학교 이상의 학생과 교직원으로 구성되었던 학도호국단은 1985년 폐지되었다. 대북 강경정책 기조 속에 전쟁 위기를 정치적 발판으로 삼는 정권마다 학생을 군인으로 호명해온 역사다. 그러므로 지금 새삼 학도병을 이야기하는 <포화 속으로>는 수상하고 위험하다.

    투자가 위축된 제작 환경에서 순제작비만 113억이 투입되는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학도병이라는 안타깝고 처절한 역사를 다루는 감독 자리에 ‘동해’와 ‘일본해’를 굳이 구분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앉혔다는 것, 전쟁장면을 스펙터클로 만들어내는 것 말고는 캐릭터의 일관성이나 상황의 사실적 재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이 사회가 학생을 군인으로 호명하려 하는 징후가 될 수 있다.

    이우근은 묻는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라고. 그 복잡하고 괴로운 질문에 답하는 대신 이 사회는, 영화 <포화 속으로>는 여전히 “학생은 군인이다!”라고 외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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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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