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순도순 둘러앉은 따뜻한 저녁밥상의 주인공
        2010년 06월 04일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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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도 서천 어느 농촌어메니티 농장에서 벌어진 마을축제에서 안동지방에서 오신 분들의 탈춤공연을 본적이 있다. 전문적인 춤꾼들이 아니고 아마추어들이었는데 오히려 그분들의 그런 맛이 내게는 훨씬 더 유쾌했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슬며시 구경하다가 하회탈의 매력에 빠져들어 뒤로 넘어 가는 줄 알았다.
    보면 볼수록 가까이가면 갈수록….

    능청스러움이 도를 넘어 어떤 경지에 이르고, 까딱까딱 건들건들, 몸놀림 탈놀림이 내 눈을 유혹하는데 아주 즐거운 추억이었다.

    빤히 쳐다보는 것 같은 데 아니고 아니다 싶으면 빤히 쳐다본다. 탈의 얼굴 윤곽이 실물로 점점 보여지다가 어느 순간 멈칫거린다. 그러다가 슬며시 다시 살아서 움직이고….

    탈과 얼굴 사이 공간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의 여운은 실재와 허상이 구분이 안되는 묘한 울림을 주기도 했다.

       
      ▲ 안동하회탈춤

    탈춤은 익명에 가린듯하면서 너무나 현실적이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볼수 있었다. 그 이후 멀게만 느껴졌던 안동하회탈의 의미와 안동이라는 의식적인 공간은 상당히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다가 요즘 들어 이야기농업의 인연으로 또 하나의 ‘안동’이 훅하고 밀려오기 시작했다. 안동 간고등어 때문이다.

    고등어 추억

    유년시절, 나는 대전시 태평동에 살았다. 엄마는 언제부터인가(필자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광주리 행상을 시작하셨다. 머리에 또아리 하나 얹고 큰 고무다라이를 이고 가가호호 다니면서 과일이며, 생선을 주로 팔았다. 그 기억속에 생선으로는 ‘고등어’와 ‘갈치’, ‘이면수’, ’꽁치’가 주종을 이루었다. 값도 싸고 맛도 있고 그런 종류들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반고등어가 기본품목이자 주력상품이었다.

    비린내가 날까봐 비닐로 촘촘히 동여맨 고동색 고무다라이. 엄마는 운전사 눈치를 보아가며 잘사는 동네였던 상평으로 머릿짐 행상을 다녔다. 그 시절 태평동은 상평, 중평, 하평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상평은 대전조폐공사 다니는 직원들이 많아 잘사는 동네로 소문이 났다. 하평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몰려 살았다. 우리 집은 하평에 살았다. 내가 좋아하던 친구들이 상평에 많이 살았던터라 엄마가 그 동네에서 장사 하는것은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저녁 햇살 뉘엿뉘엿, 마을 뚝방길에 나가 연을 날리며 저 멀리 엄마 돌아오는 길을 기다리곤 했다. 식구들 모습은 아무리 멀어도 다 안다. 영락없이 엄마다 싶으면 쏜살같이 달려갔다.

    다 성장해서 어느 날인가 “엄마! 왜 그때 광주리 행상을 시작 하신거죠?” 여동생과 내가 물었다. 우선 먹고 사는 일이 어려웠고 계기가 된 것은 어느 날인가 열린 옆집 잔치였다고 한다. 엄마가 가서 일손을 거들고는 작은 갈치쪼가리 몇 개 얻어오셨다. 채반에 담아 햇빛에 꾸들꾸들 잘 말려서 기름에 튀겨 놓았더니 나하고 여동생이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아마 옆집강아지 고기 뼈 탐하듯 했던 모양이다. “어휴! 저것들이 비린 맛을 본지가 오래 되서….” 마음이 아프셨다. 그래서 아는 사람에게 밑천을 빌려 장사를 시작하시게 된 것이다. 애들을 먹이기 위해서. 밑지지만 않으면 애들 먹이는 것으로 족하지 싶었다. 그래서 엄마 돈에서는 항상 비린내가 났다.

    국민생선 고등어

    2009년 우리나라 수산물 매출액의 26.5%를 차지한 고등어는 국민생선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에도 나오고 시에도 나오고 가요에서도 주인공이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가수 김창완의 노랫말이 가슴을 울리곤 했다.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남쪽 바다로부터 올라와 일부는 서해로 가고 일부는 동해로 가고 제주도 근해에서 생활한다. 수만마리가 떼를 지어 서식하는데 제주도 근해는 바닷속 조류의 흐름이 빠르다. 고등어는 새우를 주로 먹는데 빠른 물속에서 먹이를 잡아 먹으려니 얼마나 바쁘게 움직여야 하겠는가? 운동량이 많아지니 몸이 유선형으로 날렵하게 된다. 그러니 고기가 맛이 있을 수밖에.
    흑산도 앞바다로 올라간 놈들은 먹고 살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서 통통하긴 한데 살이 물러서 맛이 떨어진다.

    또 절기로 보면, 5월 무렵 산란을 하는데 그 무렵에는 비린내가 심하고 뱃살이 없다. 기름기가 없어지고 살이 홀쭉해지는 것이다. 해서 봄 고등어는 별로다. 산란 후에는 겨울을 나기 위하여 부지런히 먹이를 먹고 지방을 비축하기 시작한다. 기름기가 흐르고 윤기도 나고 고기의 맛도 좋아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겨울고등어다. 겨울철 제주 연근해산 고등어를 최고로 친다.

    정약전 선생은 <자산어보>에서 벽문어(碧紋魚),•고등어(皐登魚)라고 기록했다. <경상도 속한지리지>에 고도어(古都魚)라고 한 기록이 보인다. 길이가 두자 가량이며 몸이 둥글다. 비늘은 매우 잘고 등에는 푸른 무늬가 있다. 맛은 달고 시고 탁하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담글 수는 있어도 회나 어포는 할 수 없다. 밝은 것을 좋아하는 성질이므로 불을 밝혀 밤에 잡는다.

    먹거리는 ‘문화’다. 먹거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역이라는 고유함은 사람들이 살아야 의미가 있다. 먹을거리와 문화와 지역 그리고 역사는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사람도 이어지고, 문화도 이어진다. 여기에 하나 더 매우 창발적인 사람들의 생각이 모아지면 인식과 상식 사이의 공간을 허무는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기도 한다. 안동 간고등어처럼….

    안동이라는 경북 내륙의 깊은 산골에 간고등어라는 먹거리가 출현하여 세상을 맛깔지게 만들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제주 근해산 겨울고등어가 부산 공동어시장을 거쳐서 안동으로 올라와 간고등어로 변신하기까지….

    안동은 경상북도 중앙에 위치한 내륙지방이다. 이는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지리적인 조건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다. 안동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해안지역인 영덕 강구항으로부터 해산물을 운반해와 먹었는데 바로 이 대목이 안동 간고등어가 출현 하게 된 배경이 된다.

       
      ▲ 영덕에서 안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황장재와 임동 챗거리장터의 현재 모습이다.

    아쉬운 것은 고개마루에도 옛 챗거리 장터에도 간고등어나 해산물 물산이 이루어지던 곳이라는 안내판 하나 없다. 이곳에 작은 조형물이라도 조성하여 달콤짭쪼롬 했던 ‘간고등어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보여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추억에 젖고 기념촬영도 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을수 있을텐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이 틀 무렵 부지런한 고등어 달구지, 등짐장수들은 강구항을 출발한다. 황장재를 넘어 날이 저물어서야 진보 신촌마을에 도착한다. 하루 종일 걷고 나니 몸은 천근만근, 어느새 봉놋방 구석에서 새우잠을 잔다. 다음날 새벽밥 먹고 다시 출발하면 저녁나절 임동 ‘챗거리장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냉동차가 없던 시절이므로 더 놔두면 고등어 내장이 썩기 시작할 무렵 바로 그 시점이다. 장꾼들은 여기서 고등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맑은 물에 씻어 왕소금을 뿌렸다.

    보관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챗거리에서 하룻밤을 묵어 이튿날 동이 트면 안동까지 10여리를 더 걸어야 했다. 고등어는 영덕 강구에서 챗거리까지 오는 동안 선선한 바람과 좋은 볕에 먹기 좋은 상태로 발효되고, 상하기 바로 직전에 소금을 뿌린 뒤 하룻밤을 재우고 안동으로 가다 보니 안동에 도착할 즈음엔 소금간이 잘 배어 짭쪼름하고 감칠맛이 나는 간고등어가 되어있었다.

    간고등어 생산과정

       
      ▲ 1차 해동 : 영하40℃에서 급속 냉동된 고등어를 해동실에서 22시간 해동 (영상15℃ 유지) 2차 해동 : 18℃의 물에 2시간 동안 해동

       
      ▲ 해동된 고등어는 갓 잡은 것과 진배없이 싱싱하다. 고등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한 후 흐르는 물에 1마리당 30초가량 세척

       
      ▲ 잘 손질 세척된 고등어를 5% 염도의 물에 1시간 동안 담가서 1차로 습식염장을 한후 고등어를 건져서 물빼기 공정에 들어간다.
       
      ▲ 간잽이가 천일염으로 염장한다. 고등어의 크기에 따라 소금의 양이 틀려진다.

       
      ▲ 챗거리장터에서 배를 갈라 염장을 한후 하룻밤을 재우고 안동까지 오는 시간이 하루 걸렸다. 그 원리 그대로 염장을 하고 영하3℃에서 24시간 숙성시킨다(육질을 쫄깃하고 깊은 맛을 내게 하는 과정)

       
      ▲ 용도별, 크기별로 진공포장하고 마지막으로 금속탐지기 통과

    고객들은 상품을 받아서 그대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맛있는 생선을 손질 안하고 바로 요리할 수 있다는 것, 아무것도 아닌듯하지만 큰 차이다.

    50년 간잽이 이동삼

       
      ▲ 이동삼 선생과 이야기중인 필자

    (사)안동간고등어생산자협회 사무실에서 50년 간잽이 이동삼 선생을 만났다. 워낙 가난했던 집안, 15살 나이에 어물 행상단을 따라나선 이동삼은 그후 50여년을 고등어 간잽이로 살았다. 강구에서 안동까지의 그 치열했던 삶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근면성실로 한우물을 파서 지금은 ‘간고등어간잽이 대한명인인증’도 받았다. 또 그의 인생역정은 안동간고등어를 안동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만든 캐릭터로 진화했고 문화아이콘이 되었다. 현업에서 공장장으로 생산라인을 관리하고 있다.

    가만히 이 선생의 손을 잡았다. 이 손….
    왼손으로 고등어를 들면 자동으로 무게와 질감이 느껴지고, 오른손으로는 동시에 그 고등어 크기에 맞는 양의 소금이 집어진다. 고등어의 뱃속에 살포시 뿌려대는 소금 알갱이는 한알 한알 속살의 결을 따라 제 갈 길을 정확히 찾아가 앉는다.

    그 정도 경지에 오르기까지 반 백년, 그 지나온 세월을 존경한다 말했고 고단하게 풀어온 삶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서 기쁘다고 이야기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며칠밤을 새도 당신의 인생 다 이야기 못한다며 아쉬워한다.

    이동삼 간잽이는 현재 후계자들을 키우고 있다. 대를 잇는 간잽이들이 있어야 안동 간고등어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단순한 잇기의 관점이 아니라 ‘진화하고 변화하며 점점 커가는 대물림’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50년 간잽이 이동삼선생의 손을 잡고 그 기를 온몸으로 받았다.
    세상은 참 신기하다.
    역사 없는, 과정 없는 결과는 없거늘…. 일약 단숨에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50여년을 바쳐 어떤 일을 한다는게 참 답답한 노릇이겠지….

    뜻잽이

    남안동IC를 빠져나오면 경북 안동시 일직면 송리인데 그곳에 안동 간고등어 본사겸 공장이 있다.
    송리 들어가는 입구 조탑동에 290여년된 느티나무가 반갑게 맞이하고 곧이어 동화작가 권정생선생이 사시던 생가 팻말이 보인다. 오른쪽의 조탑동 5층전탑도 색다른 양식으로 눈길을 잡아 끈다.

       
      ▲ 조탑동 오두막(약7평)이 곳에서 25년을 살다가 지난 2007년 5월 17일 하늘로 가셨다. 문 위에 붙어있는 이름이 애잔하게 여운으로 남는다. 소박한 유품은 안동시 명륜동에 위치한 권정생 어린이문화재단 전시실 오두막집 방안 모습을 재현한것이다.

    ‘좋은 동화 한편은 백번 설교보다 낫다’며 아이들의 세계를 아주 멀리 높게 바라보시고 보듬으며 평생을 아동문학에 일로 매진하시고 훌쩍 떠나신 권정생 선생. 선생께서 지은 여러 책에는 안동과 간고등어에 대한 에피소드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안동에 살면서 안동의 뜻을 그만큼 알기쉽게 친근하게 아로새긴 사람도 드물 것이다.

    생가를 돌아보고 기념재단을 돌아보면서 병들어 아픈 몸, 생활은 소박했지만 생각은 하늘보다 넓었던 사람, 자연과 아이들을 대했던 그분에 대한 느낌은 한마디로 의로운 뜻 길라잡이 ‘뜻잽이’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뜻이 아닌게 없다.

    일직교회 종탑 옆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있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 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

    – 권정생 –

    그 소외 받고 아픈 이를 위해 한겨울에도 장갑을 끼지 않고 종을 친 사람, 작은 교회 종지기 권정생이다.

    권정생의 유언장

    (부분생략)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세 때 22세나 23세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권정생 선생 유언장 일부]

    평생 쓰신 글로 십수억의 재산을 만드셨지만 자신은 평생을 병든 몸으로 안동의 한 오두막에서 모든 속세의 명예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살다 갔다. 평생 병고에 시달렸는데 어쩜 그리 아름다운 마음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는지….

    마을사람들은 그분이 그렇게 유명하고 학식이 높은 분일줄 몰랐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눈치를 챘다고 한다.

    권정생 선생은 재산 전체를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데 사용하라고 유언을 남겼고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이 그 뜻을 받아 일을 하고 있다. 선생은 정녕 안동의 ‘뜻잽이’였다.

    얼잽이

    ‘얼’은 ‘줏대 있는 정신(精神)’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5월초 안동 간고등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생산과정의 정밀함과 손맛을 이해하는 심성, 시스템, 지향점 등을 살펴보았다. ㈜안동간고등어 조일호 대표이사와 (사)안동간고등어 생산자협회 오상일 회장과 전 임직원들에게서 가볍지 않은 기운을 느꼈다. 뭐라고 해야 하나? 팀워크… 그것도 맞고, 자부심… 그것도 맞는 말이다. 안동 간고등어는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文化)로 현재 진행형이다. 그들이 만든 문화에 대한 확신은 여러 컨셉으로 표현되고 연결되고 있었다.

       
      ▲ ㈜안동 간고등어 생산공장과 고영학 홍보이사,조일호 대표이사, 오상일회장, 조정연 홍보팀장

    ‘상도를 따르라
    어디서든 부지런 하라
    빈손으로 시작하라
    밑지는 장사도 하라’

    이같은 다짐이 사무실 벽에 걸려있다. 이야기농업 필자의 컨셉과도 맥을 같이하는 터라 얼마나 반갑던지….

    강구항에서 안동까지의 역사적이고 고단했던 고등어의 여정을 이해하고 그 자연스러움을 생산 과정에 반영했다. 최초로 진공포장방식을 채택하여 수산물을 하나의 ‘품(品)’으로 격상시킨 일맵시와 안동의 전통과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려는 ㈜안동간고등어 사람들의 생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 생각은 아주 ‘오래된 습관’ 간고등어를 ‘새로운 기준’으로 재탄생 시켰고, 또 하나의 안동문화로 우뚝 서게 했다. 이 문화는 다른 문화요소들과 어우러지며 또 다른 생활문화로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구어낸 지난 10년의 이 결과는 ‘얼’이 없으면 안되는거다. 방문을 마치고 올라오는데 “음! 이건 얼잽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한 분야에서 어떤 경지에 오른 뜻을 지닌 ‘잽이’….
    그렇게 안동에는 뜻잽이, 간잽이, 얼잽이들이 있었다.

    이 모든게 다 안동의 품안에서 안동사람들로 인해 이루어진 일들이다. 앞으로도 안동의 가슴에서 그들은 더 뜨거워져 가고 성장해 나갈 것이다.

    안동간고등어 한 손

       
      ▲ 낙동강과 안동 하회마을

    하나인 듯 둘이고
    둘인 듯 하나….
    안동간고등어 한 손

    낙동강과 하회마을, 서로 껴안아 한 손
    안동의 역사와 문화, 서로 보듬어 한 손
    권정생과 아이들, 서로 품어서 한 손이다.

    바다와 육지도 한 손
    그러고 보니 세상은 다 한 손이네.

    안동간고등어 한 손으로 인하여

    너와 나
    우리모두 한 손이 된다.

    정 나누고 마음 나누며
    그렇게 포개고 기대고
    의지하며 살자

    (안동 간고등어에 대한 정보와 사진자료를 기꺼이 후원해준 경상북도에 감사말씀 드린다.)

    필자소개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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