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지쳤다, 색깔 좀 바꿔주세요"
By mywank
    2010년 05월 31일 09: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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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지난 29일 대구는 한나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으로 뒤덮였다. 선거현수막을 비롯해 선거포스터, 선거운동원 복장까지 좀처럼 다른 색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대다수의 무소속 후보들조차 파란색을 자신의 선거홍보물에 사용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오랜 기간 이 지역에서 군림한 보수정당 한나라당의 아성을 실감케 했다.

또 천안함 사건 이후 고조되고 있는 남북 간 긴장관계는 이 지역 유권자들의 ‘친한나라당 정서’를 자극하고 있었다. 안보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며 유세중인 야당후보에게 면박을 주는 시민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를 선거에 악용하려는 한나라당 대구시당은 지난 25일 천안함 사건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북풍’ 공세를 펴고 있다.

   
  ▲대구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무소속 후보들의 현수막 (사진=손기영 기자) 

파란색으로 물든 대구

진보정치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진보신당은 조명래 대구광역시장 후보(46), 장태수 대구 서구 기초의원 후보(38, 라 선거구), 김성년 대구 수성구 기초의원 후보(32, 라 선거구) 등 총 3명의 지방선거 후보자를 출마시키며 한나라당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구광역시장 선거의 경우 현 시장인 김범일 한나라당 후보, 이승천 민주당 후보, 조명래 후보가 출마했으며, 이병수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는 조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가 결렬된 이후 정식후보 등록 마지막 날인 지난 14일 사퇴했다. 김 후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50~60%대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그 뒤로 민주당, 진보신당 후보가 뒤따르고 있다.

대구 서구와 대구 수성구 기초의원 선거의 경우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사회당 등 야6당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장태수 후보와 김성년 후보를 각각 야권 단일후보로 합의·추대했다. 두 곳의 자치구 역시 한나라당 후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진보신당 장태수 대구 서구 기초의원 후보(왼쪽)와 조명래 대구광역시장 후보가 대평리 시장에서 시민들에게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대구에서 진보신당에 대해 알고 있는 시민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대부분 “그런 정당도 있느냐”, “이회창 씨가 만든 정당이 아니냐” 등의 반응을 보였으며,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다고 밝힌 일부 시민들도 “별로 관심이 없다”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거리 연설을 하거나 악수를 청하는 진보신당 후보들에게 대구시민들은 그저 무덤덤했다.

진보신당? 이회창 당이냐?

하지만 진보신당의 상징색인 빨강색만큼은 대구에서 ‘눈에 띄는’ 존재였다. 국가대표 축구팀 유니폼 색상으로써, 역동적인 희망과 미래세대의 꿈을 키우자는 의미에서 ‘퓨처 레드(Future Red)’로 명명된 진보신당의 상징색은 한나라당의 그것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조명래 후보는 아예 이번 선거슬로건을 "파란 데 질렸습니다. 색깔 좀 바꿔주세요"로 내걸었으며, 조 후보를 비롯해 장태수 후보, 김성년 후보도 선거현수막, 선거포스터 등 홍보물에 모두 ‘퓨처 레드’를 사용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당의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이른바 ‘색깔 전략’이었다.

진보신당의 이런 감성적인 접근 방식은 굳게 닫힌 대구시민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고 있었다. 이날 오후 대구 서구 대평리 시장에 있는 과일가게를 찾은 조명래 후보가 “과일 색깔이 저희와 비슷하게 빨갛게 익어야 맛있지 않겠습니까”라며 지지를 호소하자, “이제 색깔을 바꿔보자”라는 가게 주인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대구 서부 시장에 걸린 장태수, 조명래 후보의 선거현수막 (사진=손기영 기자)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다”라며 선거운동의 애로사항을 털어놓은 조명래 후보는 “처음에는 대다수 시민들이 야당 특히 진보정당 후보에게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진보에 대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때문인지 아예 상종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라며 “그동안 무덤덤했지만, ‘색깔 좀 바꿔주세요’라고 하면 이제는 종종 반응이 나오곤 한다”라고 말했다.

‘퓨처 레드’의 감성으로

조 후보는 “보통 대구에서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하면 욕을 먹는 분위기다. ‘색깔 좀 바꿔주세요’라고 선거운동을 하면서 한나라당에 불만을 갖고 있는 몇몇 시민들의 속마음을 끄집어내기도 했다”라며 “대구를 물들인 한나라당의 ‘올드 블루(Old Blue)’를 조금씩 퓨처 레드로 바꿔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선거에 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조 후보는 동남권 신국제공항 밀양 유치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김범일 후보에 맞서 △친환경 무상급식 △모든 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 설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지원 조례 신설 △자치구마다 비정규직, 여성을 위한 희망센터 설치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진보신당이 색깔 전략이 마냥 ‘환영’ 받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대구 서구 서부시장에 걸린 조명래, 장태수 후보의 선거현수막에 대해 “눈이 따가워 다닐 수가 없다.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는 항의 전화가 선거사무실로 걸려오기도 했다. 오랜 기간 파란색에 익숙해진 대구시민들에게 빨간색으로 대변되는 진보정치는 여전히 낮선 존재였다.

   
  ▲대구 중구 2.28 기념공원 유세 중 조명래 후보와 정만진 민주진보 대구교육감 후보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부분의 대구시민들은 한나라당 후보들의 낙승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면 사실상 당선되는 지역적인 특수성 때문에, 선거운동조차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변화하는 밑바닥 민심

13년째 대구에서 개인택시를 몰고 있는 신상철 씨는 “요즘 택시기사들 끼리 모이면 기호 1번은 찍지 말자고 한다. 그동안 잘한 게 뭐가 있느냐”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또 대구 수성구 모 한나라당 기초의원 후보의 선거운동원인 윤 아무개 씨(48) 역시 “요즘에는 한나라당 후보들을 욕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라며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막상 투표소에 가면 한나라당 후보를 찍는 게 대구사람들”이라고 이들을 전했다. 한나라당 후보가 싫지만 다른 정당의 후보를 찍자니 잘 알지 못하는 등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는 진보정치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동네 일꾼’을 자처하며 지역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는 진보정당 후보들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29일 오후 조명래 후보와 함께 대구 서구 대평리 시장과 서부 시장을 찾은 장태수 후보의 경우, 그를 알아보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상인들이 의외로 많았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 대구 서구 민주노동당 기초의원으로 당선된 이력도 있었지만, 이곳 주민들을 상대로 10여 년 동안 7,000여건의 무료 전세상담을 벌여온 장 후보의 지역밀착형 활동 때문이었다.

   
  ▲시민들에게 악수를 청하는 김성년 진보신당 대구 수성구 기초의원 후보 (사진=손기영 기자)  

대평리 시장에서 ‘종일 수산’을 운영하는 백종일 씨(46)는 “저 분은 당선되고도 충분히 남을 분”이라며 “하지만 당을 잘못 달고 나왔다. 진보신당은 너무 생소하다. 여기는 아무래도 한나라당을 달고 나와야 하지 않느냐”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 후보는 이날 “평소 주민들과 어려움을 함께 했던 후보를 선택해 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동네 일꾼, 진보정치의 가능성

대구 수성구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한 김성년 후보도 ‘동네 일꾼’을 자처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2006년 이곳에서 민주노동당 기초의원 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이후, 지난 2007년 지역 최초의 주민운동단체인 ‘수성주민광장’ 결정에 참여하고 현재 민생상담실장으로 활동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역 활동을 벌여왔다.

대구 수성구는 서울에 비유하면 강남구와 같은 곳으로, 대구의 다른 자치구에 비해 교육문제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은 지역이다. 김 후보는 현재 대구 수성구 시지지구에 공공도서관이 없는 점을 감안해, 에코도서관 건립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날 대구 수성구 신매광장에서 유세활동을 벌인 김 후보는 “그동안 지역 활동을 하며 ‘진보정당이 동네 정치는 가능하겠다’라는 것을 느꼈다”라며 “워낙 한나라당 지지층들이 많은 곳이라, 동네를 바꾸고 싶은 분들이 발언할 공간이 거의 없었다. 주민운동단체를 통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을 조직하고, 참여를 이끈 점을 작은 성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사진=손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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