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꿈은 무엇인가?
    2010년 05월 27일 02: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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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을 지켜보면 이제는 오히려 안쓰럽습니다. 스스로 민주적이고 진보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떤 사안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것을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노총에 대한 크고 작은 비판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의 어떤 부분을 대변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 땅에 고통 받고 있는 또 다른 그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배타적 지지 = 비판적 지지"

민주주의라는 것은 법과 제도로 상징되는 경계들의 밖으로 내몰린 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함께 그 경계를 넓히고 때로는 그것을 부수면서 재구성하는 것인데, 그리고 바로 그것이 진보인데, 민주노총이 그에 부응하는 발상과 행태를 보여주지 못하기에 제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한편 ‘민주노총’이라는 이름이 주는 역사적 무게를 성찰하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민주노총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6.2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이 보이는 행태와 소식들은 그 역사적 존재 의미가 종막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점차 믿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선거를 불과 얼마 안 남긴 25일, 민주노총경기본부가 ‘개혁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자임하는 국민참여당의 후보를 사실상 지지한 것, 그리고 26일 민주노동당 강원도지부가 이미 진보신당 후보와 단일 진보후보를 이루었음에도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을 대며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한 것 등은 그 직간접적인 증거입니다.

자신들이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진보후보들이 존재하는데도 그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굳이 말한다면, 이 일련의 희극은 민주노총이 그렇게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정치방침, 즉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가져온 결과라는 점입니다. 결국 그것의 고수는 ‘비판적 지지’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점이 이번 선거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버린 것입니다.

민주노총 존재 근거에 대한 성찰을

따라서 이런 마당에 애정을 가지고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까라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그 안에도 진보좌파의 꿈, 즉 ‘더불어 사는 사회(꼬뮌)’을 꿈꾸는 아름다운 이들이, 지금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다수 존재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과거 민주노총을 옹호 혹은 비판하는 글을 쓰곤 했던 것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다는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민주노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세세한 것보다 자신의 탄생과 역사적 궤적을 한 번쯤 성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민주노총은 ‘중소사업장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그리하여 노동운동의 ‘일부’를 대변할 뿐이라고 폄훼되었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존재하였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조직입니다.

아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기에 전노협의 헌신적인 투쟁이 없었다면, 지금 민주노총이 ‘민주’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돌아다니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라는 자문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지금 신자유주의정치세력의 일원이 된 유럽 주요국의 진보정당들이 그나마 그런 당명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초기 노동정치의 지난한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우에서 말하지만, 이런 평가를 과거 전노협이 지녔던 구조적 한계, 오류를 옹호하는 것으로 보지 말길 바랍니다. 다만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노동조합운동, 노동정치라는 것은 조직을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착취,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일반론을, 그리고 바로 그러한 대중적 투쟁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오늘날의 민주노총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상식을 새삼 환기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아스라해진 90년, 91년 5월의 공안정국을 기억해 보십시오. 비록 전노협은 자신이 지닌 한계와 오류를 넘어설 대안을 지니고 있지 못했지만, 그리고 물론 그런 현실은 전노협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가해진 비판에 근거해 본다면, 당시 가장 고통 받는 중소사업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며 그 역사적 임무를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와 역할은 민주노총에게 주어졌습니다.

희망이 되지 못하는 민주노총

그런데 당시 혈혈단신 싸우다시피 한 전노협의 투쟁에 대해 너무 전투적이라는 등, 그래서 노동대중들이 이탈하고 조직률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라는 등 얼마나 많은 비판들이 가해졌습니까. 물론 거기에는 전노협이 내용적으로 담보하고 있었던 ‘전국적인 성격’을 폄훼하기 위한, 그리하여 민주노총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헤게모니를 약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배어 있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전노협을 비판했던 이들, 그리하여 가능한 ‘전노협과 단절된 민주노총’을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 명망가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일원이 되거나, 결과적으로 그들의 들러리가 되어 뛰어 다니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지금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에 굴지의 글로벌 자본이 된, 그 당시 대기업의 노동조합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같은 작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이 땅의 또 다른 차별받는 자들을 위한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해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들 대자본의 노동조합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민주노총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이런저런 변명과 궤변만을 늘어놓으며 그들의 뒤를 쫒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그들이 민주노총을 탈퇴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면서요. 지금 이 순간 민주노총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행태는 이러한 우울한 판단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거기에서 희망의 씨앗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민주노총은 한국 노동운동, 노동정치의 역사에 자기 자신을 과연 무엇이라고 기록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진보좌파 독자성 유지를 위한 역할

혹시 너무 심한 평가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이 진보좌파정치의 역량 빈곤으로 인해 그동안 짊어졌던 과도한 정치적 역할, 그로부터 야기된 엄청난 부담감을 이해하지 못 하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지금 민주노총이 보이는 잘못된 행태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러한 상황에 직면해 있기에, 또한 그와 같은 장애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민주노총 자신이 ‘모든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꿈’을 여전히 자신의 모토로 삼고 있기에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더욱 엄격한 비판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에서 노동자대중들의 오랜 투쟁과 고통의 역사가, 그 흔적들이 의미가 없을 만큼 탈각되었다고 믿지는 않기에, 아니 믿고 싶지 않기에, 대중조직의 중심으로서 최소한 그에 걸 맞는 정치적 행보를, 진보좌파의 독자성을 제고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스탠스를 유지하라고 호소하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은 어떻습니까. 그 인식,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권위가 그 오랜 대중투쟁의 산물이라는 것을 잊은 채, 오히려 그것을 진보좌파의 정치적 확장을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기보다 그것을 지연, 약화시키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대중적 권위를 제고시키기보다 스스로 그것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노총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수구정치세력과 보수자유주의정치세력의 차이 정도’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보수자유주의정치세력에게 ‘자신들이 버리지 않고 있는 그 꿈’을 대신 실현해 달라고 읍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선거 이후 진보좌파 재구성을 위해

신자유주의 지구화시대는 그 ‘절차적 민주주의’의 보존과 확장조차도 이미 진보좌파의 몫이 되었다는 것을 혹시 잊었는지, 아니면 모르는 것인지, ‘민주주의를 위해 묻지마 반MB로 뭉치자’고 공공연히 선언,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중주의적 대중경제론’을 옹호했던 개혁자유주의자들은 이미 신자유주의라는 배를 타고 ‘민주주의 전선’에서 이탈한 지 오래인데, 그들이 버린 그 낡은 민주주의 깃발을 보듬은 채, 오직 표를 모으기 위해 날리는 그들의 구호만을 보증서로 삼아 그들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있는 꼴입니다. 아닙니까.

상황이 이렇기에 과연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난감할 뿐입니다. 그래도 마지막 그 어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호소, 요청합니다. 6.2지방선거 이후에 진행될 진보좌파의 재구성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위해서도, 최소한의 명분과 대의를 지키는 민주노총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명분과 성과 없는 것으로 끝날 것이 확실해진 ‘묻지마 반MB’에 더 이상 빠지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최소한 진보좌파정치를 위해 쏟아 놓았던 그 수많은 말들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세상을 실현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변함없는 꿈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 기우이며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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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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