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틈새'들의 주거 경험과 권리를 말하다
        2010년 05월 25일 05: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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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를 버리고 1km를 기어가다가 구조 받고서야 겨우 장애인 시설을 탈출할 수 있었다.” (장애인 장애경)

    “우리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은 1평 남짓한 컨테이너인데 그마저도 주야간 교대자들로 붐벼서 한순간도 편히 잘 수가 없다.” (이주노조 위원장 미셸)

    “독거노인들은 경비로 일하면서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종로시니어클럽 사무국장 고현종)

    “생활비를 아끼려고 고시텔, 자취방을 전전하다보면 폐인이 되는 것 같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정다혜)

    ‘주거권’이라는 기본적 생존권으로부터 소외당하는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지난 5월 12일 진보신당 주최로 열린 ‘틈새 없는 주거권 만들기’ 토론회 자리에서다. 20대,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홈리스, 노인이 각자 주거현실을 드러내고 도시 1인가구 정책의 문제점을 짚었다.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

    ‘정상인’들은 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들끼리 개인적인 연애가 금지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래서 자기 집을 갖기 위해 장애인 시설을 탈출한 장애인 장애경 씨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탈출기가 안타까웠다. 단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져 온 장애인들. 그러나 정작 장애인 당사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 지난 12일 진보신당 주최로 열린 ‘틈새 없는 주거권 만들기’ 토론회 (사진=진보신당)

    서울시 38개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325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7%나 되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응답했고, 주거 및 서비스가 지원된다면 시설에서 나가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70%가 넘었다. 하지만 단체로 잠들고 단체로 눈떠야 하는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을 충족시켜줄 정부의 정책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현실.

    조사랑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는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의 경우 장애인 수당 등 지원을 아예 알지 못해 시설에서 나올 때, 빵 원 짜리 통장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2010년부터 장애인들에게 공급하는 주택 또한 1인 1가구 형태를 지원하지 않고(2명이상 공동거주를 해야 함을 의미) 주거비 또한 없다. 더군다나 주거지를 스스로 선정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어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허울 좋은 정책은 있되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춘 ‘친절한’ 정책이 부재한 셈이다.

    이주노동자의 집, 컨테이너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어떤가? ‘국외자’라는 불리한 입장과 7~80년대에나 있을 법한 혹독한 노동조건 속에서 주거 또한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감내해야만 한다. 한국행을 결심했을 때 대부분 주거보조금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왔지만 한국기업들은 경제위기를 구실로 약속을 깨기 일쑤다.

    미셸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80만원이고, 최고 수준이 120만 원 정도인데, 고향에 송금하고 나머지 돈으로 월세를 내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말했다. 그는 “난방과 환기가 안 되는 회사 근처 컨테이너에서 살면서 시간외 노동에 동원되기 일쑤이고 심지어는 하루 20시간 노동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며 약속했던 주거보조금 지급을 강하게 촉구했다. ‘컨테이너’에 ‘20시간 노동’이라니, 외형적으로 오늘내일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21세기 한국의 이면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20대에게 더욱 절실한 주거권

    정다혜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20대 청년층의 고충을 토로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학비와 청년실업이라는 문제 속에서 신음하며 이른바 ‘고시텔’과 ‘자취방’을 전전하는 20대. 학자금 대출로 대학 졸업자의 평균 부채가 1126만원에 육박하고 청년 실업률은 10%, 대졸 초임은 삭감되는데 비정규직/인턴의 양산으로 안정적 일자리는 없다. 결혼에 대한 부담감은 증가하는데 주거정책은 결혼한 가족만을 중심으로 하니 청년 1인가구는 소외된다.

    20대는 경제적으로 불안하다는 이유로 금융상품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계층이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젊은 세대들의 불만과 욕구를 반영하여 은행권의 자취방 저금리 대출제도 설계를 시도했지만 돌아온 건 쓰디쓴 제도적 한계뿐이었다. 35세 미만에게는 대출할 수 있는 경로가 사실상 부재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 명백하게 제도의 치명적인 ‘틈새’, ‘허점’인 셈이다.

    왜 하필 30세도 아니고 40세도 아니고 35세 미만인가?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까? 국민주택기금은 주거 복지 향상을 위해 주택법으로 설치된 명실상부한 공공기금이다. 이 기금을 통해서만 내 집이 없거나 전세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서민층이 값싼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금은 35세 미만 단독세대주에게 주택구입자금 대출뿐만 아니라 전세자금 대출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 더욱 황당한 점은 이들을 아예 배제하는 근거가 국토해양부와 관련 업무를 하는 은행의 업무매뉴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국토해양부가 청년층 1인 가구의 주택 문제를 얼마나 도외시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얼마 전 진보신당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35세 미만 단독세대주에게도 전세자금 대출을 허하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민원을 제기한 바 있다. 별 뚜렷한 근거도 없는 ‘35세 미만’ 규정으로 금융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청년 1인가구 계층에게 이 문제는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이다.

    이중의 부재(不在): 성소수자와 주거권

    주거권은커녕 그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은 어떨까? 케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는 “성소수자의 경우 법제도적으로 가족의 구성 자체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1인 가구로서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필수”라고 말했다.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여전히 뿌리 깊고 심각해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아주 이른 나이에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상황이 무수히 존재한다. 아무런 주변 도움 없이 홀로 내팽개쳐지는 성소수자들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주거정책 마련과 더불어 가출 10대나 홈리스 성소수자를 위한 상담, 쉼터 제공과도 연결해서 정책을 생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정체성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드러내거나 알리는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외면을 당하는 상황에 노출될 수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자신만의 독립적인 주거 보장은 매우 절실한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이 처한 특수한 주거 상황에 대해 어떤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고 있는가?

    노숙인, 노인도 프라이버시가 있다

    홈리스의 얘기를 들어 보자. 김학식 홈리스공동행동 활동가는 노숙인에서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처음 임대주택에 당첨 됐을 때 꿈을 꾸는 듯 기뻤다. 하지만 혼자는 입주할 수 없다는 정부시책 때문에 생판 모르는 2~3인이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집이 있는 게 어디냐? 2~3명이 사는 것도 행복한 줄 알아야지!” 혹시나 이런 시선으로 홈리스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거노인들은 어떨까? 고현종 종로시니어클럽 사무국장은 “독거노인들도 자기만의 개인 공간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이어서 2~3명씩 함께 생활하는 것을 매우 기피한다”고 말했다.

       
      ▲ 사진=진보신당

    독거노인들은 경비 일을 하면서 숙식을 해결하거나 여관, 고시원에 장기 투숙하기도 하며 옥탑이나 쪽방에 살기도 한다. 임대아파트는 그림의 떡이다. 수입이 적다보니 정부 지원금의 절반 이상이 관리비와 임대료로 나가기 때문이다. ‘주거권’이란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공급이 모자란다는 핑계로 주거 정책은 “2~3명이 같이 살라”고 무턱대고 강요한다. 세심함이 부족한 선심성 정책이다.

    가장 절실한 사람을 맨 먼저 밀어내다

    김상철 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국장은 세대 중심의 주거권을 기준으로도 주택 정책의 틈새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공공주택의 보급 자체도 적다. 보금자리 주택의 1/3만 임대주택이고 나머지는 분양을 전제로 한다.

    또 “현 융자제도는 상환능력을 전제로 해 집단 내에서도 가장 처지가 나은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며 "주거복지는 가장 낮은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는 가장 필요한 계층이 우선적으로 배제된다"고 말했다. 그는 35세 미만 가구에 대한 전세자금 대출이 언제든 수용될 가능성이 큰 이슈라고 봤다. 진보신당이 국토부 질의를 통해 확인했더니 대출 추산액이 현재 국민주택기금에 비추어 보면 그렇게 부담스러운 정도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화 된 다양한 ‘1인가구’ 집단들을 고려한 정책 입안은 매우 불리한 입장에 서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정부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전통적인 가족구성이 1인가구보다 우월하다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인만큼 1인 가구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한 ‘스토리텔링’(음성과 행위를 통해 청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통해 제도적 투쟁과 함께 문화적 투쟁 방식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각자가 처한 현실과 요구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고 소통함으로서 변화와 제도개선 운동은 시작된다. 소외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주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받기 위해 소통을 시작했다. 이번 토론회는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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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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