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정신은 죽었다
광주는 변해야 한다”
    2010년 05월 15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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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진태 5.18기념재단 사무처장. 

자카르타에서 모로코까지의 무슬림들이 메카를 꿈꾸듯이 우리는 광주를 성지순례 했었다. 그리고, 민중항쟁 서른 돌을 맞는 오늘에 즈음하여 우리는 1990년에 4.19를 기억하지 못했던 것처럼 30년 전의 5.18을 잊고 지낸다.

오랜만에 찾은 광주는 이해하기 쉬운 도시가 아니었다. 전교조 출신임을 내세우는 것이 교육감 선거의 슬로건으로 쓰이는 한편, 거대해지고 산뜻해진 5.18 기념 건축물에는 마치 새마을운동 시대쯤으로 회귀한양 ‘1등 시민’이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광주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5.18기념공원, 그 들머리의 5.18기념문화센터에는 내방객이 많지 않다. 30주년 기념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듯한 방송국 촬영팀 만이 부산스레 오가고, 성장(盛裝)한 젊은 여인들은 새로 나온 삼성 스마트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전국이 다 ‘광주’였는데, 이젠 광주도 ‘광주’가 아니다”

도대체 5.18은 2010년의 우리에게 무엇인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5.18기념재단의 조진태 사무처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11일 오후 광주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조진태 처장은 “5.18 단체 일부에서는 5.18정신이 사라진 지 오래고, 이해 관계가 중심”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진태 처장은 “경제적 이권과 정치적 이해, 단체 간 헤게모니에 따라 광주의 사회운동단체들이 서로 흠집 내며 싸우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며, 오늘의 광주가 자성하고 변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지금도 그 ‘광주’인가? 아니다. 민주화 역사 속에서는 전국이 다 ‘광주’였지만, 지금은 광주조차도 ‘광주’가 아니다. 어떻게 그 광주를 되살릴 것인가?”라고 자문했다. 

조진태 처장은 “이제 30주년을 맞은 5.18은 과거의 낡은 것을 깨뜨리고 새 세대를 대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정치적 실험과 문화생태공동체적인 실험”을 5.18정신의 현대화로서 제시한다. “성미산 공동체나 마포 민중의 집 같은 것은 광주에서 더 먼저 시작됐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화의 성지’라면 늦었지만 그런 실험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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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정신 사라진 지 오래

– 5.18기념재단에 대해 소개해 달라.

= 5.18기념재단은 일반 국민, 5.18 당사자들, 해외동포들이 힘을 모아 1994년에 설립한 민간단체로서 5.18을 기념하고 그 정신를 계승하고자 하는 대표 단체다. 1998년에 광주시조례가 제정되어 지자체와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 5.18기념재단이 일상적으로 하는 사업은 교사 연수 등의 교육 사업, 아시아 민주주의 인권운동과 연대하는 국제사업 등이다.

– 요즘 여러 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이 일부 5.18 관련 단체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 보도가 사실인가?

= 일부 당사자 단체가 그런 비판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비판 받을 것은 받아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몇몇 소수의 사람들 중에서 당시의 정신과 자세보다는 눈앞의 이해관계에 더 눈이 먼 경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피해 당사자의 고통에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 봐야 할 대목도 있다. 정부가 해줘야 할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5·18의 정신과 가치를 가지고 따끔하게 질책할 것은 질책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몇몇 소수가 저지르고 있는 사이비 상이군경회 같은 행동을 제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큐 같은 인물로 취급당해서야 되겠는가.

– 5.18 30주년이라는 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 한 세대가 바뀐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서른 살 된 청년들이 우리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는 것처럼 5.18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른 즈음의 청년들이 발랄하고 열정적이고 씩씩한 것처럼 5.18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5.18은 청년으로서, 과거의 낡은 것을 깨뜨리고 새 세대를 대면해야 한다.

실종자 시신, 발포명령자, 미군 관계 문제 등 아직도 남아

– 3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 우선, 실종자 시신을 찾지 못했다. 당사자들의 아픔, 5.18의 참상 측면에서 크게 짚어져야 할 대목이다. 둘째,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아직도 밝히지 못했다. 국방부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도 30만 쪽의 군 관련 문서를 조사해봤지만, 발포명령자를 찾을 수 없었고, 다만 군 수뇌부 회의에서 전두환 장군이 ‘자위권 발동 강력 검토’라고 메모한 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군 내부에서 관련 문서가 전부 파기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셋째, 미국이 어느 정도 관계 했느냐도 문제다. 미국 국내법에 따라 정보공개 시점이 됐다. 얼마 전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가 재단을 방문했을 때 문서 공개를 요청했더니, 적극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 5.18 당시에 어디 있었나?

= 재수 후 조선대학교에 들어가서 박정희 사후 닥친 ‘서울의 봄’ 때 매일 데모했었다. 5월 들어서는 횃불성회에 참가하는 등 당시의 흐름에 섰었다. 지도부에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만원은 며칠 전 인터넷 매체에 올린 글을 통해 “5.18세력은 북한과 내통한 빨갱이 세력”이라고 강변했다. 반면 조정환은 새로 내놓은 책에서 “광주민중항쟁은 신자유주의 맞선 제헌권력”이라고 말했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5.18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고, 역사의 변천에 따라 의미 부여와 해석도 달라질 테지만, 그 실체적 진실은 무엇이냐?

= 양쪽 주장 모두 사실과는 관계없는 주관주의적 관념의 극치다. 과거에도 5.18을 프롤레타리아트혁명처럼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5·18을 부정하고 싶은 악의적인 사람들이 떠들어대고 있듯 ‘복면 쓰고 총 든 폭도’라는 악선전은 요즘도 흔한데, 자신들의 잣대와 의사, 의지를 사실에 투영한 것이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5.18의 전개 과정을 보면 둘 다 말도 안 된다.

극좌와 극우의 역사해석은 주관주의적 관념의 극치

5.18에 대해서 최근에 더 연구 진척이 있는데, 신군부가 집권 시나리오를 가지고 계엄령을 전국화하고 광주를 타겟으로 삼았다는 것은 상당히 객관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권정달의 정국수습방안, 당시의 국무회의, 그리고 신군부들만의 의사결정, 투입된 공수부대에 초동단계부터 강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 등을 볼 때 그러하다.

모든 상황이 신군부의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대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현지 상황에 따라 시나리오를 변경하면서 강하게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대중과 연결하여 재야를 제거하는 각본이 있었다는 타당성이 있다.

시민들의 저항이 대안권력 지향적이라는 규정은 지나치다. 계엄령이 확대되었던 당시 시민들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학생 데모가 군부 탄압을 자초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우려였다. 처음에는 지도부도 맞서 싸우기보다는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다가 18일 오후가 되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시작된다. 금남로에서 공수부대가 아주 잔혹하게 진압하는 것을 보고, 그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처음에는 그런 참상에 당황하다가, 다음에는 ‘진압이 지나치다’고 흥분하다가, 나중에는 ‘광주 시민 다 죽이러 왔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극한 분노에 다다른다.

희생자가 나오고, 그 시신들을 보면서 분노를 넘어 맞서 싸워야겠다는 결심으로 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당시 현장 시민들의 심리였다. 처음에는 돌멩이로, 낫으로, 21일 새벽에는 총알 없는 카빈총으로, 21일 오후 도청 앞 집단발포 직후 전면적 공식적 무장이 시작된다.

이런 흐름들은 스스로 국가권력을 거부하겠다는 판단과 의지보다는 상황 상황마다 그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희생정신에 의해 촉발된 자연발생적 항쟁이다. 이런 항쟁을 정치적으로 철학적으로 어떻게 개념화 담론화하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물론 그런 용기와 항쟁이 아무 때나 나오지는 않을 테니 그런 것을 터져나오게 했던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연구는 더 진척되어야 한다.

저항 가능케 했던 사회경제적 조건 연구 필요

– 처음에 주도했던 재야정치세력이나 학생들은 ‘김대중 선생 석방’으로 시작했고, 폭력적 진압에 자위로 나가고, 더 나아가 공동체적 상황으로 가는 자연상승적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냐?

= 그렇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26일에 새로운 흐름이 생긴다. 무기 회수파와 항쟁파라는 갈등과 분화가 생기고, 항쟁파가 주도권을 장악한 후 27일을 맞게 된다. 이 항쟁파 속에서도 목적의식적 활동가들로 지도부가 교체되는 상황이 생긴다.

   
  

22일에 생긴 수습대책위는 자산가, 종교인, 전문직, 전직 공무원 등 지역 유지 중심이었고, 여기에 재야인사들이 결합하고, 그 다음에는 학생들과 함께 시민학생수습대책위가, 26일에는 시민학생투쟁위원회가 생긴다.

그러면서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요구가 제기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윤상원, 정상용, 이양현 등 학생운동 노동운동 출신자들이 항쟁 지도부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지만, 27일 새벽에 계엄군에 의해 진압된다.

상황이 더 전개됐다면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의 전개 과정은 어떤 목적의식적 조직이나 집단이나 세력의 개입과 주도보다는 자연발생적 상승이 압도했다.

– 이번에 처음으로 민주당 광주시장 예비후보들의 5.18 당시 행적을 검증했다. 30년 동안 그런 검증 시도를 안 한 것이 이상한데, 당시 공무원이었던 예비후보들의 행적에 대해 더 자세하게 밝혀진 게 있는가?

= 이번에 더 밝혀진 건 없다. 5.18 행적을 묻는 건 옳다. 친일파 청산이 안 된 것처럼 5.18 가해자 청산도 제대로 안 됐다. 다만, 당사자 단체가 그것을 직접 하기보다는 시민 사회에 공론화시켜서 검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시민들로부터 특정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특정 후보 측에서 5.18 행적 검증을 이용해 다른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일을 벌였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고 시내에 벽보를 붙이고 다닌 5월 단체 회원 몇 사람이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하여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갈기갈기 찢긴 광주

– 1970년대 선거에서는 호남에서 김대중 지지표보다 박정희 지지표가 더 많이 나왔다. 그러다가 1980년을 경과한 후에는 민주당 계열에 대한 지지표가 거의 100% 가까이 나온다. 현실 정치에서 5.18의 의미는 무엇인가? 민주당 계열 정치세력들을 계속 지지하는 것인가?

= 물론 그러면 안 된다. 지역 여론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지자체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박종현 후보가 7%, 광역비례에서는 14%를 득표했다. 지역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갈구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새 정치세력이 제대로 눈에 띄지 않으니 기권표로 가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 보기 싫고 화딱지 나서’ 한나라당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 김대중 정부에서 일했던 황태연 교수는 ‘저항적 지역주의’라는 담론을 만들어 설파했다. ‘5.18 민중항쟁’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가?

= 광주에서는 오랜 세월 고립감 소외감이 심했다. 그런 고립감을 민주당이 이용해왔다. 그 결과 5월의 내면은 물론이고 진보적인 정치 도시 광주도 크게 상처를 받았다. 광주는 지금 민주당 세력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있다.

사회운동단체들마저도 ‘힘’을 운동의 잣대로 삼고 줄을 서고 있고, 광주에서 그 힘은 민주당으로부터 나온다. 민주당의 정치 술수에 따라 민주화 운동 인사들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는 지경이다. 경제적 이권과 정치적 이해, 단체 간 헤게모니에 따라 서로 흠집 내며 싸우는 일이 횡행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당 세력이 광주의 건강한 야성, 건강한 개혁성과 진보성을 자신의 정치적 자원으로 이용하게 되면서 30년이 지난 지금은 부정적 정치의식의 형태로 광주에 남게 됐다.

– 이제 5.18은 광주의 것, 당사자의 것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 늦었다. 그런데 더 당사자화 되고 있다. 사회적 공론화와 제도화가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전면적으로 나서 자신의 업적을 기리고 선양하다 보면 왜곡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사회가 ‘떼법, 땡깡을 부려야 자기 밥그릇을 채울 수 있다’는 경험을 쌓도록 5.18을 대해 왔다.

   
  ▲5.18 국립묘지.(정부자료사진) 

‘저항’과 ‘대동’이 5.18정신

– 5.18정신은 뭘까? <광주일보> 5월 11일자에 국민참여당 정찬용 광주시장 후보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그 제목이 “광주정신 살리고 소득 3만 불 시대 열겠다”이다. 이런 주장이 옳든 그르든 일반 시민들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5.18정신은 지금 뭐냐?

= 윤한봉 선생은 5,18정신을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이라 개념화하셨다. 지금의 5.18은 그것에서 정신적 가치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광주가 서로를 배려하고,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품격이 있는 도시는 아니다.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지금도 그 ‘광주’인가? 아니다. 민주화 역사 속에서는 전국이 다 ‘광주’였지만, 지금은 광주조차도 ‘광주’가 아니다. 어떻게 그 광주를 되살릴 것인가?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5.18의 보편적 독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혁신지자체의 모범적 사례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서울대 정근식 교수는 5.18과 광주가 우리 사회에 새로운 시대 담론을 던지는 발상지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포 ‘민중의 집’ 광주에서 먼저 했어야

5.18정신은 새로운 정치적 실험, 문화생태공동체적인 실험이 되어야 하고, 광주에서 그런 실험이 더 빨리 시작되어 긍정적 사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성미산 공동체나 마포 민중의 집 같은 것은 광주에서 더 먼저 시작됐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화의 성지’라면 늦었지만 그런 실험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5.18의 정신적 가치를 사회진보적 전망으로 올바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5월 정신 계승하여 00하자”는 식으로 아무 데나 5월 정신을 가져다 붙이는 또다른 식의 박제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류는 이명박 대통령이 5.18묘지에 와서 ‘선진화의 동력으로 삼자’는 것이나 똑같은 것이다.

5.18기념사업의 담론도 변해야 한다. 1991년 대두된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는 김영삼의 3당 합당에 대항하여 손호철 교수가 제기한 것이고, 지난 20년 동안 큰 기여를 했다. 5.18을 광주에 갇히지 않도록 했고, 아시아 민주화 연대에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해줬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담론의 ‘전국화’가 가지고 있는 새마을운동 냄새, ‘세계화’의 제국의 냄새를 경계할 때가 됐고, 새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집 『다시 새벽길』을 내놓은 게 1999년인데, 요즘은 시작(詩作)은 안하는가? 요즘 관심 있는 일은 무엇인가?

= 전국 각지의 문예지에 발표한 시를 모아 시집을 내놓으려 준비하고 있다. 늦으면 가을쯤 지역 출판사에서 출판할 예정이다.

아시아 연대의 네트워크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으면 좋겠다. 매년 아시아의 민주화 인권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서로 연대하고 활동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사업에 더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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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진태 처장은 광주 지역에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고, 오랫동안 진보정당 운동에 몸바쳐 왔다. 7년 전부터 5.18재단에서 일하고 있으며, 『다시 새벽길』이라느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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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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