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동안 작가들을 두드리는 화두
        2010년 05월 14일 01: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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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치유하는 예술적 주체

    동구와 소련 사회주의의 몰락은 한국사회의 진보 대중들에게 ‘자기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파장과 함께 ‘이념부재’라는 세기말적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30년이 넘게 정권을 장악해 오던 군사권력이 타도가 아닌 교체를 통해 물러나게 됨으로써 핵심적 갈등구조의 한 축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대립물이었던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현상적 해소 때문에 문학은 내면 세계로 침잠하게 된다.

    ‘폭로’와 ‘선전․선동’이 문학이 담당해야 할하나의 역할이었던 때에서, 이제는 ‘인간의 정체성’, ‘인간의 무의식’, ‘여성문제’, ‘생태문제’, ‘약소자(minority) 문제’ 등 다원화된 과제로 형상화의 대상이 이동해 갔다. 의지 대 의지의 대립으로 파악되던, 그리고 폭로와 충실한 사실 재현으로 의미성을 획득했던 80년 광주는 90년대 이후 다른 의미망을 형성하게 된다. 그곳에 변화의 결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작가가 정찬이다.

    그간 5월 광주는 언제나 정치적으로만 형상화돼 왔다. 정치적으로 은폐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역공세도 정치적 양태를 띠었던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권력 의지에 대한 저항으로 형상화돼 왔고 “악에 대한 증오야 말로 세계를 변혁시키는 혁명의 원동력”이라는 구호에 힘이 실렸다. 정찬은 여기서 비껴서려고 시도한다. “가혹하고, 미묘하고, 아름답고, 이상스러운 삶”을 산 장인하를 통해서 인간의 입장에서 광주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 사진=5.18기념재단

    정찬의 1992년 작품인 「완전한 영혼」은 장인하라는 인물의 상징화한 언어다. 1980년 5월 당시 장인하는 인쇄소 식자공이었다. 그는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두 군인에게서 총과 몽둥이를 빼앗으려다, 오히려 그 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불구가 된 이후 장인하의 삶은 목적도 의식도 증오도 없었고, 단지 식물적인 순수성과 순리만으로 채워진다. 장인하는 그가 구해낸 지성수와 대면하게 되는데, 이 장면이 문제적이다. 지성수는 장인하에게 증오하는 방법을 전하려 한다. 그러나 장인하는 ‘식물적 정신’으로 지성수의 증오를 초극(超克)한다.

    “이념을 만들어내는 사랑은 고귀하다. 그러나 그 사랑에는 반성과 겸손이 결핍되어 있다. 그러므로 허약한 사랑이다. 이 위험하고 허약한 사랑에 강인한 생명을 불어넣는 일. 즉 자신의 불완전함을 일깨우는 신을 만드는 일. 나에게 그 신의 존재는 바로 장인하였다.”(정찬, 「완전한 영혼」, 『완전한 영혼』, 문학과 지성사,1992, 67~68쪽.)

    귀머거리 장인하는 91년 다시 5월이 찾아왔을 때 트럭의 클랙슨 소리를 듣지 못하고 트럭 속으로 빨려 들어가 생을 마감한다. 광주의 비극성이 장인하의 비극으로 다시 연결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정찬은 잔인하다. 희생자 의식을 극대화함으로써 자기 방식으로 광주의 ‘인간주의적 의미’를 형상화하려 고투하기 때문이다.

    즉, 정찬은 광주와 연결된 한 피해자를 그림으로써 현실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이 아닌 고결한 정신의 위대함을 형상화하고자 했다. 이 고결함은 5월 광주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현실 속에서 저항하고 자책하고 희망을 갈구하는 인물들이 이제까지 ‘광주에 투영된 얼굴’이었다면, 장인하는 마치 현실세계를 초월한 인간의 얼굴, ‘순수하고 이상적인 인간의 얼굴’로 그려진다.

    정찬은 장인하를 통해 “우리들의 좌절과 피투성이 역사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 그 역사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절대적 순수 공간을 보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정찬도 홍희담과 비슷한 맥락에서 장인하와 지성수를 대비시켜 광주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운동의 표상으로서 지성수와 순수의 표상으로서 장인하, 이들이 운명공동체를 이루는 순간 80년 광주의 보다 비극적으로 형상화되었다. 과거의 광주가 지성수로만 구성돼 있었다면, 정찬이 찾아낸 광주는 장인하를 포함한 ‘원형질로서의 인간’에 대한 탐구로 나아간 것이다.

       
      ▲ 정찬 「슬픔의 노래」

    「슬픔의 노래」(1995)는 「완전한 영혼」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5월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되었던 연극배우 박운형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80년 광주를 형상화한 소설 중에서 가해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문 경우에 속하는 소설이 「슬픔의 노래」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욱 문제적이다. 박운형은 죄의식으로 인해 자기 파괴적 속성을 내면화했는데, 자신의 고통의 출발점인 광주를 통해 오히려 예술적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구원이 광주 경험을 토대로 한 ‘자기최면상태’이기에, 오히려 더 비극적이다. 「슬픔의 노래」는 권력에 의해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도록 강요되었을 때, 운명의 당사자인 가해자가 어떻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예술가 소설의 형식을 차용했다.

    이 소설 또한 현실의 첨예한 대립에서는 벗어난 정신영역에서의 ‘광주민중항쟁의 비극성, 그리고 초극의 의지’를 밝히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광주에서,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칼이 몸 속으로 파고들 때 칼날을 통해 생명의 경련이 손안 가득 들어오지요. 그 경련이란, 뭐라고 할까요. 생명의 모든 에너지가 압축된 움직임이라 할까요. 그러니까 한 인간의 생명이 손안에, 이 작은 손안에 쥐어져있다는 것이죠. 마치 어떤 물질처럼. 그 물질은 돌멩이처럼 단단한 것이 아닙니다. 달걀처럼 으깨지는 것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자기와 똑같은 한 생명을 그렇게 쥘 수 있다는 것은……그것은……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쾌감입니다.”
    (중략)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쾌감이었지요. 더구나 그것은 반역사적 폭력이었습니다. 죄의식의 칼날은 예리하고 날카로웠습니다. 이 칼날을 막기 위한 갑옷이 바로 망각이었습니다”
    (정찬, 「슬픔의 노래」, 『아늑한 길』, 문학과 지성사, 1995, 275~276쪽.)

    박운형은 광주에 대해 “죽은 자들이 흘린 피의 의미, 그들의 눈물, 살아남은 자의 고뇌, 그리고 가해자의 잔인한 악몽과 죄의식 등등. 여기에다 한 가지를 덧붙이지요. 가해자 역시 희생자였다고. 왜? 권력에 눈먼 이들에 의해 이용되었으니까. 진실이 그렇게 단순한가요? 진실이 그렇게 일목요연하다면 세상은 참으로 명료하게 보이겠지요.”라고 항변한다.

    박운형에게 있어 광주는 다르다. 광주는 박운형에게 “생명의 원천”이다. 그는 “세계를 뒤흔들고, 세계를 꿰뚫고, 세계를 초월함으로써 생명의 원천을 깨우려”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상처를 예술로 승화하려는 노력 때문이다.

    광주는 제의성(祭儀性)을 지닌 대상이고, 살풀이를 통해 생명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연극이라는 예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정찬은 박제화된 광주의 진실에 가 닿을 수 있는, 한 가능성을 박운형은 통해 제시하려 한다. 그는 광주의 아픔을 무대의 견딤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무대 속에서 억압된 가해자의 욕망과 피해자의 고통을 희열과 쾌감으로 승화시키려 했다.

    그는 광주를 과거의 역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맹목적인 힘의 지배를 받았던 운명으로 해석하려 한다. 정찬에게 광주는 역사가 아닌 운명인 것이다. 따라서, 광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주체를 형성하고, 집단적 의지로 형상화 하려는 시도가 그에게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에리자베드 페리(Elizabeth Perry)가 혁명을 ‘맹목적 사건(Blind will)’과 ‘인간의 의지(Human will)’의 충돌로 보려 했다면 정찬은 맹목적 사건에 천착하면서 과거 ‘의지’ 중심의 해석방법에 거리를 두려했다. 정찬에게 광주는 운명이 개입돼 있고 알 수 없는 불확정성이 내재해 있는 곳이었다.

       
      ▲ 사진=5.18기념재단

    총을 들었던 자와 총을 들지 못했던 자,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일상인과 예술가의 경계가 흐트러지는 곳에 ‘사건과 대면하는 인간의 본령’이 존재한다. 그 본령에 가 닿기 위해 정찬은 연극이라는 예술적 장치를 활용하고, 80년 광주를 미학화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의 시도가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은 광주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기에 분명한 가치는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5. 예민한 역사적 감각의 회복을 위하여

    이제 다시 30년전으로 거슬러가 1980년 5월에 시선을 고정해 보자. 광주가 느껴야 하는 고립감, 그리고 언제 다시 밀어닥칠 지 모르는 폭력에 대한 공포는 광주를 ‘공동운명체’로 만들었다. 리나 레윈(Lina Lewin)은 운명의 상호의존성은 하나의 집단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고립된 장소에서 사람들은 상호 의존하는 공동운명체로서 자신들의 처지를 자각하게 된다.

    그것은 코뮨의 경험일 수도 있고, 해방의 경험일 수도 있으며,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공동체 구현’를 구현했던 소중한 경험일 수도 있다. 맹목적인 폭력은, 생명의 의지를 가진 인간들을 오히려 귀한 존재로 만든다. 한국현대사에서 광주의 경험은 국가 폭력에 맞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려 했던 소중한 코뮨의 경험’으로 의미화될 수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역사적 맥락에서 1980년 5월 17일 시작되어 5월 27일 제20사단 병력이 광주를 점령하기까지의 10여일이 가지는 의미는 언제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광주는 사회학적 의미에서 ‘중층결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는 본원적이다. 삶에 대한 본원적 의지가 동일자로 인식했던 인간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됐다.

    돌이켜 보면, 문학은 80년 광주의 현장을 증언하지 못하고, 80년 광주 이후만을 증언해 왔다. 1998년에 이르러서야, 임철우가 자신의 문학적 힘을 총결집해 광주의 현장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장편소설 『봄날』(문학과지성사, 전5권)을 써 낼 수 있었다.

    장편소설 『봄날』은 한원구와 그의 아들 삼형제를 등장시켜, 80년 광주를 현장에서 다각적으로 증언하려 했다. 증언이면서 문학인 이 작품은 광주시민이 어떻게 폭력에 반응하며 저항의 주체가 되어가고, 진압군인 가해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그토록 무자비한 적의를 표출하게 되었는가를 천착해들어간다.

    또한, 항쟁의 내부를 대학생과 지식인의 시각에서 분석적으로 보여줌으로써, 80년 광주를 역사적으로 의미화하려는 노력도 투여했다. 임철우의 장편 『봄날』 이후 80년 광주를 형상화하는 소설은 소강상태로 접어든 듯하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 혁명과 인간이 어우러진 거대하면서도 깊이 있는 서사가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탄생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한국문학은 80년 광주에 한해서 보자면 ‘쉼표 단계’에 있다.

       
      ▲ 사진=5.18기념재단

    문학이 인간을 해석하고 변화시키려는 지점을 주목해야 한다면, 문학작품 속에 그려진 진실은 움직이는 화두일 수밖에 없다. 임철우, 홍희담, 정찬은 광주와 연관된 문학적 상상력 확장에 고군분투했다. 홍희담의 「깃발」이 ‘집단의 의지’라는 구조 속에서 광주의 총체적 형상화를 기획하기는 했지만, 임철우, 정찬은 광주를 ‘개인화하면서 공통감각화’하려 했다. 1984년부터 형상화되기 시작한 광주문제 소설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움직이는 화두로 작가들의 창작의 의지를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작가들은 단편 「봄날」의 상주처럼 광주를 향해 문을 열어제끼지 못하고 있다. 한 작가는 고백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그동안 광주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앓기만 하며, 갚지를 못했다. 광주가 지면 이 땅이 지고, 그동안 이민족이 아닌 동족 군부독재에 시달려온 이 지구상 인류의 반이 진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제 어떤 형태의 ‘광주’에 대한 논의와 형상화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억압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치유되지도 않고 있고 치유하지도 못하는 현실 앞에 광주문제의 문학적 형상화는 갈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미 우리 안에 수 많은 ‘모순’들이 존재하고, ‘정신적 무감각’에 훈육된 주체들의 의지가 ‘미시적 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응달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광주의 어둠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어둠으로 국한되는 순간 우리들의 응달이 되고 만다. 그 구체적 장소에서 인간의 의식, 무의식에 대한 해명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방의 경험’ ‘코뮨의 경험’은 망각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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