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도 관리대상? 이 '더러운 세상'
        2010년 04월 28일 08: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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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에 또 황당한 뉴스가 있었다. 국회에서 <개그콘서트> 박성광의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지적을 한 사람은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고 들은 사람은 KBS 김인규 사장이었다.

    한선교 의원은 김 사장에게 "요즘 KBS의 어느 오락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더니, "저는 <개콘> 을 좋아해서 즐겨보는데, 한 코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면서 박성광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하는 대사를 콕 찍어 " <개콘>을 보면서 가장 찝찝한 부분"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이어 "그 대사만 없으면 더 재밌을 텐데 아이랑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장동혁에서 박성광까지

    김 사장은 "나는 잘 못 봐서 모르겠다, 심의팀이 알아서 하도록 전하겠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지난 번엔 ‘동혁이형’ 코너에서 장동혁의 샤우팅이 ‘국민을 천민화 혹은 폭민화할 우려가 있는 포퓰리즘 선동’이라는 비판이 나와 김 사장이 앞으로 챙겨 보도록 하겠다고 했었다. 장동혁에 이어 박성광까지, <개그콘서트> 사냥이 시작되는 것일까?

    <개그콘서트>는 다른 코미디 프로그램에 비해 유독 인기가 있었고, 그 인기의 이유는 시청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풀어주고 공감을 느끼게 하는 현실풍자에 있다고 분석됐었다. 바로 그것이 ‘그분’들을 ‘찝찝’하게 만든 것 같다. 현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가슴이 아픈’ 분들, 서민들이 통쾌하게 웃는 것에 ‘찝찝’한 ‘그분들’이 말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한 의원이 한 아래의 발언이었다.
    "어떻게 김 사장이 취임했는데도 이 프로그램에서 그런 대사가 나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이 얘기는 KBS 사장이 개그 프로그램 대사 하나까지 다 체크해가며 일일이 검열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걸 21세기에 국회의원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을 수 있나?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황당함이다.

       
      ▲개그콘서트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

    그 전까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든가 ‘동혁이형’의 샤우팅은 풍자의 일종으로 분류됐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선 막말 독설을 소개하면서 이 대사들을 예로 들었다고 한다. 그새 분류가 풍자에서 독설로 달라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풍자의 입을 봉쇄하려고 막말 방송을 규제해야 한다며 작년부터 그렇게 밑밥을 깔아놨던 것일까?

    웃음도 관리대상인가

    웃음에 대한 관용도에서 그 사회의 성숙함, 개방성, 유연함 정도를 알 수 있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는 웃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웃음은 권위와 엄숙주의를 부수는 수류탄과 같다. 웃음은 통제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웃음은 언제나 ‘그분’들이 보시기에 경박한 관리 대상일 뿐이다.

    더 나아가 웃음은 불온하기까지 하다. 다수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웃음은 당연히 서민의 코드와 맞아야 한다. 상위 1% 코드로는 짜증을 불러일으키지 웃음을 만들진 못한다. 서민의 웃음이란 결국 서민의 울화를 통쾌하게 풀어주는 것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서민의 울화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풀린다. 그것은 그 부조리한 세상의 입장에서 보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웃음은 영원히 불온한 것이다.

    또, 웃음엔 통쾌한 뒷담화의 성격이 있다. 우리 서민들은 퇴근 후에 술 한 잔하면서 관리자의 뒷담화를 하고, 오너와 경영자, 더 나아가 정치권력자의 뒷담화를 한다. 그게 사는 낙이다.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뒷담화는 웃음을 만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교시나 설교는 울화를 만든다. 개그프로그램이 세상을 말할 땐 설교가 아닌 뒷담화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게 웃음이란 것의 숙명이다.

    이러한 웃음을 포용하는 사회가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회다. 그래서 통제 독재체제에서 민주화된 사회로 성장하는 것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설명으로, ‘대통령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사회를 만든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근본주의 수사들의 재탄생

    새 시대의 ‘그분’들은 이런 웃음이 너무나 ‘찝찝’한 것 같다. 서민들이 웃으면 금방이라도 체제가 무너지고 국민이 폭민이 될 것 같아 두려운가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근본주의 수도사는 중세의 통제체제를 지키기 위해 웃음을 지우려 한다. 그는 조롱, 풍자 등으로 발생하는 웃음이 근엄한 중세를 무너뜨릴까 우려해 살인까지 불사한다. 그는 웃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사라지면 신은 필요 없게 된다고까지 말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 속에서 암흑기를 상징했던 그 근본주의 수도사가 21세기에 한국의 ‘그분’들로 환생할 줄 누가 알았으랴. 웃으면 국민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러면 권위가 전복될 거라는 망상 속에 사는 듯한 우리의 ‘그분’들.

    지금처럼 ‘그분’들이 TV 속의 웃음을 사냥해나간다면 개그 프로그램엔 말장난과 몸개그만 남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 코미디는 10년 이상 후퇴하고, 진짜 웃음이 유비통신이나 은어 시리즈, 화장실 낙서에서만 터져 나왔던 그 시절 암흑기로 돌아가게 된다. 촛불 없는 사회 만들더니 웃음 없는 사회까지 만드는 건가? 국민은 귀머거리 삼년, 봉사 삼년, 벙어리 삼년 신세로 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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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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