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웃겼는데, 이제 섬뜩하다
        2010년 04월 20일 09: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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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리의 신곡 뮤직비디오가 KBS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아 화제다. 그 이유가 도로교통법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것이어서 특히 더 화제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든가, 도로 위에서 걸었다든가, 등등의 장면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과거에도 도로교통법 때문에 뮤직비디오가 방영불가가 되는 일은 가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일들의 반복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 요즘 분위기가 워낙 하수상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의사표현, 문화 활동에 대한 통제가 심화되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요즘이다. 1970년대가 연상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뮤직비디오와 도로교통법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막말이 나온다고 수차례나 지적이 나왔다. 그러더니 <개그콘서트>의 ‘동혁이형’에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KBS 사장이 ‘동혁이형’을 챙겨 보겠다고 말했다.

    <미녀들의 수다>에서 ‘루저’ 발언이 나왔을 때도 반응이 수상쩍었다. 물론 ‘루저’ 발언이 정당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할 일도 아니었다. 어떤 여대생이 헛소리를 한 것에 불과한 일이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 이후에 나타난 여대생에 대한 사생활 침해였다.

       
      ▲ 이효리의 4집 타이틀곡 ‘치티치티 뱅뱅'(Chitty Chitty Bang Bang)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도로 위를 걷고 있거나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운전하는 장면 등이 문제가 되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과열되며 지도층 인사들이 자제를 호소해야 할 시점에, 국회에선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도하는 모임이 ‘루저’ 발언과 <미녀들의 수다>를 성토하는 행사를 가졌다. 그건 마치 이 기회에 약점을 잡아 방송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처럼 느껴졌다. <미녀들의 수다>는 결국 <쾌적한국 미수다>로 개편된다는데, 벌써부터 관제 홍보방송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막장드라마라든가, 막말, 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며 방송 표현을 위축시키는 발언이 툭하면 터져 나온다. 바른 생활 바른 표현만 보여주라고 방송을 윽박지르는 것 같다. 실제로 요즘 들어 발언 수위가 상당히 낮아진 것이 느껴진다.

    당장 <무한도전>에서 정준하의 별명인 ‘쩌리짱’이 사라진다고 한다. 이렇게 사소한 표현에까지 통제가 가해지는 시점에서 이효리 뮤직비디오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러므로 통상적으로 있어왔던 일이라고 가볍게 넘기기가 힘들다.

    마침 직전에 비의 뮤직비디오도 같은 이유(도로교통법)으로 KBS에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유승찬과 싸이-김장훈의 뮤직비디오도 같은 처분을 받았는데,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장면과 길거리 응원을 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올드 보이들의 시대

    국민의 사소한 생활규범과 문화적 표현에 도덕 통제가 가해지던, 머리카락과 치마 길이를 국가가 정해주던, 군사독재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법과 질서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규격화된 모습만을 표현할 수 있었던 사회. 반서민성을 도덕윤리란 명분으로 가리는 교묘한 통제. 그때 그 시절 ‘올드 보이’들이 돌아왔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런데 웃기는 건, <무한도전>이 방통위로부터 질책 받을 때 <스타킹>은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이다. <스타킹>은 선정성이나 상업성 등에서 만만치 않게 문제가 될 만한 방송이다. 박정희 스타일대로 ‘묻지마 통제’가 아니라 뭔가 편의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기존의 지배질서에 위협이 되지 않는 상업성은 수위가 지나쳐도 넘어가주지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는 것에는 냉정한 잣대를 대는 것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이 약자의 시선을 견지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고, 이명박 정부를 구성하는 ‘올드 보이’들이 호환마마보다 무서워하는 ‘네티즌 어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방송이라는 특징도 있다. 즉 어느 모로 보나 불온했다.

    이효리나 비의 뮤직비디오는 상징적인 엄포의 효과가 있다. 이 정도 대스타도 피해갈 수 없으니 너희들도 알아서 법질서를 잘 지키라는 엄포 말이다. 이 정부는 엄포의 효과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유인촌 장관은 회피연아 동영상을 올린 네티즌을 고소했다. 이것도 엄포 효과를 노린 것으로 생각된다. 소가 웃을 일이었지만, 네티즌에겐 실질적인 공포를 느끼게 했다.

    촛불집회 하지 말라는 얘기?

    이효리 등의 뮤직비디오에서 문제가 된 것이 도로교통법이라는 것도 수상쩍다. ‘도로 위를 뛰거나 걷지 마라, 도로 위에서 춤추지 마라, 도로 위에서 집단행동을 하지 마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촛불집회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

    막장드라마의 문제를 그렇게 지적하더니 정작 막장드라마인 <수상한 삼형제>는 멀쩡히 잘 방영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끊임없이 경찰과 검찰 등 공권력을 미화하고 그들에게 도전하는 ‘폭도’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만약 거꾸로였다면, 즉 철거민들의 편을 들면서 경찰의 진압방식을 문제 삼았다면 진즉에 막장드라마라며 경고를 먹지 않았을까?

    1970년대의 ‘묻지마’ 통제보다 더 괴상한 ‘내맘대로’ 통제다. 어떻게 보면 우스운 일인데, 별다른 정치색이 없는 개그맨 김미화조차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촘촘히 옥죄고 있으니 섬뜩하다. 처음엔 웃겨보였던 올드보이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실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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