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그 맞은 편의 역사
    2010년 04월 10일 02: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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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은 단순한 ‘행위’ 하나에 그칠지 모르겠으나, 거울 속의 또 다른 나는 내 ‘행위’의 통제를 받아 같은 행위를 해야 하는 종속된 처지에 불과하다. 역사도 그렇다. 승자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패자의 역사는 종속된 기록에 불과하다.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에두아르노 갈레아노, 책보세, 27,000원)은 인류 시초부터 현재까지 세상에서 일어난 600여 편의 독특한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이야기는 시처럼 짧지만 탄력적이고 흥미진진한 서사구조와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록들이 승자의 맞은편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콜럼버스의 위대한 발견’이라 불리는 1492년의 항해는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인 원주민들에게는 치명적인 재앙이었다. 이날 이후 수천만 명에 이르던 원주민은 수백만 명 이하로 급감하였다. 콜럼버스와 그 후예들은 ‘건강하게 남아 있던’ 세상의 절반을 하루아침에 작살내버린 셈이다.

   
  ▲책 표지 

이 책은 바로 이런 역사인식에서 출발한다. 권력자, 지배자, 약탈자의 시각으로 기록하고 유포한 역사를 통쾌하게 뒤엎는다. 서구 정신문명의 줄기를 형성해온 많은 ‘위인’들의 허상을 풍자하고, 이단들의 수난을 애도한다.

즉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핍박받은 사람들의 역사로, 판에 박힌 기존의 ‘역사’에서는 말해주지 않은 또 하나의 역사다. 피라미드와 신전을 세우느라 돌에 깔린 사내들, 남성들만의 세상에서 마녀 취급을 받은 여성들, 총포를 앞세운 서구의 침입자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자기 땅에서 쫓겨나고 학살당한 남반구의 원주민들이 저자의 역사를 구성한다.

갈레아노는 이 책에서 왜 “인간은 욕망으로 만들어진 존재”인가를 말하고, “뒤바뀐 세상이 실제 세상을 조롱한” 역사를 얘기한다. 증오와 맹목의 잔혹사를 통해 “우리 모두가 폭력자”였음을 고백하고, 오만과 탐욕의 역사를 통해 “산자들의 세계로 되돌아온 죽은 자”들의 만행을 고발한다.

또 “자기 머리를 잃은” 혁명을 조롱하고, “전쟁과 폭정 그리고 금지된 것들”의 역사를 파헤친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 대한 총체적인 재고조사를 통해 “삶은 오직 상처를 가진 것들 안에서만 고동쳤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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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Eduardo Galeano)

1940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난 갈레아노는 14세에 사회주의 성향의 일간지《엘 솔El sol》에 풍자만화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21세(1960)에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주간지《마르차Marcha》의 편집장이 되어 1964년까지 재직한다.

이후 2년간 일간지《에뽀까Epoca》에 논설을 썼으며, 1971년에 대표작《수탈된 대지Las venas abiertas de America Latina》를 출간하여 서구의 500년에 걸친 라틴아메리카 수탈을 고발하였다. 1973년, 쿠데타정권에 의해 마르크스주의자라는 혐의로 체포되어 풀려난 후 아르헨티나로 망명하여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예술을 다룬 대중문화잡지《끄리시스Crisis》를 발간하였다.

1976년, 아르헨티나에 군부쿠데타가 일어나자 에스파냐로 망명하여, 아메리카 초기부터 1980년대까지를 살았던 다양한 역사 인물들(장군, 예술가, 혁명가, 노동자, 정복자, 피정복자)을 다룬 3부작《불의 기억Memoria del fuego》을 썼다.

1984년, 해금되어 고향 몬테비데오로 돌아온 갈레아노는 라틴아메리카 정치, 경제, 사회의 제반 문제에 천착하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해왔다. 2008년에는 감춰진 세계사 600여 편을 모은《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Espejos. Una historia casi universal》를 출간하여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박물관 안에 감금된 역사를 구제하여 자유롭게” 하였으며, “소수자와 무명씨 그리고 약자와 피지배자를 주체로 한 역사를 복원”하였다.

역자 – 조구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콜롬비아 까로 이 꾸에르보 연구소에서 문학석사, 뽄띠피시아 우니베르시닷 하베리아나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비교문학연구소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에서 Post Doc. 과정을 이수했다. 배재대학교 스페인어ㆍ중남미학과에 재직한 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사회》(공저) 등을 쓰고,《백년의 고독》《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칠레의 모든 기록》《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사랑의 모험》《항해지도》《어느 미친 사내의 5년 만의 외출》《룰루의 사랑》《터널》《암피트리온》《과학의 나무》《재건》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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