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IBM & 죽음과 침묵
        2010년 04월 07일 08: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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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가까운 친구가 『삼성을 생각한다』 책을 빌려줄 테니 읽어보겠냐고 물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거절했습니다. 실은 저는 그 책 안에 들어있을 내용들이 겁이 납니다.

    내가 그 책을 읽지 않은 이유

    삼성이 얼마나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는지 수차례 들었지만, 또 그들이 고 박지연씨나 고 황유미씨와 같이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린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대했는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 비슷한 사실들을 또 한번 책에서 확인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다.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 광고하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하버드에서 공부하는 제 주변의 훌륭한 친구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던 그 삼성이 존경 아니 존중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기업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 23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박지연씨 생각을 다시 합니다.

    보스턴 보건대학원의 리차드 클랩(Richard Clapp) 교수 마음 속에도 비슷한 무엇이 있었을까요. 클랩 교수는 미국 전자산업의 메카라 불리는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하는 그의 변호사 친구로부터 어느날 전화를 받았습니다.

    IBM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린 노동자들의 소송을 맡고 있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름아닌 IBM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건강 관련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데, 분석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요.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작은 연구비는 사소한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미국 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의 반대 편에 서야 하고, 그 대기업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언론들로부터의 지저분한 공격들을 감수해야 하지요.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 하구요. 특히나 숨 쉴 틈 없이 경쟁적인 미국 교수사회를 생각하면, 돈 안되고 명예도 되지 않을 그 일을 클랩 교수가 맡을 이유는 없었겠지요.

    어떤 변호사와 어떤 학자

    하지만 그는 그 일을 받아들입니다. 1961년부터 1991년까지 IBM에서 일했던 33,730명의 노동자들을 건강 자료를 분석해 암 사망 비율을 계산하고, 그들의 직업이 뇌종양, 신장암, 유방암 들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결과물을 법정에 제출합니다.

    그가 법정에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증언을 하기 1주일 전부터 그는 IBM이 고용한 변호사들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변호사들은 보고서의 한 문장 한 문장에 시비를 걸었습니다.

    예를 들어 관련 자료로 제시한 항공 우주 산업 노동자에 대한 논문을 이야기하며, IBM 노동자들은 항공우주산업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묻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굳이 확인하려 했지요. 또 어느 논문이나 연구가 그러하듯이 논문 말미에 정확한 연관성을 알기 위해서는 이후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한 문장에 대해 “그러니까, 연구가 더 필요한 것 맞지요?”라고 물어왔구요.

    심지어 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같은 질문을 4번씩, 5번씩 반복해서 물어보며 혹시라도 클랩 교수의 답이 달라지지 않는지를 확인했습니다. 클랩 교수는 변호사들로부터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대답을 하다가 보스턴으로 비행기를 놓치기까지 했습니다. 변호사들은 무엇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감히 이 싸움에 끼어든 클랩교수를 지치게 만들어 소송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온갖 일들을 감수하고 제출한 보고서는 결국 법정에서 공식적인 자료로 채택되지 않습니다. 당시 판사는 클랩 교수의 연구가 IBM 노동자들의 암 발생 소송과 관련해서 직접적으로 중요하지 않으며 또한 편파적이라고 이유를 말했습니다.

    왜 암역학 전문가인 클랩교수의 연구가 편파적인지에 대해서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판사는 현재 IBM을 고소한 노동자들 중에서 2명이 살아있는데 보고서는 사망율을 연구했다는 점을 들어 소송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IBM에서 일하다 암에 걸린 노동자들은 소송에서 패배합니다.

    IBM 노동자 패소

    한국에서도 작년과 재작년에 산업안전공단을 통해 직업병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역학 조사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삼성 홍보팀에서는 2차례에 걸친 연구를 통해 직업병이 아니라고 밝혀졌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결과만이 공개되었지 그 연구가 삼성의 말처럼 신뢰할 만한 것인지 혹은 미국 판사의 말처럼 만에하나 ‘편파적’이지는 않은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싸움의 시작이었던 고 황유미씨가 일했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을 한 신문 기사는 1983년 건설 당시 보통 1년 반 걸리는 생산라인을 6개월만에 완공해낸,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랑스러운 곳으로 묘사했습니다.

    이제는 그 기사를 인터넷에는 찾을 수 없고 반올림 카페 자유게시판에서만 볼 수 있지만요 ( http://cafe.daum.net/samsunglabor). 그 공장의 오래된 수동 라인인 3라인에서 세척 작업을 하다가 20살에 암에 걸린 황유미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서 속초로 돌아오는 길에서 택시기사인 아버지의 차 안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더욱이 같은 라인에서 함께 2인 1조로 일했던 이숙영씨 역시 같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어요.

    지금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건강과 관련된 데이터를 아예 구할 길이 없지만, 설사 데이터를 구해서 연구를 한다고 해도 산업안전공단의 연구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요. 통계적으로 연관성이 충분치 않다구요.

    만에 하나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저는 그 결론이 옳으니 황유미씨의, 이숙영씨의 백혈병이,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렸어도 감히 세상에 알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병이 직업성이 아니라고 말을 하기 이전에, 그것을 말하는 학문적 언어 자체에 회의가 들 것 같습니다.

    학문적 언어의 보수성

    2인 1조로 함께 일하던 20대 여성 2명이 비슷한 시기 같은 백혈병을 발병해서 사망을 했어도, 직업병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 학문 언어의 보수성에 대해 말이지요. 그런 학문의 언어로 학자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요.

    그 ‘보수적인’ 학문의 언어로 IBM 암 발생 노동자의 편에 섰던 클랩 교수에게로 돌아가 봅니다. 미국의 한 저널은 클랩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저와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이 묻고 싶었을 질문을 그에게 던집니다. 그의 대답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진실의 편에서 약자와 함께 싸웠던 많은 이들의 대답과 다르지 않아 새롭지 않습니다.

    인터뷰어 : 왜 이런 일을 하지요? 돈 때문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클랩교수 : 골리앗에 맞서는 것이지요. 법정에서 노동자들은 보통 이길 수 없습니다.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변호사는, 어떤 학자는 그들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 * *

    클랩 교수의 IBM 노동자 관련 암 연구와 인터뷰는 다음 저널에 발표되었습니다.
    <Mortality among US employees of a large computer manufacturing company: 1969-2001> Clapp RW, Environ Health. 2006 Oct 19;5:30
    <IBM EMPLOYEES v. IBM: PITFALLS AND OPPORTUNITIES OF LITIGATION-GENERATED RESEARCH> New Solut. 2005;15(3):27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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