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북좌파 되고 싶다면, 주체사상 계승하라”
        2010년 10월 21일 11: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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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의 민주노동당 비판과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의 경향신문 절독으로 불거진 진보진영 내의 북한 3대 세습 논쟁이 꽤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진보정치와 관련된 수많은 논쟁들이 생겨나고 잊혀 갔으나, 이 세습 논쟁은 여타의 다른 논쟁들과 달리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 논쟁이 소위 ‘진보진영’ 내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논쟁에 NL과 PD의 대립, 자주파와 평등파의 대립이라는 고전적인 진보진영 내의 이분법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이슈가 범국민적(?) 의제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합치니 나누니 하는 이야기 등은 ‘아웃 오브 안중’이다. 그러나 북한 세습이라는 이슈는 안보 문제라는 이유로 국가적 이슈로 취급된다. 다른 말로 하면 조중동과 한나라당과 같은 보수우익들도 크게 다루는 이슈라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세 가지 입장

    이 이슈가 크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다루어지는 후자의 이유가 바로 좌파들이 이번 논쟁에 끼어들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현재 진행되는 북한 3대 세습과 관련된 진보진영 내의 논쟁은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갈려져 있다.

    첫 번째 입장은 ‘남한의 진보세력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봉건적인데다 사회주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북한의 세습을 옹호하는 친북주사파 세력은 진보세력이라 할 수 없으며, 이들의 존재가 진보세력의 앞길을 망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입장은 북한의 세습에 대해 침묵을 지키기로 한 민노당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하나는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곧 북한과의 대화 통로를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잣대로 북한에서 일어나는 세습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입장은 ‘북한 문제에 있어서만은 진보적이지 못한 민노당의 태도는 잘못되었으나 북한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고 진보가 아니라는 식의 규정은 진보판 색깔론이기에 경계해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첫 번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즉 나는 민주노동당이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한 공당이며 남북통일을 원한다면 북한의 세습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논객들이 밝혔으므로 이에 대해 더 이상 덧붙이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노당 비판이 진보판 색깔론이라는 의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북한 세습이라는 이 이슈가 우파들도 크게 다루는, 범국민적 의제이기 때문이다. 민노당에 대한 비판이 색깔론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이들이 경향을 비롯한 진보인사들의 민노당 공격이 조선일보의 공격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동안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빨갱이 정부로 규정하고 북한 인권과 민주주의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진보인사들을 매도해왔다. 개혁, 진보진영의 후보들에게 북한의 지도자에 대한 의견을 밝히라고 압박하고 이들이 북한 지도자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지 않으면 사설이나 칼럼으로 이들을 북한 지도자를 옹호하는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대선 때마다 조선일보가 써먹던 수법이다. 이런 조선일보의 수법이 ‘진보라면 북한을 비판하라.’고 압박하는 경향신문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의 차이?

    물론 당연히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은 다르다. 의도도 다르고 목적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다른지’가 현실에서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을 비롯한 민노당 비판자들(편의를 위해 이들을 ‘반북좌파’라고 부르겠다)이 친북좌파들을 비판하는 논리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우익들이 친북좌파를 비판하는 논리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진정한 진보라면 사회주의적 가치를 한참 벗어난 북한 정권을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은 보수우익들도 늘 써먹는 레토릭이다. 극우언론인 조갑제는 자유선진당이 제일 오른쪽에 있고 한나라당이 가운데, 반북좌파가 왼쪽에 있는 정치구도가 한국에서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으며, 희극적이게도 진보신당이 창당될 때 이들을 반북좌파로 규정하며 환영하기도 했다.

    반북좌파는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대한민국 헌법체제를 긍정하기 때문에 국가의 정치체제 내에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1751.html)

    또한 조선일보는 최근 칼럼을 통해 북한 3대 세습 문제야말로 진보좌파의 시험대이며, 북한을 비판하는 진보좌파의 고민의 결과로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지향하는 그들 나름의 대북정책이 만들어질 때 우리 사회에도 ‘지속가능한 진보좌파’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14/2010101402492.html)

    즉 북한을 비판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명제에 치중하다보면 한국 사회 내에서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진중권은 진보세력이 북한을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 중 하나로 진보진영이 필요할 때 북한의 잘못된 점을 비판함으로써 보수우익이 북한에 대해 비판하지 않느냐고 진보진영에게 휘두르는 이념공세를 허탈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하면 진보진영의 북한 비판이 언제든지 보수우익의 이념공세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북한을 비판하거나 비판하지 말자는 이유들

    정리하자면, 나는 보수우익세력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 북한을 비판하는 주장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논리로 비판하느냐’에서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비판대상의 동일성과 논리의 유사성으로 인해 이 이슈는 언제나 보수 세력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먼저 제시한 ‘복지국가’ 담론과 ‘서민 정당’ 이미지는 한나라당도 무리 없이 사용하고 있다. 현실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실제 정책 생산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우익의 담론과 이미지가 진보진영의 그것보다 더 잘 먹혀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이 이슈가 진보와 보수의 가치, 좌파와 우파의 대립을 은폐하는 친북과 반북, 애국과 반국가의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반북좌파들은 단순히 친북좌파들을 비판하는 걸 넘어서 반북좌파와 반북우파가 무엇이 다른지도 드러내야 한다. 우파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또한 상상은 하지만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와 대의를 제시해야한다.

    다행히도 진보논객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소 감정적이고 원색적으로 진행되던 초기와는 다르게 반북우파와 반북좌파를 구별해줄 수 있는 논점을 소수이나마 제기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논의 중 하나는 한윤형의 글 ‘황장엽과 리콴유, 어떤 반민주주의자들의 판타지’이다.(http://hook.hani.co.kr/blog/archives/13785?utm_source=twitterfeed&utm_medium=twitter)

    한윤형의 논의는 싱가포르의 리콴유의 사례를 들며 세습은 절대악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세습 역시 그 나름의 사정에 적합한 승계 방식일 수 있다고 주장한 김기협(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1009103042§ion=05)을 겨냥하고 있다.

    그는 김기협의 주장이 이른바 ‘민주화 세력’ 내의 일반적인 논리가 아닐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그가 지니고 있는 ‘환상’은 민주화 세력 일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김기협은 삶의 질의 개선을 이뤄낸 리콴유의 세습을 예로 들어 세습이 절대악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박정희에 대해서는 경제성장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협의 이 논리는 우리가 이뤄낸 ‘민주화’가 민주주의 이론을 제대로 체현한 것이 아니라 독재자들의 ‘무능함’을 민주화 세력이 대체할 수 있다는 차원의 논리였음을 폭로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논리에 따라 김대중의 노무현의 유능함은 독재자들의 무능함과 비교되고, 이 유능함은 시장자유를 더 제대로 인정했다는 점에 있기에 우리의 민주화는 곧 신자유주의를 향해 돌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노무현을 지지하던 이가 이명박을 지지한 이유는 이 유능함에 대한 지지에 있다.

    즉 한윤형은 ‘세습이 절대악’은 아니라는 김기협의 논리가 민주화 세력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한 주체들일 수밖에 없게 된 그 논리를 드러낸다고 비판함으로써, ‘밥 먹여주는 유능함’과 ‘밥 못 먹여주는 무능함’이라는 구도가 은폐하고 있는 독재와 민주화의 구도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반북우파들은 북한의 독재체제를 자유민주주의의 논리에 따라 비난하면서 ‘밥 먹여줬다는’ 이유로 박정희를 찬양하곤 한다. 민주화 세력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진보세력은 독재세력과 민주주의 세력의 대립을 강조하며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규탄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행태들에 대해선 눈감고 있다. 즉 이들 모두 북한의 세습독재를 비판한다곤 하지만 이 세습독재의 반대항인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막상 크게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배부르면 다냐?

    그렇기에 조선일보가 흔히 하는 수사인, ‘지도부만 배부르고 대다수 인민들이 굶어 죽는다는 이유’는 좌파들, 진보인사들의 입장에서 북한 권력의 세습을 비판하는 본질적인 논리가 되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유능한 김정은이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북한의 경제성장을 일구어내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북한을 비판할 수 없는 것인가? 적어도 박정희를 찬양하는 보수우익들은 북한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반북우파와 민주화 세력은 북한의 인권이네 민주화네 떠들지만 정작 그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햇볕 정책은 북한에게 ‘어느 정도의 지원’(그들에게 밥을 먹여주자)을 할 것인가에 치중한 정책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핵을 포기하면 지원한다, 개혁 개방을 하면 지원한다는 식의 조건부 햇볕정책이다. 결국 민주화 세력과 반북우파 세력 모두 북한에게 어떻게 지원을 하느냐는 식 이외의 대북 혹은 통일정책이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이들의 대북정책이 ‘경제성장이 민주화를 이끌어낸다.’는 ‘선경제성장 후민주화’의 한국식 민주주의 담론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좌파는 북한 독재자들의 ‘밥 못 먹이는 무능함’보다 ‘민주성’(혹은 이것이 과연 사회주의인가)을 문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이에 맞춰 북한에 대한 단순한 경제지원 뿐이 아니라 민주화를 이끌어낼 대북 혹은 통일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좌파가 내세운 주목할 만한 다른 논의로는 박가분이 쓴 ‘주체사상의 종언과 진보의 종언’이라는 글이 있다.(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0286) 박가분은 이 글에서 민노당으로 대표되는 NL들은 물론 진중권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 역시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북한정권 나쁜 놈들이라는 조선일보와는 전혀 다를 것 없는 ‘형식적 비판’만 반복할 뿐 북한 문제를 해결할 주체로 개입할 수 있는 어떤 비판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진영의 반성은 과거에 실천적 힘을 지닐 수 있었던 주체사상이 사상내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해명함으로써만 가능해진다. 현재 한국의 보수우익과 진보좌파는 주체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할 뿐이다. 그러나 진보는 오히려 주체사상을 새롭게 수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북한 정권과 북한 인민들을 분리하여 북한 인민의 무기력함과 북한 정권의 무도함만을 강조하면서 개입을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인민들을 철저하게 탈-주체화하는 그들의 주장은 반민중적 사고에 불과하다. 그들은 주체사상이 어떻게 북한 인민들의 사고에 영향을 주었는지, 북한인민들의 지도자에 대한 숭배는 어디서 기인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좌파들은, 그리고 북한 인민들은 그렇게 걱정하는 진보진영은 제국주의 종속 아래에서 남한 민중을 구출하고자 했던 연대의지의 표명이었던 ‘주체사상’을,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북한의 민중과 연대하겠다는 방식으로 계승해야 한다.

    주체사상을 계승하라

    진보적 사상은 민중에 대한 신뢰로부터 온다는 것을 믿는다면, 남한의 진보세력은 남한 내에서의 정치적 당위로서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접근방식에서도 실증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좌파들은 북한의 인민을 정치적-민중적 ‘주체’로 새롭게 호명하여, 어려운 상황 속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흡수되지 않는 북한 내부의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을 촉발시키는 방식의 ‘진보적 개입’을 추진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좌파는 북한 민중을 탈-주체화하는 모든 반북우파들의 논리와는 다르게,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주체사상을 되살려 그들과 연대하는 방식의 개입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지도부의 탐욕을 강조하고 북한 인민의 굶주림을 강조하는 형식적 비판에서 벗어나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 더 나아가 그들의 (부르주아적이지 않은) 민주화를 이끌어내어 통일 후 한국에서 좌파세력의 장기 집권을 준비하는 것이 좌파들이 ‘반북’을 주창하면서 내세워야할 논리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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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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