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비정규직의 또 다른 이름
By 나난
    2010년 03월 29일 02: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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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선 77일간의 공장 점거파업을 끝내고 공장 문을 나섰다. 그로부터 200여일. 2010년 3월, 파업에 참가했던 노동자들과 쌍용차 공장,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에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당신과 나의 전쟁’ 제작에 참여한 미행(美行) 등이 쌍용차 노동자, 그 가족, 그리고 금속노조를 비롯한 다양한 제 노동․정치․사회단체․교수․작가들의 글을 통해 쌍용차 “파업 그 후”에서부터 비정규직, 정리해고가 만연한 우리사회를 되돌아보는 ’88만원 세대와 쌍용’, ‘한국사회와 노동자 파업’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쌍용차 투쟁과 현재를 점검한다. <편집자 주>

88만원 세대… 과연 현재 나는 어떠한가 생각해 본다. 1993년 6월 당시 대기업이었던 쌍용자동차에 입사했다. 젊고 젊은 20대 중반. 대기업에 입사해 3개월 만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어떻게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자동차 회사가 있어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대기업이고 당시의 국내 열손가락 안에든 모 그룹에 속해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노동조합도 있다.

일하면서 어려운 일이나 고충이 생기면 언제든지 노동조합에 찾아가 이야기하면 그것을 해결해 주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 또한 적지 않다. 자녀 학자금은 물론 내가 야간대학에 갈 경우 학비까지 나오는 내용이 단체협약에 체결돼 있다. 또 혹여 다치기라도 하면 공상과 산재로 인정해주는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88만원 세대’란 단어가 없던 시절

그러다 보니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이 평생직장이요, 젊음을 바쳐도 된다는 생각에 빠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당시 ‘88만원 세대’란 단어 자체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던 시대였던 것 같다. 내가 다니는 직장만 해도 영업사원이 고객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영업사원을 찾아가 차량 판매를 사정하는 모습까지 목격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고 기막힐 노릇이다.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세월이 흘러 김영삼 정부 때, 97년 IMF의 위기가 닥치고 한국 사회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내 직장 또한 자금난으로 위기에 직면했고, 결국에는 인수 합병되는 처지의 신세가 됐다. 쌍용차를 인수한 기업은 바로 대우그룹이었다. 당시 총수였던 김우중 회장의 헐값 인수 소문이 나돌았고 사내 분위기는 흉흉했지만 노동자인 우리들로서는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쌍용차에서 대우로 인수 합병된 후 관리직 포함 현장 근무 동료들은 희망퇴직으로 직장을 떠나야 했고, 영업으로 전직을 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당시 같은 공장에서 함께 일을 했음에도 쌍용차와 대우차의 임금격차가 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는 분위기였다. 결국 동일노동-동일임금 쟁취를 하지 못한 채 임금격차를 조금 줄이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해서는 안 될 배반이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폭이 증가하는 형국이었던 것 같다. 2001년 대우 사태로 인해 쌍용차는 대우에서 다시 쌍용자동차로 되돌아왔고, 워크아웃 기업 상태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정관리 후 급여체불이 뒤따랐으며, 이로 인해 평택시의 경제 또한 하락했다. 문을 닫는 식당들이 즐비했고, 평택을 떠나는 자영업자도 많았다.

하지만 쌍용차는 ‘다시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을 쳤고, 법정관리 1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경이적인 힘을 발휘했다. 노동자들은 성과급과 우리사주를 받아 지급이 두둑해지는 행복한 직장생활로 돌아갔다.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은 법정관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내 직장을 지킨다’는 신념이었던 거다. 하지만 정부는 결국 쌍용차를 해외 자본에 매각했다. 2001년 전 대우차에서 다시 쌍용차로 돌아온 후 지난 2004년부터 매해 흑자를 기록했던 기업을 매각한 것.

이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기술유출의 위험성을 알리고 해외 매각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정부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불응하고 2004년 11월에 중국 상하이차라는 기업에 매각을 하고 말았다. 상하이차는 쌍용차를 인수하며 매년 3천억씩 4년 동안 1조 2천억을 투자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이었다. 3년 동안 쌍용차를 경영하며 기술을 빼가는 데만 열을 올렸을 뿐이었다.

그로 인해 2006년부터 흑자였던 쌍용차는 적자로 돌아섰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인 신차개발을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차 없이 생산은커녕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노조는 상하이차에 신차개발 촉구와 투자약속 이행하라고 주장했지만 묵살됐다.

쌍용차는 지난 2008년 말 진보적 성향의 노조 임원이 당선되자 임금 체불은 물론 복지 축소로 노동조합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욱 힘겨워졌으며 은행에 대출을 받아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겨움은 그 이전부터였다. 그 동안 쌍용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파견을 눈감아 주었으며 더 나아가 사측에 의한 도급화를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노동자가 해서는 안 될 배반을 수없이 해왔다 것을 알게 되었다.

설마했던 정리해고

우리 노동조합은 정규직 중심이었고, 그나마도 진보적인 성향의 노동조합은 선출되지 못했었다. 자신의 임금격차에 분노했으면서, 같은 일을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낮은 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책임지지 못했다. 그저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 거 같은데” 하며 바라만 보았던 것 같다.

현장 라인에서 일하는 바로 옆 동료가 비정규직이고, 동일 노동을 하면서도 그들은 정규직의 70%가량 밖에 되지 않는 급여를 받았고 노동법과 단협은 정규직만의 것이었다.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동료들이 먼저 떠나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닌데 나 또한 저럴 수 있겠구나 하고 늘 생각해 왔는데 결국 그런 현실은 너무 빨리 찾아오고야 말았다.

상하이차와 그 경영진은 노조 길들이기로 동료들을 갈라치기 했다. 2008년 12월 상하이차는 임금 체불을 하다못해 회생가치가 있는 기업을 주주총회도 거치치 않은 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중국으로 도망가 버렸다. 노조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구조조정은 곧 정리해고라는 공식은 우리나라처럼 사회 안전망이 전무한 상황에서 모든 고통을 개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투쟁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함께 싸울 수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임금체불로 인해 은행을 이곳저곳 전전 긍긍하며 어떻게든 대출을 받아 살아보려 노력하였으나 허사였다. 정리해고를 당해보니 가정생활은 한없이 궁핍해지고 허리띠를 더 이상 졸릴 수도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실업급여를 받고도 모자라 막노동을 나가 벌어도 비오는 날은 집에서 쉬어야 했고, 대리운전은 물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료도 있었다.

쌍용차 출신이라는 낙인

다음 달이면 실업급여 수급이 끝나는 달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고민해 보지만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정부는 300만개 일자리 창출을 한다는데 그 300만 일자리 중에 나에게 돌아올 일자리는 과연 있을까?

희망퇴직을 했던 어느 동료의 하소연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자기는 “노동운동의 노자도 모르며 그저 두려워 희망퇴직을 했고, 다시 취업해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력서의 ‘쌍용차 출신’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서류전형에서부터 퇴짜”라고 했다.

한번은 쌍용차 경력을 뺏더니 면접 후 바로 채용됐다. 하지만 이도 얼마가지 못했다고 한다. 사측에서 “왜 쌍용차 경력을 뺐느냐”며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쌍용차 노동자들은 쌍용차에서만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 이상 근무하며 젊은 청춘을 받쳤다. 하지만 이제는 ‘쌍용차 출신’이라는 것으로 인해 하소연도 하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난 쌍용자동차 노동자다. 88만원의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기고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고 너무나 막연했다. 세대 간의 불균형… 하지만 쌍용차의 문제 원인은 과연 세대 간의 불균형일까. 아니면 현 정부의 정책의 불균형일까? 아니면, 한국사회 자체의 불균형일까?

상위 10%가 남한사회를 이끌고 있으며, 기득권이 득실거리는 사회에 88만원이 아닌 그 이하의 세대가 늘어나는 현재의 모습에 과연 나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87년 민주화 운동으로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맞이했다고 한다.

대가를 치르는 것인가?

하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시절에도 서민들의 삶은 여전했던 것이 아닐까? 이명박 정권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며 당선됐지만, 그가 내세운 747 공약은 허공에 불과할 뿐이다. 국가부채 700조, 가계부채 400조, 단기시간근로자 500만, 빈부격차 7.8배로 OECD국가 중 최하위다. 이것이 바로 10년 전의 3배에 이른다.

진정 우리 사회가 잃어버렸고, 되찾아야할 사람들은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20대와 제2의 88만원 세대가 돼 가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와 생산직 노동자, 나이 먹고 폐품 처리 되듯 버려지고 있는 늙은 노동자들이 아닐까?

   
  ▲ 지난 해 여름, 경찰과 용역이 들이닥치기 직전 농성 중인 한 조합원을 아내와 아이가 찾았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쌍용자동차 공장 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우리가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던 것처럼, 88만원 세대라는 이름까지 생겨버린 청년과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고령 노동자들을 소홀히해왔던 것은 아닐까? 공장 안에서 비정규직과 연대가 부족했듯이, 88만원 세대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 아닐까? 그리고 그 대가를 지금 치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대선 당시, 동네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할머니는 “이명박이 시장을 활성화 시키고 살려준다”고 해서 찍었다고 하셨다. 순진한 할머니는 어느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래시장인줄 아셨던 모양이었다. 서민과 노동자가 언제까지 이토록 순진하게만 살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난 간부가 싫고, 간부가 되었다

여기에 소위 진보라는 이름을 단 단체들이 너무 관료화된 것도 문제다. 노동당이 그렇고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그렇고, 각 단위 지부의 노동조합이 그렇다. 난 그것이 두렵다. 내가 현재 쌍용차지부의 간부를 맡고 있으면서도 나 역시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벼는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하지만 사람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뻣뻣해진다. 그리고 나는 국민파가 무엇이고, 중앙파가 무엇이고 NL과 PD 그리고 전국회의가 뭔지도 모른다. 글 안에서만 싸우고, 글 밖에서는 실천하지 않는 것도 같다.

전국 어디에서 투쟁의 현장을 찾노라면 연맹과 노조의 간부들이 즐비하다. 그들의 간부들과 눈을 맞대면 나 같은 작은 노동자는 그들의 눈에 그저 투쟁현장에 있는 조합원일 뿐이다. 아는 척도 간부들끼리만 하고 그저 투쟁의 현장에 모여 있는 조합원은 안중에 없다. 이것 또한 일부분이겠지만 난 그렇게 늘 느낀다.(나만 그럴까?)

그래서 난 간부가 싫고 간부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허나 지금은 내가 처한 상황을 보면 나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기에 간부가 됐다. 그럼 나는 이제 어찌되는 걸까? 그들도 나처럼 같은 마음이었을 텐데 어쩌다 조합원에게, 노동자 서민들에게 신뢰받지 못했던 것일까?

내가 존경하는 김진숙이라는 여인은 우리의 든든한 아줌마요, 누나요, 여장부다. 지난 2월4일 한진중공업을 찾았을 때, 그 여인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23일째 홀로 단식을 하고 있었다. 누구를 위한 단식이었을까? 빼빼마른 몸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했을 때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말로써 글로써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입담이 좋으신 그 여인은 홀로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몇 마디 말은 하지 못했으나 “쌍용차 동지들도 힘내라”고 하신 그 한마디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힘없는 그 모습에 악수를 청했을 때. 그녀의 손은 힘이 넘쳐났다. 23일을 단식하고도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그 당당한 모습, 그 어느 누가 따라가랴. 그녀는 그랬다. 너무 존경스러웠다. 일행이 떠나는 모습을 텐트 밖에서 지켜보는 그 모습이 아직도 나의 가슴에 잊혀 지지 않는다.

‘우리’를 잊었던 반성부터 시작

어쩌면 시작은 나부터, 우리부터 반성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장 안의 비정규 노동자가 남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노동자라는 것을 망각했던 것, 88만원 세대와 고령 노동자, 최저임금 노동자,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힘없고 고통스런 노동자들이 ‘남이 아니고 우리’라는 것을 잊었던 것을 반성하는 것. 그것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서두와 본론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막상 88만원세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막연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7년의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가 이제 88만원세대를 어떻게 볼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 그들은 결국 우리 옆자리에서 같은 일을 했지만 적은 임금을 받아야했고, 먼저 떠나야했던 비정규직 같은 것 아닐까? 그 비정규직이 하나의 세대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아닐까?

쌍용 자동차 해고자들은 요즘 모이면 이런 얘기를 한다. “이제 갚아야 한다.” 그 동안 제대로 연대하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했던 우리들에게 다른 노동자 동지들은 함께 해주었다. 우리가 좋아서가 아닐 것이다. 우리 싸움을 그들의 싸움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때서야 깨달았던 것을 그들은 진작부터 깨닫고 함께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갚아야 한다. 88만원 세대. 그것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는 것은 알겠다. 우리가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수많은 비정규직과 힘없는 노동자들, 서민들이 그렇듯이. 그래야만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만 살만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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