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좌파 실패가 불러온 비극의 살인
    2010년 02월 21일 10: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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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 처음에는 한 러시아계 동료의 블로그에서 (http://atsman.livejournal.com/712672.html), 나중에 <조선일보>에서  – 광주교대의 강모 학생이 러시아의 한 지방도시에서 또 스킨헤드들에게 난도질을 당해 유명을 달리했다는, 아주 슬픈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필자.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빌고, 이런 일에 대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그 유래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볼까 합니다. 병을 치료하자면 병인부터 알아야 하기에 말씀입니다.

러시아 스킨헤드의 기원과 성격

2000년대 초반만해도 소위 ‘스킨헤드’들은 푸틴 정권의 일종의 ‘극우적 앞잡이’로 보이는 측면마저 있었습니다. 푸틴의 체첸 독립운동 말살에 열광했던 그들이 심지어 특무경찰(오몬)의 기지에서 훈련 받는다는 내용의 기사까지 대중적 우파 일간지, <모스크브스키 콤소몰레츠> 등에서 나올 정도였습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저들과 권력자 사이의 관계가 다소 달라진 걸로 보입니다. 저들이 – 중국과 인도 등과의 준동맹적 관계를 추구하고 러시아 자본에 커다란 초과이윤을 가져다주는 중앙아시아 이민노동자의 유입을 그대로 허용해주는 – 푸틴 정권을 ‘백인종의 배신자’로 보고 아예 정권에 대한 테러행위 (철도 폭파 등)까지도 감행하는 한편, 정권 차원에서 단속을 다소 강화시켰습니다.

그 결과는 인종주의적 범죄 관련 구속자, 수형자 수의 증가와 피해율의 약간의 감축으로 나타났지만, 경찰만 가지고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자명한 사실입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약 8만5천 명 정도로 추산되는 극우테러리스트와 그 열성지지자들은 ‘유색인종’과 정권, 그리고 ‘주류 사회’를 상대로 일종의 도시 게릴라를 벌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피해율의 추이를 보면, 2008년에 러시아 인종주의자들이 109명을 살해했으며, 2009년에 71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http://www.vz.ru/columns/2010/2/8/373892.html), 이는 서구 전체의 인종 범죄 피해율보다 몇 배(!) 높을 것입니다. 한 때 전 인류를 해방시킬 혁명의 중심이었던 나라가 이제 인종주의적 범죄의 중심이 됐었으니 그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입이 열개 있어도, 할 말은 없죠.

러시아인 전체의 약 18%가 ‘강경한 인종주의자’, 약 36%가 ‘조건부 인종주의 지지자’가 돼 (http://en.wikipedia.org/wiki/File:Russia_for_Russians_survey.PNG) 극우게릴라가 매주 몇명을 살해할 수 있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조성한 오늘날의 상황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러시아-한국, 강경 우파적 사회

러시아와 한국의 공통점 하나는, 둘 다 ‘강경 우파적’ 사회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쪽에서 정치적 좌파는 다소 주변화돼 있으며(‘좌파’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계보상 과거 좌파와 연관이 있는 러시아 공산당의 득표율은 17% 정도 된다 해도, 거의 대부분 고령층의 지지만을 받습니다), 상당한 국민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극우적 색깔의 정권은 주로 대자본(특히 건설업)에 매우 유리한 정책을 펴면서 자극적인 국민주의적 언사를 자주 사용합니다.

양쪽에서는 문제투성이의 징병제가 존속되며 군사 부문은 과도하게 비대화돼 있는 한편 복지부문은 투자 부족을 겪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러 사이에서는 하나의 엄청난 차이는 존재합니다. 한국 사회의 ‘강경 우파성’은 대한민국으로서는 거의 태생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48년, 소위 ‘건국’의 순간에는 남로당은 이미 불법화됐으며 좌익은 이미 토론이 아닌 사냥의 대상이었습니다. "억울하면 성공하라" 등의 ‘성공 이데올로기’는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에 가깝죠. 성공하지 못한, 내지 그 무슨 이유로든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는 원래부터 머리를 숙이면서 살아야 하는 일종의 ‘준 비국민’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들이 판자촌, 달동네들의 호남출신의 빈민들과 같은 대열에 합류했을 뿐입니다. ‘당연히'(?) 살인적 차별을 받게 됐지만, ‘공돌이와 공순이’들이 주로 모멸과 착취의 대상인 나라에서 그들도 구타나 공격 등까지 받을 리는 없었어요. 국내 ‘하류인생’들과 마찬가지로 말씀입니다.

러시아의 사정은 좀 달랐습니다. 1991년까지는 인종차별이란 ‘썩은 부르주아 사회의 특성’으로 규정되었지만, 그 체제는 돌연히 붕괴되고, 체첸 독립군에 예봉을 돌리게 되는 새로운 정권은 사실상 강경 민족주의적 정서에 아주 많이 기대게 됐습니다.

좌파의 무능과 사회의 우경화

원칙상 ‘국제주의’부터 강경 민족주의까지, 이념적 단절의 폭은 아주 컸습니다. 거기에다 ‘출세'(карьера)가 ‘비도덕적 부르주아 개념’으로 규정되고 노동이 ‘사회를 위한 봉사’로 인식됐던 사회부터 황금만능주의적 사회로의 이동, 복지 시스템 규모의 돌연한 축소, 기존 노동계급의 신분적 추락과 대대적인 도시빈민으로의 전락… 단절과 변화가 너무나 큰 만큼 사회적 분위기도 극단화됐는데, 여기에서 좌익은 늘상 대단한 무능을 보였을 뿐입니다.

의미를 잃은 과거 스탈린주의적 이념에 계속 집착하거나 러시아와 같은 주변부 사회에서 어차피 별 의미가 없는 트로츠키주의 등 서방으로부터의 ‘이념적 수입물’을 절대시하는 자그마한 좌파그룹들은, 신분이 추락되고 인생이 좌절된 대다수의 도시 빈민층을 효율적으로 조직하여 저항으로 이끄는데에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좌파가 탁상공론, 이념수입, 서클 활동 내지 극도로 보수화된 공산당에의 가입 정도로만 축소된 상황에서는, 사회 전반은 우경화됐지요. 정권과 대자본은 (군사주의적 냄새가 강한) 국가주의, 국민주의로 무장했지만, 자본에 밟힌 이들은 자신들이 쉽게 밟을 수 있는 보다 약한 자(이민자 등)를 공격하면서 ‘대중적인 극우주의’를 대폭 수용했습니다. 그들 중에서는 극우테러리스트가 된 이들은 물론 소수지만, 테러리스트들이 이렇게 기승을 부릴 수 있는 배경은 대충 위와 같습니다.

한국 우파들이 ‘좌파’와 ‘폭력’을 자꾸 연결시키지만, 단언컨대 러시아에서 레닌처럼 이론성과 대중성을 연결시킬 수 있는, 전투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좌파가 강했다면 적어도 인종주의적 폭력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을 걸요. 지금 인종주의적 폭력의 수많은 희생자들은, 간접적으로 그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좌파의 무능’의 희생자이기도 합니다.

* 이 글은 ‘박노자 글방‘에 올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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