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중가요의 탄생
    By 나난
        2010년 02월 18일 05: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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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주여 내 기도 들으소서.
    세상 어딜 가나 슬픔뿐이요, 먹고 자고 애써 일할 뿐.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여 나는 무엇하리까”



    (음원 : 안치환 [Beyond Nostalsia] 중에서)

    이렇게 시작하는 민중가요가 있다면 아마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복음성가 아닌가?’ 하고요. 맞습니다. 이 노래는 복음성가입니다. 하지만 70년대에 불린 초기의 민중가요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 노래가 민중가요가 되었는지를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970년대는 박정희 유신정권의 시대였습니다. 국민의 대부분이 가난해서 제대로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입니다. 따라서 수출과 산업증진에 박차를 가하며 경제성장을 이유로 자유는 반납해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박정희 정권은 18년간 장기 집권을 했습니다. 장기집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권에 반하는 세력을 억압했고, 국민들의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까지 통제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1975년에는 이른바 초헌법적인 긴급조치가 내려집니다. 영화 <고고 70>을 보신 분들은 대충 이해를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장발 및 미니스커트 단속, 통행금지가 있었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집단적으로 모여 춤을 추는 것 역시 풍기문란 등의 이유로 금지되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통제 방식이 바로 음반의 사전검열 제도였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일본 제국주의의 문화 정책으로 시작된 음반 사전 검열은 국민들의 머릿속까지 규제를 했고, 상상력조차 억제했습니다.

    ‘긴급조치’ 낳은 블랙코미디 

    사전 심의에 의해 검열당한 노래는 발표조차 되지 못했으며, 음반으로 발매가 되었다 해도 판매금지 처분이 내려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으레 심의에 통과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가사는 생각도, 쓰지도 않게 되는 겁니다. -음반의 사전심의제도는 시행 70년만인 1996년에 폐지되었지만 사후 심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 1975년 ‘긴급조치’와 함께 ‘대중가요 재심의’라 하여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던가, 퇴폐․ 선정적이라던가, 외래풍조를 무분별하게 모방했다던가, 패배․자학․비판적인 내용은 모두 재심의를 하여 방송금지와 레코드 판매금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 수만도 무려 200여곡이나 됩니다.

     

       
      ▲ 1984년 전투경찰이 서울대에 진입, 잔디밭에 배치되어 있는 모습

    예를 들어 ‘가방을 둘러멘 그 어깨가 아름다워. 옆모습 보면서 정신없이 걷는데…중략… 길가에 앉아서 얼굴 마주보면 지나가는 사람들 우릴 쳐다보네’라는 가사로 이뤄진 <길가에 앉아서> 라는 대중가요는 “이런 바쁜 시절에 왜 하릴없이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여자를 쳐다보냐”는 이유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눈물도 거짓말’이라는 가사의 <거짓말이야>는 “국민에게 부정적인 사고를 심어주고 창법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김민기 씨의 <아침이슬> 역시 이 중 하나입니다. 이미 음반으로 발표가 돼서 많은 대학생과 젊은이가 듣고 부르고 하던 노래였는데도 말이지요.

     

    민중가요의 탄생

    일반 국민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도 이러했으니 대학 내의 집회나 시위는 더더군다나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긴급조치 이전의 시대라고 해서 별로 자유롭진 않았지만 긴급조치 이후 그 탄압은 말할 수 없이 심했고, 70년대 학생운동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70년대 대학문화라고 하면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를 대표적으로 꼽는데, 그런 낭만적이고 서구적인 문화와 더불어, 나름 지식인으로서 양심을 가진 대학생들마저 자유가 박탈당하며,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던 학생운동의 낭만적인 분위기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운동권’이라는 말이 등장하며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분리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여건상 운동권의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과는 다른 인식, 다른 생활, 다른 문화를 가짐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반성하고 바꾸고자 노력했습니다.

    긴급조치 하에서 학생운동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기득권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일 일지도 모릅니다. 또 군대나 감옥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때문에 운동권 학생들은 일생을 거는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운동권 학생들은 누구나 쉽게 듣고 부를 수 있는 대중가요가 아닌 다른 노래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선택된 노래들이 바로 민중가요입니다. 특별히 어떤 노래라기보다는 스스로 선택해서 재해석을 하고, 운동권 내에서 같이 공유하며 불렀던 노래문화인 셈이지요.

    미칠 것 같던 그때

    초창기 민중가요로 선택된 노래들은 주로 앞서 말한 판매금지 당한 노래 중 사회성이 담겼다고 보여 지는 노래들입니다. 여기에 소위 데모 노래와 외국의 반전․인권 운동 속에서 불린 노래, 그리고 찬송가와 복음성가가 주였습니다.

    특히 찬송가와 복음성가는 ‘얽매임에서의 해방’ ‘구원의 의미’를 담은 노래들로, 이를 종교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의미로 재해석해 불렀습니다. ‘어두운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로운 새 세상을 염원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할 수 있겠지요.

    눈 가리고, 귀 먹고, 말도 못하는, 그야말로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에서 제발 구원해 달라는 간절한 바람과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답하고 복잡한 심정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청춘이라면 울부짖듯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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