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헌까지 하며 도입된 미국의 소득세
        2010년 02월 17일 02: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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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화당마저 휩쓴 열기

    1895년 미국 연방대법 판사였던 필드는 “소득세법은 소득이 4,000달러 이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고 있으며, 이는 계급입법이다”고 하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미국 연방대법원 조차 이 계급입법을 영구히 저지하지는 못했다. 1896년 공화당이 선거에 승리하였지만 소득세 도입 주장은 전혀 잦아들지 않았다. 소득세법에 대한 위헌 판결 이후 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이었지만 공화당 내 진보블록은 소득세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다.

    여기서 미국과 유럽의 차이가 나타나는데, 좌파들은 유럽의 경우 보통선거권의 확대와 맞물려 노동자 중심의 대중정당의 강화를 통하여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였지만, 미국의 경우 이미 성인 남자 보통선거권이 있던 관계로 정당지도부를 견제하기 위한, 정당의 민주화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였다. 문제는 정당의 민주화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비선거제”나 의회 내에서의 의원 개인의 권한강화로 나타난 것이었다.

    소득세의 도입을 원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정당을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였고, 분권화된 정당인 미국의 양대 정당의 일부 구성원들은 당 지도부의 생각과 무관하게 소득세의 관념을 받아들였다. 특히 산업자본가를 대변하는 공화당에서 조차 소득세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있었다.

    2. 실패한 꽁수

    결국 미국의 소득세는 개헌을 통하여 도입되게 된다. 역설적으로 이 아이디어는 공화당 태프트 대통령이 제공하는데, 태프트는 소득세 도입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하여 개헌 주장을 하였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헌법개정은 연방국가인 관계로 3분의 2 이상의 주에서 비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고, 태프트는 헌법개정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헌법 개정은 40년 전에나 있었기 때문에 헌법개정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태프트의 예상과 달리 소득세 도입을 위한 개헌안은 42개 주에서 비준을 받았고, 반대한 주는 단 3개에 불과하였다. 이로써 이 개헌안은 1913년 발효되게 되고, 개헌 직후 소득세법은 의회에서 즉각 도입되게 된다.

    미국 대법원에서 위헌결정한 후 18년만의 일이다. 소득세 도입을 위하여 헌법까지 개정한 것은 아마 미국이 전무후무할 것이다. 애초에 미국헌법의 기초자들이 연방대법원을 만들고 그 판사들을 종신으로 한 것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자들이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는데, 미국 헌법의 기초자들의 예상대로 미국 대법원은 그 역할을 수행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개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태프트가 간과한 것은 공평성과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었다. 1912년에 미국 대선에 출마한 3명의 후보는 모두 소득세를 지지하였다. 아마 태프트가 개헌 제안을 하지 않았더라도 미국에서도 소득세가 도입되었을 것이다. 1917년에 러시아혁명이 발발하였고, 혁명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지배계급은 일정한 양보를 하여야 했다.

    3. 시작은 미미

    1913년 도입된 소득세는 연간 3000달러 이상의 소득을 가진 사람에서 1%의 세율로 과세하고 5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가진 사람에게는 7%로 과세하는 방식이었다. 개헌까지 하면서 도입하려고 한 세금 치고는 지금의 시각에서는 세율이 너무 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라고 하는 것은 그 최초 도입이 어려운 것이지 한 번 도입되면 어느 선까지는 자연스럽게 확대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당시 소득세가 과세되는 사람은 국민의 1%에 불과하였고, 소득세는 그야말로 자산가 계급의 세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세대상도 적었고, 세율도 낮았기 때문에 그 세수는 얼마되지 않았다. 사실 이 때까지는 소득세의 세수와 복지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시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세수가 적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또한, 전국적인 개헌 운동의 여파로 많은 집단들을 설득하여야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세 조항도 많았다. 면세조항이 많다는 것은 이후 미국 소득세에 가장 큰 암운을 드리우는 문제가 되었다.

    헌법개정이라는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도입된 미국의 소득세였지만 그 시작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미미하였고, 허점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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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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