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계급 정당 집권의 득실
        2010년 02월 11일 10: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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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최근 노동계급의 시각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와 룰라 정부의 경험을 분석하고 평가한 책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후마니타스)를 펴냈다.

    저자는 룰라 정부의 경험이 보여준 것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정당을 건설하여 정치세력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이익 실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 노동계급 이익의 두 축을 구성하는, 물질적 이해관계 중심의 당면 계급 이익과 생산체제 변혁을 지향하는 근본 계급 이익이 서로 갈등하는 모순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자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따라서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가 당면 계급 이익을 중심으로 추진된다면, 집권하더라도 근본 계급 이익의 실천이 실종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집권 전략의 덫’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룰라가 집권했다고 열광하고, 변혁적 정책 펴지 않는다고 냉소하고, 쉽게 잊는 냄비 같은 반응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브라질만큼 노동자 정치세력화 하기도 어려운 조건인데,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집권 이전에 뭘 준비해야 하는지 브라질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책 출간의 의미를 설명했다.

    <레디앙>은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이 책의 머리말과 4부 ‘평가와 함의’ 부분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3) 노동계급 형성과 계급정당 집권의 득실

    노동계급 계급 형성의 성과로서 계급정당의 집권이 이루어지지만, 계급정당의 집권은 다시 계급 형성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룰라 정부가 노동계급 형성의 수준에 미친 영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노동조합 가입 및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최소화되었고, 룰라 정부의 노동자 호응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물적 조건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노사정 협의 기구 및 정부 기구들을 통해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증대되어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으로 물질적 보상뿐만 아니라 정서적 보상도 받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조직률 하락이 멈추고 CUT의 조직력이 증대됨으로써 노동계급의 조직적 형성이 진전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또한 룰라 정부는 노동계급의 조직적‧정서적 구심점을 구성하며 CUT를 넘어 전체 노동계급의 내적 결속력을 증진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노동계급 정권이 출범하게 되면 노동계급의 조직적 형성과 이데올로기적 형성에 기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계급 형성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계급 형성의 구심점으로서 노동계급 정권이 노동계급의 계급 존재 양식과 계급 형성의 유형을 결정함에 있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동계급 정당은 노동계급에 대한 호응성을 잃지 않더라도 집권을 위해 대중정당화하며 집권 전략을 수립하여 추진하게 된다.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을 동시에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계급정당은 양자 사이의 균형과 조합을 선택하게 되고, 그 결과 대중정당 집권 전략과 친화성이 높은 당면 계급 이익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게 되며 근본 계급 이익은 주변화된다.

    그렇게 집권한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에 충실한 정책들을 수립‧집행했다.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에서 당면 계급 이익에 무게 중심을 두며 담론과 정책들을 생산했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확산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체성 형성‧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결국 변혁적‧사회주의적 양식보다는 개혁적‧사민주의적 양식이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을 주도했다.

       
      ▲ CUT의 메이데이 행사

    노동계급 이익이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의 양면을 지니고 있듯이 노동계급과 CUT도 이질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CUT가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다수파와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 소수파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겪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내부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될수록 좌파 소수파들은 룰라 정부와 CUT 지도부의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극렬하게 비판하고 CUT 탈퇴도 마다하지 않게 되며, 실제 좌파들의 상당 부분은 이렇게 이탈했다.

    도를 더해 가는 반대파의 비판과 반발에 맞서 CUT 지도부는 룰라 정부와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방어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당면 계급 이익과 개혁적 실천은 이행을 위한 도구적‧과도기적 가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로 규정될 수 있으며, 그 결과 개혁적‧사민주의적 계급 존재 양식은 더욱더 보강된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문제는 내부 역관계와 동력

    당면 계급 이익에 기초한 개혁은 변혁적 사회주의 정권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개혁적 실천은 개혁주의(reformism)에 매몰될 수도 있고 비개혁주의적 개혁(non-reformist reform)으로 이행을 지향한 실천이 될 수도 있다.

    개혁주의는 개혁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개혁을 절대시하며, 개혁에 배타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반면, 비개혁주의적 개혁은 개혁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보고, 개혁을 체제 이행을 위한 준비 단계로 보며, 개혁의 축적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근간을 허물며 체제 이행을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접근법이다.

    룰라 정부와 계급 이익의 실천을 둘러싼 CUT 내 갈등 과정에서 다수파가 제시한 집합적 프레임웍(collective framework)은 개혁주의의 위험성을 노출하고 있다. 2010년 대선을 결정적 국면으로 파악하여 신자유주의 세력과 노동자당의 대립 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대중정당 집권 전략을 재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모델들 사이의 각축은 사유재산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제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며, 노동자당이 승리하더라도 당면 계급 이익을 넘어서는 근본 계급 이익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룰라 정부의 정체성은 반(反)신자유주의로 규정되어 있는데, 신자유주의의 거부가 변혁적 실천을 담보하는 것이 아님은 룰라 정부 1기뿐만 아니라 2기에도 확인된 바 있다.

    룰라 정부의 방어와 2010년 대선 승리를 위해 CUT가 룰라 정부의 집합적 프레임웍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을 당면 계급 이익과 개혁적 실천에 배타적으로 헌신하고 체제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CUT는 룰라 정부나 노동자당과는 다른 집합적 프레임웍을 견지하며 룰라 정부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서 변혁적 실천을 압박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러한 실천의 출발점은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다.

    CUT 내 좌파 소수파들이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하면서도 CUT에 남아 있는 주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2006년 총회에서 선출되어 2009년 총회에서 재선된 CUT 지도부가 이전 집행부들에 비해 룰라 정부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CUT가 개혁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비개혁주의적 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으며, 그것은 CUT 내 동학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4) 변혁 시나리오와 전략적 선택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CUT와 노동자당 안팎의 좌파들이 룰라 정부에 요구하는 변혁적 정책의 핵심은 은행과 기간산업의 국유화로서, 그 출발점은 까르도주 정부하에서 사유화된 기업들이다. 좌파들의 변혁 정책 시나리오에 따르면, 룰라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을 이용하여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에 따라 임시 조치(medida provisória)로 국유화를 포함한 변혁 정책들을 집행한 다음 CUT와 MST 등 진보적 대중조직체들을 동원하여 의회를 압박함으로써 의회가 3개월 이내에 임시 조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좌파들은 룰라 정부의 개혁주의를 비판하며 변혁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지만, 변혁 시나리오 자체의 타당성은 검증된 바 없다. 룰라 정부가 Plan B를 파기한 것은 단순히 룰라 정부 핵심 세력의 이념적 선호에 따른 것이 아니라 룰라와 노동자당의 대국민 약속의 이행, 정치경제적 안정의 중요성 및 재정적‧경제적 제약 조건들에 대한 종합적 고려의 결과라는 점을 변혁 시나리오는 간과하고 있다. 여기에 변혁 시나리오의 반사실적 실험(counterfactual experiment)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첫째, 변혁 시나리오는 룰라 정부의 공약과 재정적‧경제적 제약 조건들을 간과하고 있다. 룰라 정부의 정책적 선택지들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핵심적 요인들은 막대한 외채와 공공 부채의 규모였다.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들이 겪는 복지국가의 재정 위기 문제가 룰라 정부가 출범할 당시 더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주어진 재정적‧경제적 조건 속에서 룰라 정부가 재국유화 등 변혁 정책들을 집행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 대안은 재정 적자를 무릅쓰면서 변혁 정책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재정 적자 누적에 따른 공공 부채 증대, 브라질 통화가치 하락과 그에 따른 물가 폭등이 즉각적으로 수반되며 극심한 경제적 불안정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두 번째 대안은 공공 부채의 증대를 억제하기 위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복지 서비스 등 사회적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다. 이 경우 공공 부채의 증대는 억제할 수 있으나 대중적 요구를 외면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출은 모두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공약화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가지 대안 모두 시민들의 반발과 불만을 야기할 것이 자명하다.

    특히 사회적 지출 삭감은 복지 서비스 수혜자들에게 상당한 박탈감을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에 대국민 약속 위반에 대한 분노와 결합되어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적인 수준까지 비등할 수 있다.

    둘째, 변혁 시나리오는 시민들의 반정부 저항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보수 성향의 국내외 언론, 초국적 자본들, IMF와 세계은행 등 초국적 기구들이 적극적 공세를 펼치며 정치‧경제적 불안정을 조장하면, 사회적 지출 삭감과 경제적 불안정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불안감을 증폭시켜 브라질 경제에 2002년 6월 검은 목요일보다 훨씬 더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또한 국유화 등의 조치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국내외 자본가들이 자본 유출과 자본 파업을 통한 대응 수준을 넘어 자본계급의 집합적 동원도 추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임노동자 기금 제도의 법제화 추진에 반발한 1983년 스웨덴 자본계급의 시위 행위나 사적 소유권을 침해하는 법제화와 차베스 정부의 변혁 정책에 맞선 2001~03년 베네수엘라 자본계급의 직장폐쇄와 총파업 행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세력을 동원하여 의회를 압박하는 행위는 의회주의를 거부하는 행위로서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헌신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시민들은 정치적 안정이 훼손되는 것을 경계하며, 정치적 안정은 의회주의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 의식을 무시할 수 있는가

    셋째, 변혁 시나리오는 변혁 주체들의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과 동원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룰라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지지율은 룰라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아니라 룰라의 빈곤‧불평등 해소를 위한 적극적 사회정책에 대한 지지의 성격이 강하다. 룰라 정부하에서 복지 정책의 수혜자들을 중심으로 계급 투표 성향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룰라의 지지 기반 확대가 당면 계급 이익 실천의 결과이며, 따라서 복지 서비스의 철회는 룰라에 대한 지지 철회를 수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룰라 정부가 사회정책의 희생 위에서 국유화 등 변혁 정책을 추진한다면 대다수 시민들은 룰라 정부의 변혁 정책을 방어하기보다 룰라 정부로부터 이탈하여 반룰라 진영에 합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과 변혁 정책에 대한 지지 또한 보장된 것이 아니다. 근본 계급 이익은 당면 계급 이익과 함께 노동계급 이익의 한 축을 구성할 뿐이며, 양자는 갈등‧모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도 물질적 생존을 위한 당면 계급 이익을 우선시하며, 이런 자연발생적 경향성은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와 룰라 정부의 소득재분배적 사회정책에 의해 재생산되어 왔고, 룰라 정부와 CUT의 집합적 프레임웍에 의해 상당 정도 내면화될 수 있었다.

    따라서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대다수는 당면 계급 이익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에서 당면 계급 이익의 희생 위에서 추진되는 국유화 등 변혁적 정책들에 대해 지지를 보내기 어렵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시민들의 높은 지지율이 룰라 정부의 변혁 정책을 방어하고 체제 이행을 추진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는 변혁 시나리오의 전제는 경험적 근거가 취약하다.

    변혁 시나리오가 경험적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변혁적 계급 형성의 전제 위에서 ‘동원과 결과의 정치’(politics of mobilization and outcome)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룰라 정부하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크게 진전되었지만 그것은 변혁적‧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이 아니라 개혁적‧사민주의적 계급 형성이었다.

    개혁적 계급 존재 양식에서 변혁적 계급 존재 양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계급 형성의 구심점을 이루는 룰라 정부의 정책적 실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 핵심은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다. 비개혁주의적 개혁을 통해 변혁의 제도적 기초를 이루는 동시에 변혁적 계급 형성을 통한 이행 주체의 형성을 진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개혁적 계급 형성의 현실을 인정한다면 노동계급과 일반 시민을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하며, 동원을 통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 전망 속에서 설득의 논리를 통한 영향력 향상을 우선시해야 한다. 비개혁주의적 개혁과 함께 ‘설득과 영향의 정치’(politics of persuasion and influence)를 통해 변혁적 계급 형성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설득의 정치와 함께 동원의 정치를 병행하고, 영향의 정치와 함께 결과의 정치를 병행하여 변혁적 정책을 추진하는 전략적 합리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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