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녀'와 살면 안 되나요?
    2010년 02월 08일 10:41 오전

Print Friendly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가 특별한 온천을 준비했다. 올겨울 폭설과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10대, 20대의 몸과 마음을 찾아가는 이동식 스파(SPA-Sexuality Politics Academy)로 따뜻하게 풀어주겠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기획된 성정치 강좌는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되며, 강연 후기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일본만큼 가깝고 먼 가족들이여

가깝고도 먼 사람이 가족들이다. 만화가 허영만은 세상의 맛있는 음식 수와 어머니의 수가 같다고 했지만, 이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세상의 모든 가족 수와 가족 ‘문제’의 수가 같다고도 생각했었다. 가족 간의 사랑과 갈등은 곧잘 대화의 주제로 올랐으며 오묘한 애증의 관계 때문인지, 새 시대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때문인지 요즘은 대안 가족 이야기도 심심치 않다.

가족 문제는 아주 사적인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국가 차원의 관리 대상이기도 하다. 노동 인구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 단위가 가족이니 어쩌니 하며 다양한 ‘가족 정책’들을 내놓으며 인구 조절을 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다. 이처럼 ‘가족’은 아주 재미있는 주제이자 속 터지는 주제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어찌됐건 이 낯설지 않은 이야기 거리는 꽤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분야인 것 같다.

   
  ▲ 지난 3일 동국대학교 학림관에서 진행된 네 번째 SPA (사진=성정치 위원회)

“나는 누구와 살 것인가?”
왠지 노희경 작가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의 다음 연작 제목이 될 것만 같은 이 문장은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운영위원 타리님 강의의 부제다. 영하 12도로 서울이 반 냉장고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인원들이 참가 했고 그 중 90% 이상이 뒷풀이에 참여한 뜨거운 시간이었다.

잃어버린 개인을 찾아서

강의는 우선 한국 사회에서의 가족의 의미를 짚고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변화시키고 싶은지. 어떠한 욕망을 갖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고아만이 커밍아웃 가능하다’는 말은 한국 사회의 끈끈한 가족 중심적, 혈연 공동체적 성격을 보여준다. 내가 행동을 잘 못 해도 너희 부모가 널 그렇게 가르쳤냐며 가족을 하나로 묶어 방아쇠를 당기니 ‘이탈’된 행동은 여러모로 두려움을 준다.

드라마에서도 늘 그러지 않던가. “내 욕하는 건 참아도 우리 부모님 욕하는 건 못 참아!” 이런 눈물겨운 멘트를 날리며 주로 가난한 학생이 부자인데 건방진 학생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 이후 그 부모가 와서 고개 숙여 사과하는 장면이 이어지곤 했다. 내 부모 얼굴에 먹칠하는 행동은 유교에서 말하길 불효이니, 동성애자로 밝히는 것이 부모 얼굴에 내 손으로 먹 한통을 들이붓는 격이라 커밍아웃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또한 가족은 가부장제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공동체로 기능했다. 마치 단군 시대 때부터 우리의 전통처럼 포장되어 온 호주제는 사실 식민 잔재 중 하나다. 하지만 초기 국회에서는 이것이 주는 은밀한 장점 때문인지 미적지근한 친일 청산문제처럼 은근 슬쩍 넘어가버린 데다 호주제에 반발하면 근본 없는 개돼지냐며 삿대질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남성)을 중심으로 한 1인 독재 체제는 남성들의 어떠한 류의 욕망(다 내꺼야, 내꺼 이 빵꾸똥꾸들아)을 반영한다. 착한 방송으로 돌아온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어쩐지 오글거린다. 아버지들이 가부장제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되어 결국 가장이라는 직위에 뒷덜미 잡혀 고생하시는 것은 알지만, 미디어가 힘든 사람의, 희생하는 사람의 전형으로 아버지를 그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IMF때의 아버지 되살리기를 상기시킨다.

아버지 기 살리기가 이토록 중요한 것은 아마도 이들이 무너지면 가족이 무너지도록 사회 질서를 조직해 놨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대통령이 한국의 아버지임을 드러내는 언급들을 하며 대한민국이 각각의 가족들이 모여진 총체임을 이미지화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호주제가 가족 등록 관계법으로 바뀌었으나 개인이 아닌 가족단위로 국가가 셈법을 하는 것은 여전하다. 결국 인정받을 수 있는 정상 가족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2등 시민으로 존재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가족 구성은 개인의 선택

이처럼 가부장제, 유교주의 등 몇 가지 골자를 기본을 한 사회와 가족의 동맹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가족임금제, 남성 생계자형 복지모델, 관혼상제에 따른 노동자의 복지권과도 연관된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비(非)혼자들은 독신세를 내야할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결혼하지 않았기에 아직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둘째 치고 냈던 부조금 다시 회복할 길 없고, 같은 노동잔데 결혼 휴가 같은 이익을 챙길 수도 없다.

더 나아가 성 소수자에게는 공적 영역에서 기대되는 역할 수행이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떤 레즈비언들에게는 치마입고 머리 기른 여사원의 이미지를 수행하는 것이 고역일 것이다. 또한 어떤 게이들에겐 술 마시고 단체로 여성과 자러 가는 것이 ‘진정한’ 남성처럼 평가되는 문화가 사직의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전환자의 경우는 외모나 몸이 자신의 자아와 신분상 표시와 맞지 않을 때 공식적인 노동에서 아예 탈락되기도 한다. 이처럼 생존권인 노동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불이익은 우리 사회의 성별이데올로기가 이성애규범성과 긴밀히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로 10년차가 된 한국의 퀴어문화축제는 퀴어 프라이드(queer pride) 행사임과 동시에 도시의 공간에 대한 참여권, 사용권에 대한 인정 요구를 담고 있다. 국가는 특정 집단을 흡수하고 특정 집단, 이를테면 동성애자나 이주민들은 자신들의 시민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배제한다. 단순히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음에 안주하는 것에 나아가 가족을 구성하지 않은 것이 부당한 차별의 대상, 2등 시민이 될 수 없는 것임을 말하고 도시의 공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가족을 구성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어떻게, 어떠한 사람과 살 것인가,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지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개인의 욕망을 어떻게 정치 영역 안에서 설명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상 육체를 갖지 못한 존재로 장애인을 취급하고 이들의 권리를 단지 시혜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것이 부당하듯, 정상 가족을 구성하지 않은 존재로서의 비혼자들의 문제를 배려의 차원으로 다루는 것 역시 옳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욕구가 정당한 것임을 발언해야 한다. 소수자 담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자유주의적 법적 담론에 기대지 않고 ‘개인’의 욕망을 설명하고 그 중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좋지 아니한家

결혼권과 가족구성권은 얼핏 같은 단어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이 둘이 같은 단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는 결혼이 미친 짓이라던데, 왜 동성애자들은 결혼하고 싶다고 난리일까. 이 답은 단어의 의미를 구분하는 데서 구할 수 있다. 내게도 파트너와 결혼 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차별의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 내에서의 가족 담론에 대한 문제제기다.

강의가 한국 사회에서의 가족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가족구성권과 관련한 다양한 의미의 지형을 자세히 다루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소심한 마음에 질의 시간에 과감히 손들지 못한 나를 반성해 본다. 가족 구성권에 대한 접근이 아직은 추상적인 개념과 의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이고 좀 더 쉽게 깨알 같은 설명방식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강의가 1시간 30분이 넘도록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사의 시의적절한 유머와 방대한 지식은 오길 잘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어쩐지 암담한 현실을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그래도 이런 논의는 웃으며 할 만하다. 사랑하는 (현재의 혹은 미래의) 파트너와 함께 할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니 꽤 행복한 구석도 있다. 시대는 흉흉하고 할 일은 많다. 가열찬 성 정치로 추운 겨울과, 시린 옆구리를 데워본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