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영어강의 ‘광풍’, 그 속사정은
By mywank
    2010년 02월 04일 03: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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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각 대학에서 앞 다투어 영어강의가 도입되었지만 그동안 교수들은 강의를 준비·진행하는 데 애로사항을, 학생들은 강의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 호소하는 등 갖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들이 영의강의 확대에 골몰하고 있는 사이에, 최근에는 국어국문학과나 (국)사학과 등 우리말 수업이 필요한 곳에서조차 영어강의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교수도, 학생들은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레디앙>이 주요 대학의 영어강의 실태를 확인해본 결과, 2009학년도에 개설된 전체 강의 중에서 고려대학교는 38%(세종캠퍼스는 20%)를, 연세대학교는 34%(1학기 기준, 원주캠퍼스는 9%, 영문 및 제2외국어 전공과목 제외)를, 서강대학교는 21%(2학기 기준)를, 서울대학교는 14%(2학기 기준)를 영어강의로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어강의, 국문학 국사학과에도 침투

또 지난해 고려대에서는 한국사학과와 사학과, 연세대에서는 국어국문과와 사학과, 서강대에서는 사학과, 서울대에서는 국사학과의 일부 강의가 영어로 진행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어학회장인 장경희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국어국문학이나 국사를 학문의 본산지가 미국, 유럽이 아니라 우리나라이지 않느냐”며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 교수는 “국어국문학이나 국사학 강의는 많은 부분이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정서적이고 주관적인 부분이 차지하고 있는데, 영어강의에서 이런 점들을 반영하고 이해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며 “무조건 대학에서 영어강의를 확대하는 것이 글로벌이 아니라, 우리말을 세계로 널리 알리고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글로벌이다”고 강조했다.

우선 교수들은 학교 측의 강제적인 요구사항 혹은 수입 문제 등으로 영어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교수들은 영어강의 진행의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일정부분은 한국어로 강의해야 하는 애로사항을 털어놓기도 했다.

연세대에서 영어강의를 진행해온 모 교수는 “미국의 대학에서 언어학을 가르치고 2006년에 은퇴를 했다. 이후 학교 측에서 요청을 해서, 2007년부터 영의강의를 했다”며 “처음에 국어국문과 강의를 영어로 하는 것에 대해 긴가민가했다”고 말했다.

신임교수 계약 때 ‘강요’ …"돈도 더 준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강의 초반 4~5분 정도는 한국어로 개요를 설명하고, 영어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한국어로 말하거나 지필시험을 국어로 써도 된다고 했다”며 “지필시험의 경우, 보통 학생들이 시험지의 3분의 2는 한국어로, 나머지 3분의 1은 영어로 써 낸다”고 밝혔다. 올해 계약이 끝나는 그는 새 학기에도 영어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고려대의 모 교수는 주변 교수들의 사정을 전하며 “신임교수의 경우, 대부분의 대학들이  계약을 할 때 의무사항으로 영어강의를 요구받는 경우가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교수임용이 취소될 수도 있다”며 “재임 중인 교수들에게는 영어강의를 강제할 수 없으니까, (기존 강의에 비해) 돈을 더 준다. 물론 소신을 갖고 강의를 하는 교수도 있지만, 수입 때문에 하는 교수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영어강의를 듣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대학 강의에서 상대평가가 실시되고 있지만, 보통 영어강의는 상대적으로 높은 학점을 받기 쉬운 ‘절대평가’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부 학과의 경우 영어강의가 학생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강의로 전락하는 등 파행 사례도 발생하고 있었다.

연세대 국어국문과 학생인 노 아무개 씨는 “물론 영어실력을 높이고자 영어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있지만, 얼마나 실력이 늘겠느냐. 솔직히 좋은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보통 강의들이 상대평가여서 학점을 받기 쉽지 않다. 그런데 저희 학교에 개설된 영어강의는 ‘절대평가’여서 학점을 따기 쉬운 편이다”고 말했다.

"절대평가여서 학점 따기 쉬운 편"

고려대 한국사학과 학생인 박 아무개 씨는 “저희 학과 특성상 한자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학문적인 개념을 영어로만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인지 교수님이나 학생들이 영어강의 시간에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등 파행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학문의 폭을 넓히고자 영어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도 있었지만, 이제는 대부분 외국인 유학생들만 듣는 강의가 되었다”며 “학교에서 우격다짐으로 무조건 영어강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불만이 많은 편이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영어강의를 아예 의무화한 대학들도 있었다. 동국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는 지난 2007년 입학생들부터 영어강의로 진행되는 전공과목 및 교양과목을 일정 학점(과목) 이상 이수해야만 졸업이 가능하도록 방침을 정하기도 했다.

교수와 학생들의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각 대학들이 영어강의에 골몰하는 속사정은 있었다. 우선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2005년부터 영어전용강의 지원 대학을 선정해, 교재개발비 및 강좌개설비 명목으로 학교당 5천만 원~1억 원 정도(올해는 예산 전액 삭감으로 시행되지 않음)를 지원해왔다. 한 푼이 아쉬운 대학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교과부, 영어강의 대학에 최고 1억 지원

고려대 홍보팀 관계자는 “고대는 약 10년 전부터 영어강의를 진행해왔다. 예전에 정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아, 학교에 있는 관련 시설을 개선하기도 했다”며 “요즘 대부분의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늘려가고 있는데, 이런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의 비율을 줄이는 건 상식적으로 볼 때도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2006년부터 자사의 대학종합평가(1994년부터 시행)에서 ‘국제화 지수’를 도입하면서 영어강의 열풍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국제화 지수는 각 대학의 영어강의 비율, 학위과정 외국인 유학생 비율 등으로 계산된다. <조선일보> 역시 지난해부터 ‘아시아 대학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이 밖에 외국인 유학생이 늘어나는 상황도 영어강의 증가세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고려대의 모 교수는 대학 측의 속사정을 전하며 “신문사에서 실시하는 대학종합평가에서 ‘국제화 지수’는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각 대학에서 대학 순위를 높이기 위해서 영어강의 비율을 앞 다투어 확대하는 게 아니냐”고 밝혔다.

그는 이어 “또 각 대학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있는데, 한국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들은 영어강의를 주로 들으려고 한다”며 “외국인 대학생은 각 대학의 ‘부 수입’을 올리는 존재이기도 한데, 이런 상황을 외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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