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 세즈윅, 앤디 워홀에 소비된 여인
        2010년 01월 25일 08: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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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개봉영화 <팩토리걸>

    영화에도 대박이 있고 쪽박이 있듯 미술 전시회에도 대박이 있다. 미술사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이름 좀 있다 하는 미술관마다 갖춰놓기를 바라는 작가의 특별전이 그렇다.

    어쩌다 경매에 작품이 나오기만 하면 경매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는 이름값 높은 작가, 미술에 대해 특별한 안목이나 지식 없이도 ‘아하! 누구~’ 할 정도의 작가 특별전은 대박 중에도 초대박이 예정된 전시회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 특별전

    이런 전시회는 관람료 수입 뿐 아니라 도판에서 프린트화, 엽서까지 작가의 작품을 2차 가공한 인쇄물부터 열쇠고리며 우산 따위 팬시상품까지 부대수입 톡톡히 올릴 거리가 많은 쏠쏠한 장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박 전시회의 전시 공간은 미술관이지만 그 뒤에는 거대 언론사가 꼭 끼어서 홍보에 한몫을 한다.

    이런 전시회는 대개 방학을 끼고 열린다. 방학 동안 수행 평가 과제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 감상이 아니라 견학을 하듯 줄줄이 늘어서서 작품보다 작품 아래 설명을 베껴 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샤갈, 클림트, 르누아르 등등 여러 특별전이 그랬듯이 요즘 최고 대박 전시회는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 특별전이다.

    1960년대부터 앤디 워홀은 캠벨 수프 깡통이나 코카콜라 병 따위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상품들을 그리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이렇게 대량생산된 상품 자체를 그림으로 그리는 데서 더 나아가 아예 작품 자체를 대량생산하기도 했다. 미술작품이 특별한 세계의 특별한 가치를 담는 작가 개인의 외화된 표현이 아니라 상품일 수 있다는 것은 ‘순수 예술’이 전유하던 미술에서의 우월성과 진지함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일종의 기계라고 생각한다"

    통속적이고, 일시적이고, 소비적이고, 값싸고, 대량생산적이며, 재치 있고, 관능적이고, 선동적이고, 활기차고, 대기업적인 팝아트 작가 가운데서도 특히 앤디 워홀은 "나는 모든 사람이 일종의 기계라고 생각한다"는 데까지 나아가 마치 기계로 만들어내듯 작품을 제작하려고 했으며, 그 작업을 할 ‘예술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아틀리에’가 아니라 ‘공장(The Factory)’이라고 이름붙인 스튜디오에서 판화에서 영화까지 여러 팝아트 제품들을 만들어내었다.

    <팩토리 걸>은 그 팩토리에 예술 노동자로 고용되어 제품 생산에 한몫을 했던 한 여성에 대한 영화다. 그 여성의 이름은 에디 세즈윅(시에나 밀러). 엄청난 부잣집 상속녀에 모델로도 성공할 정도의 얼굴과 몸매, 어디하나 부족할 것 없는 에디는 모든 보수적 가치에 대한 저항과 반항이 넘실대던 1960년대 미국의 경제 수도 뉴욕에서 갓 스물 넘은 나이에 앤디 워홀(가이 피어스)을 만나자마자 곧 그의 뮤즈가 된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앤디 워홀의 영화에 출연하고, 앤디 워홀의 패거리들과 함께 자유분방한 삶으로 빠져든다. 그런데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삶은 곧 자신의 존재를 소비하는 삶이다. 그 소비는 누군가의 작품/제품 생산을 위한 뮤즈가 되어 스스로의 재능을 소비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제품의 결과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산과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점점 더 관계에 집착하고, 향락에 중독되고, 마침내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지독한 소비의 끝은 참담하다.

       
      ▲ 영화의 한 장면

    <팩토리 걸>은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의 관계를 60년대의 음악, 패션, 화보, 영화, 그들만의 파티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고 세밀한 배경 안에서 절망적인 영화 상품으로 되살려낸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부잣집 아가씨가 몰락하는 과정은 예술 때문이 아니라 결핍 때문이고, 그 몰락의 끝은 결핍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돈’과 ‘사랑’의 결핍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조지 하이켄루퍼 감독은 흑백과 컬러를 넘나들며 영화 장면들을 구성한다. 당대의 인터뷰, 신문 기사, 잡지 화보, 에디가 주연한 팩토리의 영화들은 마치 다큐멘터리나 전시회를 보듯 충분히 재현적이며, 에디가 활짝 피었다가 사위어가는 유흥과 방종에 중독된 절망의 드라마에 딱 맞게 설명적이다.

    참 ‘팝’한 일들

    에디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마약과 방종에 빠져들었으며, 예술과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마구 퍼 쓸 줄만 알았지 돈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팝아트의 뮤즈였으면서 그 기원이 되는 물신과 상품, 소비의 그물망에 자신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에디 세즈윅은 앤디 워홀의 영화에서, 오래된 패션 잡지의 화보에서, 그리고 부잣집 딸내미가 문화예술계에서 철없어 보이는 기행을 보일 때마다 비교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아직도 그 존재가 상품화되고 있다. <팩토리 걸>은 마치 앤디 워홀이 에디 세즈윅을 소비하고 착취한 존재인 것처럼 그리고 있으나, 사실 그 모든 선택과 몰락은 에디 자신의 책임일 것이다.

    ‘누가 저런 걸 돈 주고 사겠어?’ 라고 싸구려 취급받던 수프 깡통이나 콜라병이 비싼 그림이 되어 전세계에서 관객을 불러 모으는 것도, ‘저런 사람도 불행을 알까?’ 싶게 겉으로는 부러운 조건을 다 갖춘 한 젊은 여성이 비참하고 불행하게 죽어간 것도, 그리고 그 예술과 삶이 영화라는 문화상품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모두 참 ‘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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