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예회 수준의 KBS 가요대축제
        2010년 01월 07일 07:55 오전

    Print Friendly

    한해를 결산하는 2009 KBS 가요대축제에서 주인공은 바로 미국 사람인 마이클 잭슨이었다. 가요대축제, 가요대상, 연기대상, 연예대상을 통틀어 생사를 막론하고 어떤 내국인 공로상 수상자도 이렇게 엄청난 대접을 받은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KBS 가요대축제는 2부를 한국 가수들이 마이클 잭슨에 대해 돌아가면서 헌사를 바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국 최고의 인기가수들이 연이어 마이클 잭슨의 노래와 안무를 따라했다. 연말 겹치기 스케줄로 쓰러지기까지 하는 한국 가수들이 그 바쁜 시간을 쪼개 미국 가수를 흉내 내는 연습까지 했던 것이다.

    마이클 잭슨 흉내 내기 쇼는 무려 14분여에 걸쳐 계속됐다. 한국의 젊은 가수 스타들이 모두 동원된 듯한 대규모였다. 발라드, 댄스, 락 등으로 장르를 구분해 팀별로 나오더니 막판엔 모두가 함께 나와, 한국 가요대축제에서 한국 가수들 전체가 도열해 미국 노래를 부르는 ‘개판 5분전’ 광경을 연출했다.

       
      ▲ <2009 KBS 가요대축제>의 한 장면

    한국인으로서 치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한국 영화상에서 미국 영화 주제가를 들어야 하고, 한국 가요시상식에서 미국 가수 흉내 내기 퍼포먼스를 봐야 하는가? 흉내 내기는 학생들이 학예회 때나 하는 것이다. 툭하면 한류 타령하면서 동아시아 대중문화 종주국 행세를 하는 나라에서, 학예회로 연말 결산하는 모습을 언제까지 참아줘야 하는가? 

    해마다 반복된다

    KBS 가요대축제는 2008년에도 기념비적인 치욕을 선사한 바 있다. 이번 마이클 잭슨 쇼에는 젊은 가수들만 동원됐었지만 2008년엔 젊은 스타들은 물론,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현숙 등 중견 가수들까지 일제히 무대 위로 올라와 손을 잡고 ‘뉴욕 뉴욕’에 맞춰 춤을 추는 최악의 추태를 연출했었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악몽이다.

    만약 태국에서 자기네 나라 연말 결산쇼를 하면서, 태국 가수들이 모두 나와 ‘서울 서울’을 불렀다고 생각해보라. 그게 어떤 풍경이겠나? 부디 대한민국처럼 정신 나간 짓을 태국에선 안 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중국에서 연말 결산쇼를 하며 중국가수들이 어설프게 한국 노래를 부르고, 한국 가수들 춤을 따라 춘다면 우리 네티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짝퉁’이라고 한껏 비웃었을 것이다. 우리 네티즌들은 중국이 한국을 따라할 때마다 마음껏 비웃으며 문화선진국(?)이라고 으스댄다.

    하지만 매년 치러지는 짝퉁 가요대축제가 한국도 그리 잘난 척할 처지가 못됨을 만방에 폭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치욕이라기보다 진솔한 자기 고백 같기도 하다. ‘한국은 기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다. 우린 3류야.’ 

    수치를 모르면 백치다

    KBS를 대표적으로 거론했지만 KBS만의 문제는 아니다. SBS에서도 다만 분량이 좀 적었을 뿐이지 마이클 잭슨 쇼를 전설적인 무대라며 내보냈다. 우리나라의 모든 대중문화 시상식이 미국 음악이나 미국 가수들의 춤을 흉내 내는 것을 버젓이 내보내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 한국 영화 시상식이 <스타워즈> 음악으로 시작되는 것을 보며 충격을 받은 이래, 해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살아야 했다. 2008년엔 가요축제인지 팝송축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라는 자탄이 나왔었고, 비욘세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이 없었으면 한국이 어떻게 시상식이나 연말결산을 진행했을까 하는 한탄도 나왔다. 그리고 2009년엔 한국 가요대축제에 마이클 잭슨이 주인공 노릇을 하는 광경을 보며 한 해를 마감한 것이다.

    도대체 자존심이라든가 자부심, 혹은 주체성 등은 어디로 날려버린 것일까? 한국 최고의 연예인들에게 미국 가수들 흉내를 내도록 하는 것에 추호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연말 결산 무대에까지 그러는 것은 치욕과 추태에 다름 아니다. 추모의 뜻으로 한 곡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과해도 이만저만 과한 것이 아니었다. 중국을 과하게 떠받들던 조선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아무리 우리 것이 미국 것보다 못하다고 해도 중요한 무대에서 억지로라도 자꾸 써버릇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정체성이 생기고, 우리 창조력이 향상될 수 있다. 남의 나라 가수들 흉내 내는 것은 서두에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학예회나 하는 아마추어 수준을 떨어뜨릴 뿐이다. 남의 것을 따라하는 것에 수치를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발전할 수 없는 법이다. 방송사들이여, 제발 수치를 알아달라.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