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 내부 적대관계 형성 우려
민주노총 선거 '공학적 통합' 안돼"
    2010년 01월 04일 07:59 오전

Print Friendly
   
  ▲단병호 전 의원.(사진=이재영)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자 민주노동당 소속의 국회의원이었던 그의 현 직함은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사’다. 간혹 언론에 전해지는 것 이외에는 큰 활동이 눈에 띄지 않던 단병호 이사를 만나 근황을 묻고, 노동운동에 대한 고민을 들어봤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서민 행보’에 대해 “한 마디로 국민들을 기만하는 사기”라고 맹공하며, 이명박 대통령의 노동정책이 “대처나 레이건보다 훨씬 더 센 세계 최강의,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의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김대중, 노무현 때 노동법을 이렇게 처리하지 못한 것은 명분도 없었기 때문인데, 이명박 정권이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이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함께 그는 “노동관계법은 민주당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였다. 민주당이 사실상 방조한 것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대로 가면 노동계급 안에서 적대적 관계 생겨” 

그는 민주노조 운동에 대해서도 조직률 저하, 노동자 양극화, 현장조직력 약화, 정체성 이상 등의 예를 들며 “이런 상황 전체를 보면 민주노조운동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좁혀지기는커녕 더 심화되는 양극단 구조화가 계속되고 있고, 극복될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이대로 가면 노동계급 안에서 적대적 관계가 생긴다”고 경고했다.

금년 1월 예정인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관련해 그는 “선거공학적 통합은 의미 없다.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문제가 뭐고 이를 풀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정파 세력들, 산별노조들, 지역이 모여 진단과 처방을 도출하고 합의한다면, 그걸 하기 위한 통합 지도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의원들이 정파로부터 자유롭고 냉철하게 판단 선택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평소의 지론이었던 교육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단병호 이사는 “번듯한 교육기관 만드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더 구체화되면 공식적으로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지난 해 12월 31일 오후 단병호 이사의 분당 자택 근처 커피숍에서 이루어진 인터뷰 전문이다.

                                                       * * *

노동운동 연구하며 지낸다

– 지난 국회의원 임기 후 한국노동운동연구소 활동 외에는 별다른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동안 어떤 일을 하며 지냈나?

= 2008년 3월 국회 일을 그만 두고 집에서 쉬고 지역 다니고 했다. 한국노동운동연구소에는 2008년 10월부터 출근하고 있다. 일주일에 3~4일 정도 나간다. 내가 전문 연구가는 아니니까 깊은 연구 활동을 하는 건 아니고, 월례토론회와 매주 세미나에 참여하고 사람들 만나고 책도 보고 그런다.

– 지난 20년 동안 감옥 갔을 때 이외에는 가장 조용히 지내는 것 같다. 편한가?

= 편하다. 노동운동을 시작한 이후 가장 활동 반경이 작은 시절이다.

– 심심하지는 않나?

= 심심하지 않다. 못 본 자료들도 보고 사람들과 토론하고 하니까 무료하거나 심심하지 않다. 예전을 돌아보기도 하고, 돌아다니며 배운 게 많다. 나름대로 이런 생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 얼마 전 환갑 아니었나?

= 금년(2009년) 음력 7월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친구들끼리 모여 식사라도 하자고 하던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요즘 누가 환갑 잔치 하나…. 부담스러워 안 했다. 그런데 몇 사람들이 외국여행 예약한 후에 강권해서 아내와 동남아에 다녀왔다. 나는 가끔씩 외국 출장도 다녔는데 아내는 외국여행이 처음이라 좋아하더라.

– 그렇게 한 번씩 나갔다 오면 집 안에서 ‘약발’이 몇 달은 가던데?

= 전혀 그렇지 않더라. 하하.

– ‘단 위원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연구소 일도 중요하지만 너무 조용히 지내는 것 아니냐는 불평들도 있다.

탈당 후 공황 상태…반 년 동안 스스로를 학대

= 어떤 분들이 어떤 기대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 당 그만 두고 꽤 힘들었다. 그걸 극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5~6개월은 공황 상태 비슷하게 지냈다.

혼자 집에 있으면 답답하니까, 집 근처 탄천에 나가 하루 20km씩 걸어 다니며 스스로를 학대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버텨야 했던 어려운 시기였다. 당시에는 누구든 힘들었을 게다. 그렇게 몇 달 동안 1,600km 정도를 걷고, 연구소에 나가면서 안정화돼가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은 상고 출신이라거나 ‘서민 이미지’라는 자신의 캐릭터를 이용하여 ‘중도 실용’, ‘서민 민생’이라는 식의 정치 행보를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권의 노동 정책을 평가하면 어떤가?

= 이명박이 서민이라는 자체가 가당치 않다. 성장 과정이 어려웠다고 해서 서민인 것은 아니잖느냐.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 그 정도 어렵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 이후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엄청난 재산 가진 사람이 어떻게 감히 ‘서민’이라 하느냐. 한 마디로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사기다.

이명박 정부가 구체적인 서민 정책 편 게 뭐가 있느냐. 오히려 그동안의 서민 정책을 축소했다. 부자 감세도 그렇고 서민복지 축소도 그렇고. 실 내용을 보면 서민 정책을 축소시키면서 ‘서민’이라 포장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이런 것에 왜 속는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이명박이 대처나 레이건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 최강의,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철도노조 쌍용차노조에 대한 대응을 보면 그런 적대적 의식이 보인다.

이명박이 ‘서민’이라고? 대국민 사기

전임자 임금이나 복수노조에 대한 한나라당 입장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노동관계법이 국회 통과돼(인터뷰 당시에는 상임위 통과-편집자) 정권과 자본이 원하는대로 완성됐다. 87년 이후 노자 간의 핵심 쟁점은 자주적 단결권의 문제였다.

과거 정권 때 복수노조화를 막기 위해 전임자 임금 문제를 끼워 넣다가, 이번에 전임자 임금을 금지시켰고 복수노조는 1년 6개월 유예시켰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본의 입장이 100% 관철된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때 이렇게 처리하지 못한 것은 명분도 없었기 때문인데, 이명박 정권이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정권의 노동자에 대한 시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사진=이재영

– 전임자 임금 문제나 복수노조 문제도 중요하지만, 산별노조 협상권 무력화가 더 치명적인 것 같다.

= 노조 만든다는 건 당연히 교섭권이 따라오는 것이다. 사용자가 동의해주면 예외적으로 인정해주겠다는데, 동의해줄 리가 없지 않느냐.

– 추미애 환노위 위원장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 예견됐던 것 아니냐. 한나라-한국노총-경총 3자 합의 때 추미애 위원장이 비판했던 내용대로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됐다. 추 위원장이 다른 입장으로 변한 게 아니다. 그 사람 입장대로 된 것이다. 만약 추 위원장에게 일말의 기대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 쪽의 착각이다.

다만, 이렇게까지 독단 강행처리할 수 있었다는 점은 놀랍다. 그리고 민주당이 이런 식의 처리를 과연 몰랐을지 석연치 않다. 국회 경험에 비추어 보면, 국회 안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 계산이나 행동을 서로들 다 알게 되지, 모르기가 더 어렵다.

노동관계법은 민주당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였다. 민주당이 사실상 방조한 것 아닌가. 추 위원장의 행동은 민주당으로서는 제명감인데, 그 징계 수위를 보면 민주당의 진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과연 몰랐을까?

– 2009년 4월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여 년에 걸친 민주노조운동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왜 그런가? 그리고 이런 위기는 지금도 여전한 것인가?

= 다들 공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가장 대표적인 위기 징후는 노동자 조직률이 준 것이다. 1995년에 노동자 조직률이 11%였는데, 지금은 10%다. 이런 정체가 상당 기간 계속된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문제다.

그리고 노동계급 내의 이중구조가 고착화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좁혀지기는커녕 더 심화되는 양극단 구조화가 계속되고 있고, 극복될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이대로 가면 노동계급 안에서 적대적 관계가 생긴다.

또, 현장조직력도 약화됐다. 노동조합의 현장장악력이 바닥이다. 노조와 간부에 대한 신뢰, 존경심이 예전보다 현격하게 떨어졌다. 대부분의 현장에서 자본의 통제력이 더 크게 작동하는 것 같다.

노조 신뢰 크게 떨어져

노동운동의 정체성에도 이상이 있다. 87년 이후 자기 정체성으로 내외에서 인정받던 민주성, 자주성, 투쟁성 등등이 전면 훼손됐다. 노동운동의 도덕적 우위도 거의 해체된 것 아니냐. 조직 내부 비리, 성폭력 등을 겪으며 노동운동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이 추락했다.

이런 상황 전체를 보면 민주노조운동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에 임시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전망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2008년 성폭력 사태가 터졌을 때는 조직에 긴장이 걸렸었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이런 지적에 대해, 어려운데 자꾸 어렵다, 어렵다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반발도 있는데,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임성규 집행부 출범할 때 보니, 사람이 없더라.

= 이유야 다 있겠지.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면피될 수 있는 상황이냐? 아니다.

– 2010년 1월에 민주노총 선거가 있다. 일각에서는 통합 지도부 구성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그런 움직임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지금 민주노총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무엇인가?

= 통합 지도부는 고민해볼 여지가 있는 문제다. 하지만 선거공학적 통합은 의미 없다.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문제가 뭐고 이를 풀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정파 세력들, 산별노조들, 지역이 모여 진단과 처방을 도출하고 합의한다면, 그걸 하기 위한 통합 지도부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 없이 통합 얘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선거공학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이런 식이면 통합돼도 문제다.

선거공학적 통합은 안 돼

현 상황을 보면 통합 지도부 구성이 어려울 것 같다. 정파들 일부는 찬성하지만 다른 일부는 시큰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지도부가 들어설지 모르겠지만, 정말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이번 임기 3년이 새 도약의 발판일지 계속되는 역량 소진의 과정일지를 결정할 것이다.

일상적 지도력 가지고는 안 된다. 전략적 비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진짜 통합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갖춘 지도부가 구축돼야 한다. 민주노총에 대한 대중들의 애정이 식었다. 이 대중들에게 뭘 하자든지, 어디로 가자든지를 제시해야 한다.

2000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일할 당시 조직발전특위를 만들어서, 학계와 현장의 좌우파를 망라해서 일정한 합의를 도출했었다. 그런데 정파들 내부의 합의를 거치지 못했다고 대의원대회에 상정도 못했다. 지금에 와서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다들 이야기하는데, 이번 집행부는 그런 비전과 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 때 정파들이 모인다고 통합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활동을 같이 해야 한다. 차기 집행부가 이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대의원들이 정파로부터 자유롭고 냉철하게 판단 선택해주길 바란다.

교육사업에 매진, 곧 구체적 제안할 터

– 평소 노동자 교육의 필요성을 자주 강조했었고, 근래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 아직 공식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다. 운동은 어차피 두 가지다. 현실에 대처하는 것과 미래 재생산하는 것의 합이 운동이다. 그동안 우리 운동은 현안 중심이다 보니 미래에 대한 자기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교육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길게 보고 역량을 재생산할 때다.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단위들과 모여 의논하는 중이다. 더 구체화되면 공식적으로 제안할 것이다.

기존 교육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자는 구상이다. 우리 운동의 관행화된 교육 방식이 지금 시대와 전혀 맞지 않는다. 교육 내용도 재점검해야 한다. 교육 내용이 87년 때와 많이 다르지 않는데, 시대는 변했다.

–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해달라.

= 특별히 긴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20년 노동운동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 운동을 어떻게 더 잘할지가 고민이다. 나름대로 찾은 그 첫째 해답이 교육사업이다. 역량 재생산의 번듯한 교육기관 만드는 데 전력투구하려 한다. 이것만 잘 되도 좋겠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