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사면' 할말 못하는 언론
        2009년 12월 30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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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특별사면했다.

    말 그대로 ‘특별’ 사면이다. 이 전 회장의 사면은 지난 8월 배임과 조세포탈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은 뒤 불과 4개월 만에 이뤄졌다.

    또, 경제인 1인 만을 위한 사면은 헌정사상 처음이며 국경일이나 기념일이 아닌 연말 사면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대통령은 "이 전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에 꼭 필요하다"며 사면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동계올림픽 유치가 법치주의를 뒤흔들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이 대통령은 대기업 대표나 거물 정치인이 큰 죄를 지어도 경제에 기여할 수 있다면 또 특별사면을 단행할 것인가? 경제단체나 지방자치단체, 스포츠단체에서 사면요청이 잇따르면 누구는 사면해주고 또 누구는 거부할 건가?

    형평성 문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법 집행이 신분의 ‘귀천’에 따라 다르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돈이 있으면 무죄, 돈이 없으면 유죄)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다음은 30일자 전국단위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금호산업·타이어 워크아웃 신청한다>
    국민일보 <선한 이웃들 ‘성탄아기’ 살리기>
    동아일보 <국내에 살지 않더라도 해외동포 영주권 준다>
    서울신문 <세법개정안 발목…’한해 두개 법’ 위기>
    세계일보 <금호산업·타이어 워크아웃 추진>
    조선일보 <중앙대 ‘박용성식 개혁’ 본격화 / 학과 절반 통폐합>
    중앙일보 <북, 경수로 장비·자재 빼돌렸다>
    한겨레 <MB, 이건희 ‘1인 특별사면’>
    한국일보 <중앙대, 학과 절반 축소>

    이건희 전 회장 사면, 옷 벗고 춤추는 부끄러운 언론

    나라를 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대통령이 이 전 회장을 특별사면하면서 스스로 법치주의를 무너뜨린 논리도 군색하지만 이를 비판해야 할 언론들조차 자본에 얽매여 할 말을 안하고 있는 게 더 부끄럽다. 이러면서 언론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책임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으니 한심스러울 뿐이다.

    중앙일보는 1면 기사 제목을 <"이건희 전 회장 사면, 국가 관점서 결심">으로 뽑아 이 전 회장의 사면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국익을 고려한 것이라고 강조한 데 이어 5면 뉴스분석에서는 이 전 회장 사면을 위해 정치, 경제인을 끼워넣는 ‘물타기 사면’을 하지 않는 정공법을 택했다고 이 대통령의 결단(?)을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 중앙일보 12월30일자 5면  
     

    사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위한 국가적 선택>은 더 가관이다. "이 대통령이 고심 끝에 이 전 회장에 대한 사면·복권을 결심한 것은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환영한다"며 "이 전 회장은 기업가로서 세계적으로 검증된 경영능력을 갖췄고, 그간 IOC 위원으로서 국제 체육계에서 드물게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이어 "이 같은 재능과 역량은 아무나 손쉽게 갖출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그러한 국가적 자산을 국익을 위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지도자의 당연한 선택"이라는 궤변을 폈다. 중앙일보에서는 법치주의 훼손에 대한 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 중앙일보 12월30일자 사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도 논조의 차이는 있지만 이 전 회장 사면 옹호입장은 마찬가지였다. 동아일보는 사설 <사면되는 이건희 회장, 국민기대 부응하기를>에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사법부의 형벌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정부의 사면 결정에는 그만한 명분과 실리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동아일보가 말한 명분과 실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인한 경제효과였다.

    조선일보도 사설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사면에 대하여>에서 "잦은 사면권 행사로 형벌의 효력을 일거에 무효화시키는 일이 되풀이되면 국가 형벌권의 본래 목적이 퇴색되고 만다"고 지적하면서도 "이 전 회장이 자신을 사면하게 된 직접적 동기인 동계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고 글로벌 기업 삼성 내부에 남아 있는 전근대적 잔재를 말끔히 청소해 삼성을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기업으로 격상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그에 따라 국민의 생각도 정해질 것"이라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국민일보는 아예 <이건희 사면·복권 적절했다>를 사설 제목으로 뽑았다. 국민일보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밴쿠버 총회에 이 전 회장이 IOC 위원 자격으로 참석해 적극적으로 유치활동을 벌이는 게 절실한 상황이어서 이번 사면은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별사면’ 정면비판한 언론, 경향 한겨레 뿐

    그나마 이 대통령의 이 전 회장의 특별사면 조치의 부당함을 제대로 지적한 언론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밖에 없었다.

    경향신문은 4면 <국익 이유로 ‘표정 바꾼’ MB 법치> 기사에서 "이번 사면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법과 원칙’이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며 "출범 초부터 주창해온 ‘불법필벌’ 원칙이 노조나 양심수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또, ‘용산참사와 너무나 다른 이중잣대’라고 지적한 야당의 반응과 ‘법 앞의 평등을 부정했다’는 시민단체의 비판을 보수단체와 체육계의 환영 반응과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 경향신문 12월30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또, 사설 <이 대통령의 군색한 ‘이건희 사면’ 논리>에서는 "이 전 회장 사면은 정부가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사회적 정의와 법치의 원칙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 사면은 동계올림픽 유치와 나라경제 살리기 면에서의 국익만 따질 수 없다. 국민의 법 감정과 법치 원칙의 훼손이 가져올 부작용이 말할 수 없이 크게 때문이다. 더욱이 이 전 회장은 10년에 걸친 수사와 재판을 거쳐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지 4개월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결국 이 전 회장을 사면한 것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지 않을 수 있음을 천명한 셈이다."

    한겨레도 사설 <이 전 회장 사면, 법치주의가 부끄럽다>에서 "단 한 사람을 위해 마련한 특별사면의 시혜 앞에 나라의 품격도 땅에 떨어졌다. 삼권분립, 법집행의 형평성, 법 앞에 만인의 평등 등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소중한 가치들도 빛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허탈감에 빠진 서민들의 정서를 달래 주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었다. 사면을 두고 누가 뭐라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다는 오만함과 안하무인의 태도가 느껴질 뿐이다. 이래 놓고도 이 대통령은 다시 힘없는 서민들에게 ‘너희들은 법을 잘 지켜야 돼’라고 윽박지를 게 분명하다. 대통령의 그 천연덕스러운 이중잣대가 절망스럽다."

       
      ▲ 한겨레 12월30일자 3면  
     

    한겨레는 4면 <체육계 정치권 ‘합작로비’…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 기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11월19일)를 시작으로 체육계, 재계, 정치권에서 사면 건의가 쏟아졌다며 "청와대와 여당 안에서도 친재벌, 특혜 시비 등을 이유로 사면 불가론이 제기됐음에도 마치 정해진 각본이 있는 듯 재계와 정치권, 일부 언론이 사면론을 확대 재생산했다. 삼성이 치열하고 은밀하게 로비를 하고 여론몰이에 나선 것이란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의 사면-세종시 삼성계열사 이전 빅딜설도

    이 전 회장의 사면 배경에 동계 올림픽 유치 뿐만 아니라 세종시에 삼성그룹을 유치하기 위해 암묵적인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는 29일 논평에서 "삼성그룹이 미래를 대비한 새로운 사업으로 구상하고 있는 생명공학 분야를 세종시에서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 사면복권이라는 은전을 베푼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에서는 좀 더 진전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5면 <정부·삼성 ‘사면·세종시행’ 빅딜설> 기사에서 "재계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의 특별사면이 결정되기 전부터 ‘이 전 회장 사면복권 문제가 걸려 있는 삼성그룹이 계열사 중 한 곳을 세종시로 보내거나 대규모 투자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돌았다"며 "특히 정운찬 총리가 최근 충청지역 주민 간담회에서 기업유치 협상 상황을 설명하며 ‘깜짝 놀랄 만한 대기업 한 곳’과의 협상이 성사단계라고 밝힌 뒤 삼성전자가 유력한 기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또, "삼성전자가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사업에 진출하며 세종시에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사업내용까지 흘러나왔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그러나 빅딜설에 대해 "이 전 회장을 특별사면해준 것에 대해서는 정부와 국민에게 감사하고 있지만 세종시 입주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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