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에 대한 대중의 역풍이 불다"
    [Left Side Story] 그리스-프랑스 총선 세계사적 의미 읽기
        2012년 05월 10일 09:21 오전

    Print Friendly

    지난 일요일(5월 6일) 전 세계의 눈길이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로 향했다. 그런데 같은 날 유럽의 다른 곳에서 프랑스 대선만큼이나 중요한 또 다른 선거가 실시되었다. 바로 그리스 총선이다.

    요즘 그리스 분위기가 어떤지는 외신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리스는 신자유주의 금융 위기가 재정 위기 형태로 폭발한 대표적인 나라이고, 이 때문에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 회원국들 그리고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제공받아야 하게 되었다. 그런데 ECB-EU-IMF ‘트로이카’는 구제금융 대가로 고강도 긴축 정책을 요구했다.

    그 결과 그리스 사회는 붕괴 일로에 놓이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삭감되고 실업률이 폭등하고 복지 급여 지급은 중단됐다. 자살, 격렬한 가두시위와 파업이 이 나라의 새로운 일상 풍경이 되었다. 그리스가 자랑하는 노(老)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젊은이들을 이끌고 의회에 쳐들어가 “혁명!”을 외치는 장면이 그리스에서는 이제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이번 그리스 총선 결과는 대중의 불같은 분노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런 대중의 분위기가 결국 이번 총선 결과로 폭발했다. 70년대 민주화 이후 수십 년간 번갈아 정권을 잡아온 양대 정당 중 하나인 중도우파 ‘신민주주의’(ND)가 제1당이 되기는 했지만, 득표율은 18.85%에 불과했다. 지난 2009년 총선의 33.47%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지지율이 급락한 것이다.

    양대 정당 중 중도좌파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은 더 처참한 결과를 얻었다. 이 당은 지난 총선에서 제1당이 되어 권력을 잡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작 13.18%를 얻어 제3당이 되는 데 그쳤다.

    ND와 PASOK 모두 구제금융 협상과 그 결과인 초긴축 정책을 추진한 정당들이다. 대중은 이에 대해 ‘아니야’라고 외친 것이다. 누구도 이번 선거에서 심판받은 것이 이 두 당과 이들의 긴축 정책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반면 총선 이후 가장 주목받는 것은 제2당으로 급부상한 ‘급진좌파연합(SYRIZA)’이다. 지난 선거에서 불과 4.6%를 얻었던 이 당은 이번에 16.78%를 득표했다. 1974년생인 이 당의 젊은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5월 9일 현재, 차기 정부 구성 권한을 부여받고 ‘반긴축 좌파 연정’을 추진하고 있다. 치프라스 자신의 표현대로 ‘평화적 혁명’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급진좌파연합

    급진좌파연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 좌파 역사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는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의 점령 아래 놓였다. 이때 항독 레지스탕스를 주도한 것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산당이었다. 그래서 2차 대전 직후, 공산당은 그리스 사회에서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곧바로 탄압이 시작되었다. 스탈린이 영국의 처칠과 협상하면서 그리스를 서방 관할 구역으로 내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몇 년간의 치열한 내전이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같은 시기 한반도의 역사와 많이 닮아 있다.

    공산당은 내전에서 패한 이후 비합법 정당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와는 달리 내전이 분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좌파의 역사가 완전히 단절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전 이후에도 좌파의 역량이 상당 부분 유지되었다.

    그리스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군부독재 아래 있었다. 이때 좌파가 대중적으로 다시 부활하게 된다. 다양한 비공산당 좌파들, 즉 사회민주주의자들, 마오주의자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등장했다. 70년대에 민주화하면서 이 중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건설한 PASOK이 양대 정당 중 하나로 부상해 이제까지 ND와 함께 그리스 사회를 이끌어왔다.

    공산당도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비록 지하에서나마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당이 두 개로 나눠진다. 하나는 ‘국제파’인데, 정확히 말하면 ‘친소파’다. 국제파의 주요 구성원들은 지하당 시절 소련에 망명해 활동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종소주의’라 해야 할 정도로 소련 공산당 노선에 충실했고, 소련의 이해를 노동자계급 국제주의와 등치시켰다.

    반면 ‘국내파’는 그리스 국내에서 오랫동안 지하 활동을 했던 이들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그리스 국내 사정에 충실한 노선을 원했고, 그래서 국제파와 치열한 논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파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저명한 맑스주의 정치학자 니코스 풀란차스였다. 풀란차스는 국가 기구 바깥의 대중 투쟁과 국가 기구 내부에서 국가를 변형시키는 활동을 서로 결합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을 주창했다.

    어찌 보면 한국의 NL-PD 논쟁과도 좀 닮은 구석이 있다. 아무튼 군부독재 기간에 ‘국제파 공산당’과 ‘국내파 공산당’이 서로 나눠져서 두 개의 공산당이 존재하게 된다. 민주화 이후 두 당 모두 합법화되지만 분열의 한계로 좌파의 제1당 지위를 PASOK에 내줘야 했다.

    두 공산당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들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1988년에 결성된 ‘좌파진보연합’이다. 이 조직은 두 공산당과 여타 좌파 조직들이 함께 결성한 일종의 연합전선이다. 좌파진보연합은 사회주의 이념과 함께 생태주의, 여성주의를 강조하며 PASOK과 구별되는 대중적 좌파 구심을 건설하려 했다.

    그런데 ‘국제파 공산당’, 즉 현재의 그리스 공산당(KKE)이 이 실험에서 철수할 것을 결정한다. 구 ‘국내파 공산당’을 중심으로 좌파진보연합을 단순한 정당연합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좌파정당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는데, 여기에 반발한 것이다. 이후 KKE는 노동조합운동 안에 똬리를 틀고 다른 모든 좌파 세력에 대해 문호를 닫은 채 교조주의적 태도를 고집하게 된다.

    반면 좌파진보연합의 잔류 세력들은 ‘좌파운동 생태주의 연합(Synaspismós, 이하 ‘좌파생태연합’)’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좌파 녹색 정당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운동에 지분을 확보해놓고 있던 KKE에 비해 당세가 계속 미약했고, 그래서 좌파 내 제3당이라는 소수 정당의 위치에 머물러야 했다.

    ‘급진좌파연합’은 이 좌파생태연합의 ‘재창당’ 프로젝트로 등장했다. 좌파생태연합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2004년 총선을 계기로 다시 당 바깥의 생태주의 세력, 트로츠키주의 정파, 마오주의 정파들을 결합시켜 새로운 정당연합 ‘급진좌파연합’을 출범시켰다.

    좌파생태연합은 여전히 독자 정당이지만 이제는 급진좌파연합 내의 한 정파처럼 활동한다. 역으로 급진좌파연합은 정당연합이면서 마치 하나의 독자 정당인 것처럼 움직인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낯선 정당운동 형태다.

    이렇게 탄생한 급진좌파연합도 여전히 당세가 KKE에 미치지는 못했다. 2009년 총선에서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원외 정당으로 추락할 위험이 예상되었으나 원내 진출 하한선을 가까스로 넘어 기사회생하기도 했다.

    기사회생의 1등 공신이 바로 젊은 당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였다. 치프라스는 2006년 32살의 나이로 아테네 시장 선거에 나가 돌풍을 일으켜(10.51%) 급진좌파연합의 지도자로 떠올랐다. 10대 때부터 국내파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하며 성장한 인물이다.

    이번 총선 전에도 급진좌파연합은 다시 위기에 빠졌었다. 그리스 사회의 위기 속에서 급진좌파연합이 전반적으로 좌경화하자 이에 반발한 좌파생태연합의 원로들 일부가 탈당해서 ‘민주좌파’라는 새 정당을 만들었다. 한때 여론조사에서 급진좌파연합의 지지층 상당수가 민주좌파로 이동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반긴축 좌파 유권자들은 급진좌파연합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KKE는 너무 종파적이고, 민주좌파는 PASOK과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고 생각한 유권자들이 치프라스의 확고한 지도력 아래서 그간 비정규직, 청년 시위에 적극 결합해온 급진좌파연합을 ND-PASOK 심판, 긴축정책 심판의 도구로 선택한 것이다.

    총선 이후, 어떻게 될 것인가?

    좌파 유권자들이 KKE보다는 급진좌파연합에 쏠린 데에는 두 정당의 위기 해법의 차이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KKE는 그리스가 지금 당장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반면 급진좌파연합은 일단 지금은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물론 급진좌파연합 내에도 상당수 분파가 ‘채무 불이행-유로존 탈퇴’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당론은 재협상 요구 이후에 상황에 따라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고려하는 게 맞다는 쪽이다.

    이 정도만 해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 엘리트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위협이다. 실제로 지금 치프라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유럽 금융 시장을 요동시키고 있다.

    ND가 제1당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구성을 포기하자 그리스 대통령은 치프라스에게 조각권을 넘겼다. 치프라스는 ND, PASOK이 구제금융 협정을 폐기하는 데 동의하면 연정 구성을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ND는 예상대로 이런 입장에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치프라스는 연정을 함께 구성하는 데 필요한 5대 조건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첫째, 연금, 임금 삭감 등 그리스인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있는 모든 조치들의 즉각적인 철폐.

    둘째, 노사 단체협상 파기 등 노동자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모든 조치들의 즉각적인 철폐.

    셋째, 의원 면책 특권의 즉각적인 철폐 그리고 최대 득표 정당에게 50석을 추가로 몰아주는 현행 선거법 개혁.

    넷째,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감사 및 그 결과의 공표. (사실상의 국유화 전단계 조치)

    다섯째, 그리스 국채에 대해 국제적으로 감사 및 그 결과 공표 전까지 모든 채무에 대한 모라토리움 선언.

    유럽연합 엘리트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고, ND, PASOK 등 기존 정당들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조건들이다. 그리스 정당들 중에서는 민주좌파만이 유일하게 치프라스의 조건들에 전폭적으로 동의를 표한 상황이다. 공산당은 급진좌파연합의 좌파 연정 구성 제안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치프라스를 만나주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급진좌파연합 주도의 반긴축 좌파 연정 구성이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으로서는 6월에 총선을 다시 치르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급진좌파연합을 통해 세계를 향해 외친 그리스 민중의 목소리는 이미 분명하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전 세계 기득권 세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스 유권자들이 이런 상황을 목격하고 다시 실시되는 총선에서는 어쩌면 반긴축 좌파 세력의 지지도가 더욱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런 사태 전개를 놓고 나치 집권 직전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같다고 한탄한다. 급진좌파연합 같은 ‘극좌’ 정당이 16%를 득표하고 나치 정당인 ‘황금 새벽’이 6% 득표한 것은 과연 1930년대 벽두의 독일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지나치게 ‘정치학 편향’적인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반응이 나오게 된 사회 경제적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사회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좌파 극단주의’를 욕하고 ‘우파 극단주의’를 우려하는 것은 한가한 논평가들의 호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유럽 자본의 지배에 대한 대중의 역공이 고대 민주주의의 실험지인 ‘그리스’와 근대 민주주의 실험의 발상지인 ‘프랑스’에서 선거 결과로 폭발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서 뭔가 세계사적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민주주의’가 다시 위험한 폭발물로 다가오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위험의 도래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의 ‘99%’들에게는, 그에 맞먹는 가능성의 열림을 뜻하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