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87년 이전으로 되돌리자"
By 나난
    2009년 12월 07일 0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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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부가 운영하거나 혹은 정부의 투자를 받아 운영하고 있는 이른바 공공기관들 12개가 소속 노동조합에 대해 단협 해지를 통보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최근 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의 배경도 회사측의 단체협약 해지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의 역사속에 이처럼 기업측이 전방위적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하며 노동조합을 위협하는 상황은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신종 노조무력화 수법

단체협약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는 기업, 산업, 업종 등을 단위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사용자인 기업, 나아가 정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노동자의 근로조건이나 그 밖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논의하여, 합의된 결과를 단체협약으로 체결한다.

   
  ▲ 사진=공무원노총 홈페이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의 일반적인 예와 달리 기업단위로 노동조합이 구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업별 노사관계를 규율하는데 이와 같은 단체협약이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노사 당사자들이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회사와 노동조합의 권리와 의무를 결정하려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노사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이 단체협약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근로기준법 같은 법률로 국회나 정부가 노사관계의 기본적인 관계를 규율한다 해도 법률이 갖는 특성상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칙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특정기업, 특정산업의 실질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기업 또는 산업의 현실에 맞는 단체협약과 같은 자율적 규율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단체협약은 복잡하고 다양한 산업환경을 살아가는 현대의 노동자들이나 기업주들에게 실질적인 노사관계의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체협약은 노동조합과 회사가 체결한 협약으로 주되게 근로자의 임금, 근로시간, 작업 시 안전조치, 교대근무의 형식 등 다종다기한 근로조건과 노동조합의 활동에 관한 사용자의 불이익방지 등을 중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단체협약은 일반적인 법률이 규율하지 못하는 해당 기업 또는 산업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내용도 동시에 담고 있다.

단체협약의 사회공익적 의미

여성 노동자가 많은 기업의 경우 성희롱 예방책을 단체협약에 담아 여성 노동자가 좀 더 안심하고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한다.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건설업이나 중공업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기업에서는 산업안전을 위한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승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철도기업이나 항공사의 경우에는 안전운항을 위한 단체협약을, 공정방송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방송국은 공정방송에 관한 노사협약을, 국민의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공기업은 공익의 보호에 관한 협약을 단체협약으로 체결한다.

이처럼 단체협약은 단순히 그 회사 노동자들에 대한 월급과 근무시간을 정하는 것 외에 기업의 구성원이 머리를 모아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규정지음으로써, 자칫 이익 추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공익을 보호하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단체협약은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논의를 통해 합의에 도달한 내용만을 담는다는 것이다. 기업 내 구성원 전원이 평등한 상황과 조건에서 토론과 논의를 통해 자신의 운영질서를 구축한다는 것은 현대사회 가장 중요한 가치인 민주주의의 실현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단체협약 제도는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인 민주주의를 산업사회 내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에 단체협약은 기업을 보다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노사관계에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의 긍정성 무로 돌리는 행위

하지만 올해 벌어지고 있는 사용자에 의한 단체협약 해지 사태는 사용자 일방이 주도하는 노사관계를 구축하려는 의도에서 위와 같은 단체협약 제도의 긍정적인 역할을 무로 돌리는 것이어서 실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공공부문에서부터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단체협약 해지 사태는 노사관계를 다시 80년대로 돌리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아마 사용자측(정부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이 노리는 것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수많은 노동자가 경제-사회적으로 보다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용자와 교섭하며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던 그 시점 이전으로 상황을 돌리려는 것 같다.

즉, 당시의 노동운동이 많은 정당성과 여론의 지지를 얻어 단체협약을 좀 더 민주적으로 체결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사회가 좀 더 친기업적으로 바뀌었으니 다시 리셋(Reset) 버튼을 눌러 상황을 원점으로 돌리고 앞으로 좀 더 친기업적인 단체협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것다. 그러나 이러한 최근 일련의 경향은 무수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이와 같은 태도는 단체교섭 제도나 단체협약 제도가 가지고 있는 토론과 논의의 관행을 무시하고 ‘힘의 논리로 노사관계를 평정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낳게 될 것이다.

어느 일방이 사회적으로 좀 더 우세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약속 같은 것은 그냥 파기하고 힘의 논리로 밀어붙여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 한다면 그 사회는 신뢰나 역사 또는 민주적 가치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닌, 승자독식의 원리만이 통용되는 야생 상태와 같은 사회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승자독식 야생사회로 가는 길

둘째, 약속과 관행을 무시하는 일방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한다면 아무리 그 상대가 약자라고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과격한 대응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승자도 패자도 많은 피를 흘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발전되고 선진화된 노사관계의 탄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지난 수십년간 발전해 온 노사관계를 인위적으로 수술하려는 외과적 처방은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단체협약 해지에 대해 1차, 2차, 3차로 이어지는 노동조합의 파업이, 또다시 사용자의 직장폐쇄로 이어 질 것이다. 노동자들은 다시 무노동무임금과 해고, 비정규직화의 악순환으로, 사용자는 생산일수 감소와 노사관리비용의 증가, 기업 이미지의 훼손이라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단협해지 증후군’이 추구하는 ‘80년대로의 회귀’가 이런 방향으로 현상화 될 수 있다는 것.

셋째, 공공부문은 민간부문을 견인한다는 일반공식에 따라보면, 오늘날 공공부문에서의 단협해지 증후군은 민간기업에 노동조합을 효율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대안으로 인식될 수 있다. 실제 최근 몇몇 민간기업도 단협해지 전술을 채택해 노동조합에 대해 단협해지를 통보했고, 노동조합은 총파업 전술을 포함한 모든 대책을 강구하며 대응하고 있다.

결국 단협해지의 흐름이 공공부문에 멈추지 않고 기업의 노동조합 길들이기 수단으로 인식될 경우 앞으로 벌어질 상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빠져들어가게 될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한국에서의 단체협약은 노사평등의 실현, 노동조건의 보호, 노동자들의 자기선택권 보장, 산업민주화, 사회공공성의 확장 등의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는 단협해지의 경향은 이러한 단체협약제도의 발전을 저해하고 나아가 원점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지금 공공기관이 선도하고 있는 단체협약 해지가 과연 미래 한국의 발전상에 걸맞는 선진적 노사관계를 이끌어 오지 못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정부는 이 문제를 보다 발본적으로 검토하고 그 대책을 내 놓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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