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이여, 사랑과 낭만을 허하라.
        2009년 12월 07일 09: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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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살기 힘들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가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전세계 여행자들의 바이블이라 불리우는 <론리 플래닛> 한국편을 보면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100% 정확하지 않거나, 어쩌면 우리만의 삶의 방법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올 수 있는 내용도 몇 군데 보이지만 내심 ‘찔려’ 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몇 개면 인용해 본다.(내용은 몇 군데에서 따로 발췌한 것이다.)

       
      

    "일하는 시간은 길고 지루하다. 주 5일제가 서서히 도입되고 있지만 자동차 정비공은 토요일 밤 9시까지 가게문을 열어놓고 중고등학생들은 새벽 2시까지 공부한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월 567,000인데 보통 근로자들은 16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외국인 영어강사는 숙소제공과 월 19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의사 변호사는 한 달에 600만원까지도 버는데 비해 패스트푸드점의 알바는 시간당 2,350원 밖에 받지 못한다."

    ‘현금 든 사과박스’가 전통인 나라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학생들은 밤새 공부한다. 초과 근무는 빈번하다. 복지가 없기에 삶은 경쟁적이고 스트레스 적이다. 건강보험과 주택은 당신이 일해야만 얻을 수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빈약하다는 것은 세금이 적다는 뜻이지만 뒤집어 보면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미군은 주한미군 규모를 1/4로 줄이고 있으며, 몇몇 기지는 폐쇄되거나 재배치되고 있다. 미군기지의 폐쇄나 이동은 도심에 넓은 땅을 내주게 되는데 이 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공원으로 만들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나라의 "현금 든 사과박스 전통"(the country’s tradition of apple boxes filled with cash gift)과 25층짜리 아파트에 대한 사람들의 애호로 봤을 때 이는 매우 비관적이다."

    외국인이 이렇게 평가한다더라. 반성하자, 라는 말은 사실 대통령이 노조의 합법 파업 때마다 ‘외국은 이런 거 없더라’ 하는 수준이니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이 나라가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

    하지만 적어도 서울과 인연을 맺고 서울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혹은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생각하면 내가 걷고 있는 이 도시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왜일까. ‘삼천리 금수강산’과 ‘뚜렷한 4계절’을 가진 이 나라가 원래 풍광이 아름답지 않아서?

    다시 론리 플래닛의 한국편을 보면 이에 대한 일종의 대답이 있다.

    "소름끼칠 정도의 고속도로와 소련 스타일의 콘크리트 아파트 빌딩이 끊임없이 도시전체에 확장되고 있으며, 끔찍하게 오염되어 영혼이나 정신이 스며들 틈이없다. 너무나 무미건조함으로 억눌려져 주민 전체가 알코올 중독이되어 간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하게 솟은 초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은 푸른 하늘을 가린다. 70~80년대 산업화 시절 ‘굴뚝이 많은 곳이 잘산다.’라는 세간의 말은 이제 폐기되었지만 초고층 빌딩이 있는 곳이 잘산다는 말은 유효할지 모른다.

    하지만 불뚝불뚝 솟아오른, 세계 유수의 디자이너가 설계했다는 반짝이는 건물들이 서로 ‘랜드마크’를 자처하며 들어선다고 우리의 삶이 윤택해 질 것이라는 환상 같은 건 버리는 게 좋을 듯하다. 결국 그 건물들은 우리를 ‘철거민’으로 내쫒을 확률만 높일 뿐이다.

    바람과 햇볕, 감수성은 ‘사치’

    옛 어른들은 집을 고를 땐 볕이 잘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을 우선으로 쳐주셨다. 하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볕 잘들고 바람 잘 드는 집은 ‘비싸다’라는 걸 모두 알기 때문에 포기되어야만 하는 가치이다. 서울에 몸 하나 누일 공간이라도 있으면 감사한 일이다. 누구나 그냥 누려도 좋을, 세상 천지 공짜인 바람과 햇볕은 ‘사치’가 되었다.

    뿐인가. 종일 집안에 있어 답답할 것 같은 아이와 함께 유모차라도 끌고 갈 푸른 공원은 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저 멀리 가야 하는 서울숲이고 북서울 꿈의 숲이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 간다는 아이를 현관에서 배웅할 때 걱정하는 것은 혹여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며, 뉴스에 학교 건물에 석면이 많다고 할 때마다, 불량 급식 사건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한국에서,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는 것은 단지 보육비의 문제와 사교육비의 문제를 넘어선다. 맨발로 뛰어놀 개울도, 연 이라도 날릴 공터, 보송보송 흙을 밝아도 될 동네 뒷산, 숨 쉬어도 괜찮은 맑은 하늘.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아주 기본적인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하나도 없다. 회색 공간에서 실내에서 학교에서 학원으로 햇볕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경쟁의 전쟁터로 내몰리는 아이들에게 ‘감수성’ 따위는 사치일지 모른다.

    지긋지긋 더운 한여름 넥타이를 매고, 뾰족구두와 정장을 입고 출근해 후끈한 도심 거리로 ‘오늘은 뭐 먹지?’라고 무표정하게 쏟아져 나오는 서울의 직장인들도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점심 먹고 산책할, 봄에 꽃 향기 맡을 공간하나 시간하나 주어지지 않는, 워커 홀릭이 미덕인 도시의 남녀에게 서울은 그리 로맨틱 하지 않다.

    서울이여, 사랑과 낭만을 허하라

    오세훈은 피맛골을 없애버렸다. 곡선을 직선으로 만드는 것이 그에게는 ‘보시기에 좋았’을지 몰라도 오래된 도시는 그 자체로 문화재라는 개념을 밥 말아먹은 천박함일 뿐이다. 북촌과 삼청동, 피맛골은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신식 건물을 지어 정비해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600년 서울의 역사가, 그리고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민초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는 그릇일 수 있다. 삶의 터전으로 일구어온 상점 주인들의 손때가, 그리고 골목을 누비던 청춘의 기억이 담겨있는 타임캡슐이다.

    탱크도 조립한다는 청계천의 상점들의 골목을, 황학동 곱창의 추억을, 까치 담배와 잔술이 남아있는 공간을 싹 밀어버린 전 시장의 대통령 당선은 그래서 더욱 암울하다. 뉴타운 비빔밥 정도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낭만적인 도시계획을 말하는 것이 마땅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서울이 보다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이 되길 바라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론리 플래닛 한국편에서 가장 맘에 들지 않았던 문장이 있다. “삶은 즐겁다기보다 진지한 것이다.(Life is serious rather than fun)”

    서울이여 내 아이에게 나의 연인에게 사랑을 허하라. 아이의 손을 잡고 연인의 손을 잡고 ‘두발’로 행복의 눈맞춤을 하며 걷을 수 있도록 낭만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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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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