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복지재정, 진짜 얼마일까?
        2009년 11월 23일 1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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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예산안 논의에서 항상 중심으로 떠오르는 주제가 복지지출이다. 여기서는 여야 모두 서민의 대변자로 등장한다.

    이명박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복지 비중이 역대 최고라며 자랑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년 복지지출 81조원은 정부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7.8%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왠지 찜찜하다. 우리나라 복지지출이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부 발표 수치를 믿기가 어렵다. 이번 기회에 복지재정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역대 최고’ 기록 갱신?

    역대 최고? 복지지출 역대 최고 타령은 올해에 이어 내년 정기국회, 내후년에도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지출 중 유독 복지지출이 다른 분야와 달리 법이나 제도에 따른 ‘자연증가분’을 가지고 있어 발생하는 현상이다.

    현재 이 자연증가분이 복지 지출의 대략 4%를 차지한다. 이 증가율은 이명박정부가 향후 5년간 설정한 정부총지출 평균증가율 4.2%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복지지출은 자연증가분만으로도 정부총지출 증가율을 따라잡는다. 따라서 정부가 자신의 재량범위 안에 있는 다른 복지 항목에서 물가상승분만큼만 지출을 늘려도 복지 증가율은 정부총지출 증가율보다 높아지고, 그 비중은 역대 최고가 된다.

    이렇게 이명박정부는 정부총지출 대비 복지지출 비중을 매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내는 ‘멋진’ 정부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선 어떤 반(反)복지정권이 등장해도 ‘역대 최고’를 기록할 수 있지만 말이다. 

    복지지출 예산안 54조원을 보고 깜짝 놀라다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할 점은 정부총지출 대비 수치 장난이 아니다. 과연 우리나라 복지지출이 절대적 수준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가 핵심 논점이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 민주노총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맡아 일했다. 매년 정기국회가 시작할 즈음에는 복지단체들과 함께 서울 강남터미널 근방 기획예산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면담투쟁을 벌이곤 했다. 복지예산을 이렇게 쥐꼬리만하게 올려서 어떻하냐고 항의하는 자리였다. 지금 기억으로 당시 우리나라 복지예산이 10조원 안팎이었다.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덕택에 보좌관으로 국회 업무를 시작했다. 노무현정부가 복지지출을 늘리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집권세력이 늘어놓는 홍보라고 여겨 귀기울지 않았다.

    그런데 2005년 가을 노무현정부가 제출한 다음해 예산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년 복지지출 규모가 54조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아니 정말 이렇게 많이 늘어난단 말인가!

    의문은 곧 풀렸다. 이 수치는 당시 노무현정부가 국가재정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이후 새롭게 도입한 프로그램예산제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 8회 글 “MB, 재정전략 남발이 가능한 이유”에서 설명하였듯이, 노무현정부는 2004년부터 중기재정운용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정책목표가 유사한 부처사업(activities)들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통합하여 편성하는 프로그램예산제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 결과 중앙 부처 약 9천개의 사업들이 행정, 국방, 교육, 사회복지 등 16개 분야로 헤쳐 모여 발표되었던 것이다.

    당시까지 필자는 복지지출액을 보건복지부 부처 예산과 동일시해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롭게 여러 부처의 복지관련사업들이 복지분야로 통합계산되어 발표되면서 복지지출이 크게 증가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노무현정부가 2004년 예산안부터 이러한 프로그램예산제를 적용하고 있었으나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재정경제위원회 보좌관이었던 필자가 이를 알게 된 것은 2005년 가을의 일이다. 갑자기 2006년 복지지출이 54조원이라는 발표를 접하고서 말이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지원금도 복지 지출

    우리나라에서 분야별 프로그램예산편성이 법적으로 공식화된 것은 국가재정법이 적용되는 2007년부터이다. 이 때부터 정부는 중기재정전략을 입안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중기전략을 구성하는 분야별 재정지출 편성을 작성해야 했다.

    현재 프로그램예산제에서 복지지출액은 전체 16개 분야 중에서 사회복지분야(8번)와 보건분야(9번)를 합쳐 계산된다. 여기에는 보건복지가족부의 보건복지, 국토해양부의 주거복지, 여성부의 여성복지, 노동부의 고용복지, 국방부의 군인복지 등이 모두 포함된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정부보전금도 모두 복지 지출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복지재정은 6개 부처의 일반회계 6개와 특별회계 5개, 9개 부처의 17개 기금으로 구성된다. 회계보따리로 따지면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을 합쳐 총 28개이고, 세부사업으로 보면 총 249개이다(2010년부터 90개의 복지사업의 통합되어 사업수가 159개로 조정된다). 

    정부 발표 복지지출 수치,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정부 부처별 사업들이 프로그램예산에 따라 적절하게 자신의 ‘분야’로 편성되었는지에 대해선 검증이 필요하다. 만약 복지로 보기 어려운 사업임에도 정부 관료가 이를 복지분야로 배치하면 이 사업은 복지지출로 계산된다. 복지재정 규모 부풀리기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설마 그럴 수 있을까? 실제 그렇다.

       
      

    <표 1>은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복지지출 내역이다.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 74.6조였던 복지지출이 내년에 81.0조원으로 8.6% 증가한다(올해 추경예산 80.4조원을 기준으로 보면 내년 복지지출은 실제로 0.7% 증가할 뿐이다). 부문별로 보면, 공적연금 지출이 26조원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주택복지 지출이다.

    과연 정부가 복지지출이라고 설정한 것들이 진짜 모두 복지사업들일까? 워낙 ‘정부를 믿지 못하는 필자’ 성격 상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올해 249개 복지사업 모두를 하나씩 검증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능력도 자료도 없다. 그래도 큰 덩어리 하나는 발견했다. 바로 주택부문 복지지출이다. 

    주택융자금 12조원은 복지지출에서 제외해야

    <표 2>를 보면 올해 복지지출 중 주택부문 지출이 15조 3,896억이다(추경예산 기준). 전체 복지지출 80.4조원의 약 20%에 이르는 금액이다.

       
      

    그런데 주택복지로 포함된 거의 대부분의 사업들이 국민임대주택 건설 융자, 주택구입자금 및 전세자금 융자 등 국민주택기금의 융자사업이다. 융자금은 주거자나 건설사업자에게 빌려주는 돈으로 이후 회수되는 재정이다. 상식적으로 융자금 전체를 복지지출로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굳이 이것을 복지지출에 포함하고 싶다면 융자액 전체가 아니라 융자금 이자와 시장금리 차액만을 계산하는 것이 옳다.

    주택융자금을 복지지출로 포함시킨 것은 프로그램예산제를 처음 도입한 노무현정부에서 시작되었다. 주택융자 지출 전체를 사회복지 재정에 포함시키는 정부의 예산분류방식은 사회복지 지출에 대한 국제기준에 비추어 볼 때도 부적절하다

    OECD 기준에 의하면, 사회복지지출(social expenditure)이란 “가구 또는 개인이 사회적 위험에 처해 있는 동안 공적제도에 의하여 제공되는 사회적 급여(social benefit) 및 재정적 지원(financial contributions)"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를 경우, 사회복지 지출에 포함되는 주거(housing)란 주거비용과 관련된 임대비용 보조금 및 기타 현물급여로 정의되며, 우리나라 세출구조에서 보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거급여’가 대표적인 예이다.

    필자가 주택부문 사업들을 꼼꼼히 살펴볼 수는 없었으나 최소한 올해 국민주택기금 융자금 12.1조원은 복지지출 계산에서 제외되는 것이 옳다. 이러할 경우, 올해 복지지출 규모는 추경예산기준으로 80.4조원이 아니라 68.3조원이다.

    건강보험 급여지출은 복지재정으로 포함되어야

    그런데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 이번엔 반대의 경우이다. 현재 국가재정체계가 지닌 구조적 틈새로 인해 실제 복지재정 계산에서 누락된 공적 사업이 있다. 바로 건강보험 급여지출이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을 토대로 구성된다. 사회보험 중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은 모두 기금 형식의 재정구조를 가지고 있어 정부총지출에 포함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건강보험만 아직까지 기금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는 공공기관의 일반회계로 관리되고 있다. 처음부터 중앙집중적으로 도입된 다른 사회보험과 달리 건강보험은 지역, 직장 조합주의방식으로 도입되어 발전해 온 탓에 아직 국가재정법 상 기금으로 전환하는 절차를 밟지 못한 탓이다. 국가재정 회계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OECD 국제기준에 맞추어 건강보험 지출액을 복지재정 안으로 포함시키는 게 옳다. 조속히 건강보험 재정을 기금화하여 정부총지출로 다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경우 우리나라 복지지출 규모는 지금보다 24.4조원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건강보험공단의 사업지출액이 30.7조원인데, 이 중 이미 정부총지출에 포함되어 계산되는 건강보험 국고지원금과 건강증진기금(담배부담금) 전입분 등 6.3조원을 제외한 나머지 24.4조원이 새로 복지재정으로 대우되어야 한다.

    재정지출 부족분 110조원은 복지지출 부족분과 동일

    이제 올해 우리나라 복지지출 규모를 정리 추정해보자. 2009년 복지지출 80.4조원에 주택부문 융자금 12.1조원을 제외하고 여기에 건강보험 지출 24.4조원을 더하면 92.7조원이다.

    물론 다른 복지사업들의 적절성을 더 검토해야 하기에 이 금액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업에서 큰 규모의 변수가 없을 것이라 가정하면, 올해 우리나라 복지지출 규모는 OECD 기준으로 대략 90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올해 GDP가 약 1천조원을 약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복지지출은 GDP 대비 비중으로 약 9%가 된다.

    지금 OECD 회원국 평균 복지지출 규모가 대략 GDP 20% 수준이다. 우리나라 복지지출 규모는 OECD 국가들에 비해 GDP 대비 11%포인트, 금액으로 약 110조원이 부족하다. 지금 ‘역대 최고’ 운운할 때가 아니다.

    한편 올해 우리나라 국가재정 규모는 GDP 33.8%로 OECD 평균 44.8%에 비해 딱 11.0% 포인트 낮다. 국가재정 지출 역시 OECD 회원국들에 비해 110조원 부족하다. 그렇다. 우리나라 국가재정 부족분 110조원은 다름아닌 복지지출 부족분인 것이다.

    복지지출 역대최고? GDP 대비 비중이 낮아질 위험

    그래도 우리나라 복지지출 비중이 과거에 비해 더디지만 증가해 온 것은 사실이다. OECD 기준 우리나라 복지지출 비중은 1990년대 3%대, 2000년 초반 5%대, 2005년 6.9%를 기록했고, 필자의 추정으로 올해 9%에 이르렀다. 아직도 OECD 국가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형식적이나마 복지체계가 갖추어지면서 제도적 자연증가분이 일정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덕택이다.

    앞으로는 어떨까? 복지제도의 자연증가분, 인구고령화, 보육의 중요성 등을 감안하면 복지지출이 크게 증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앞으로 매년 복지지출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려 놓을 이명박정부가 있지 않은가! 정말 그렇게 진행될까?

    현실은 암울하다. 이명박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중기재정운용계획안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의 평균 명목경제성장율은 7.3%이다. 그런데 복지지출 증가율은 6.8%로 경제성장율 아래로 설정했다. 재정지출 통제 방침에 따라 정부총지출 평균증가율은 이 보다 더 낮은 4.2%이다. 따라서 이명박정부 말대로 복지지출은 정부총지출 대비로는 ‘역대 최고’를 기록하겠지만, GDP 대비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아직도 갈길 먼 우리나라 복지지출, 여전히 더딘 걸음이지만 조금씩이라도 증가해 왔는데, 결국 명박산성을 만나 뒷걸음쳐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OECD 회원국 값을 하려면 최소한 지금 당장 GDP 11% 포인트, 금액으로 110조원을 더 늘려야 하는데 말이다. 진보운동의 어깨가 무겁다. (다음 글에서 ‘복지재정 수치가 6개인 이유’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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