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시민, 정신-경제적 고통 진행형
    "순수한 맘으로 싸웠는데, 너무 비참"
        2009년 11월 22일 08: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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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간혹 열리는 촛불집회에 가보면, ‘촛불시민’들은 보이지 않고 집회를 주최한 단체들의 관계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를 두고 자발적 촛불시민들의 ‘실종’을 한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의 밀어붙이기 식 ‘촛불 탄압’이 효과를 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촛불시민이 사라진 촛불광장?  

    지난 5월초 촛불문화제 1주년을 맞아, 학계를 중심으로 촛불운동의 성과와 과제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벌여졌고 ‘촛불시즌2’를 준비하기 위한 제안들도 제시되었다. 하지만 광장과 거리를 누볐던 촛불시민들의 입장이 아닌 ‘관찰자’의 시각에서 제기된 의제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듯했다. 

       
      ▲지난해 5월 청계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히고 있는 시민들 (사진=손기영 기자) 

    결국 촛불운동이 촛불시민들의 일상에 어떠한 영향,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조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또 지나친 ‘낙관론’에 편승한 나머지 촛불운동이 남긴 아픔과 상처를 돌아보려는 노력도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사람들의 관심권 밖에 있는, 촛불 참여로 인해 아직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입을 통해 ‘촛불’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관심권 밖에 있는 촛불 피해자들

    촛불시민들 중에는 촛불집회 참가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많았고, 대부분 이러한 문제들을 ‘개인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또 “순수한 마음으로 이명박 정권과 싸웠는데, 지금 내 모습을 보니까 비참한 심정”이라며 사회적 무관심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크게 △우발적인 행동 및 신경쇠약 등 정신적 장애 △학교 직장 등에서 부적격자로 낙인 및 퇴출 △법적문제에 대한 지식 및 금전적 여력 부족 등의 어려움 등을 겪고 있었다. 특히 지난 5월 초 명동에서 벌어진 ‘투석전’에 참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오 아무개 씨 사연은 촛불운동이 남긴 상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고등학교 여자 축구선수인 오 씨의 딸은 지난해 6월경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했고,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한동안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딸의 모습을 지켜 본 오 씨는 정신적으로 충격에 빠지게 되었으며 경찰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주변 지인들은 전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방패 날을 세우고 있는 전경들. (사진=손기영 기자) 

    이 때부터 평범했던 오 씨의 일상은 달리지기 시작했으며, 그는 지난 5월초 촛불 1주년을 맞아 열린 집회에 참여해 강제진압에 나선 전경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등 강도높은 저항으로 억울한 감정을 표출한다. 그는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뒤, 지난 10월말 출소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오 씨는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경찰의 진압으로 애지중지 키운 제 딸이 다친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 그 사건이 벌어진 이후, 학생들을 강제진압을 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면, 가장 먼저 달려가 싸웠다”며 “당시 받은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 행동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데, 법률적인 내용도 잘 모르고 제 형편상 변호사 비용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며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구치소에 두 달간 들어가 있어서 손님도 끊기는 등 사업이 무너졌다. 그래서 수입도 예전 같지 않다”고 밝혔다.

    조직에서 ‘또라이’ 취급 받아

    모 대학 간호학과 여학생인 A씨는 촛불집회에 자주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교 동아리인 검도부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정신적인 충격을 겪었다. 주변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검도부원들은 ‘촛불집회 때문에 동아리 활동에 불성실해졌다’는 요지의 글을 수 차례 학교 인터넷게시판에 올리면서 그를 괴롭혔다.

    이후 그는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대하는 검도부원들과 주변 친구들의 태도 때문에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으며 검도부에서 쫓겨나는 등의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몇 차례 그와 만난 지인은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주변 학생들이 그를 ‘또라이’로 취급을 정도였다”며 “당시 검도부에는 의대생들이 많았는데 특권의식 때문인지 촛불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불순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전했다. 

       
      ▲경찰버스 위에 오른 촛불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한 촛불 시민모임의 회원인 B씨는 상습시위범으로 몰려 올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경찰로부터 집중적인 조사를 받고 있다. 현재 시민모임 측은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며, "경찰이 ‘표적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안증세에 정신과 치료도

    주변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B씨는 집중적인 조사에 시달리며, 불안 신경쇠약 등의 증상을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그는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지금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 몇 개월 동안 정신적인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며 “더 이상 전화상으로 이야기하는 게 불안하고 힘들다”고 말했다. 

    취재 중에 만난 촛불시민들은 “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은 ‘촛불 지원’에 인색하다”고 지적하며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촛불시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촛불법률지원센터 △촛불(정신)상담센터 △촛불실업기금 등의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백은종 ‘안티 이명박’ 대표(닉네임 초심)는 “촛불시민들은 어떠한 조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당했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며 “시민단체나 정당들은 자신들의 구성원들은 챙겼지만, 촛불시민들을 도와주는 데는 인색한 편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부상자 치료비, 벌금 납부를 위해 ‘안티 이명박’에서 국민성금을 모금했지만 정당이나 노조 시민단체들의 도움은 없었다. 야당 의원들에게 ‘촛불 구속자’들에 대한 면회를 여러 차례 부탁했지만, 이를 받아준 적은 없었다”며 “이들은 촛불을 이용해 조직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촛불법률지원센터 등 필요

       
      ▲서울 태평로의 촛불 물결 (사진=손기영 기자) 

    백 대표는 “촛불집회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지금이라도 사회단체, 노조, 정당 등이 촛불시민들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선 재판중인 분을 위한 ‘촛불법률지원센터’가 가장 시급하다. 얼마 전에 연행된 분은 금전적 문제로 변호사조차 선임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촛불시민들 중에는 생계까지 제쳐두고 ‘촛불항쟁’에 전념했던 분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직장을 잃거나 사업을 접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와 함께 “만약 ‘촛불실업기금’이 마련된다면 이분들이 마음 놓고 활동을 할 수 있어, 지금보다 더 큰 ‘촛불’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시민 안누리 씨는 “얼마 전 아는 촛불시민의 집에 압수수색이 있었고, 당시의 충격으로 그분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뜻이 있는 분들이 ‘촛불상담센터’을 만들어, 촛불시민들이 촛불집회와 ‘촛불 탄압’으로 받은 정신적 충격을 치유하고, 어려움을 함께 이야기하는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말로만 촛불운동 지지하면 안돼”

    촛불시민 김유신 씨는 “촛불시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우선 진보정당이나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이라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구체적 대안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며 “물론 위로나 격려도 필요하지만, ‘물질적 지원’ 등 실질적으로 촛불시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들도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못한 대다수 촛불시민들에게는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부과되는 벌금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정당 시민단체들이 ‘말’로만 촛불운동을 지지할 게 아니라, 촛불시민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사회적 품앗이’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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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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