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정치 발언이 아니라 예술인의 양심"
    2009년 11월 20일 02:45 오후

Print Friendly
땅이 사람을 잡아먹는 곳, 용산에서 우리 이웃들이 스러져간 지 300일이 넘었다. 죽은 이들을 장례지내지 못한 지도 300일이 넘었다.

용산 300일과 함께 해 온 문학예술인들이 못된 정부의 ‘기다리는 능력’에 맞서 ‘기억하는 힘’, ‘연대하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용산 참사 헌정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11월 말경 실천문학사(작가선언 6.9 엮음)에서 출간될 예정인 그 글들 중 일부를 네 차례로 나누어 전한다. – 편집자 주

                                                 * * *

공선옥, 권여선, 권현형, 김경인, 김미월, 김종도, 김해자, 나희덕, 노순택, 도종환
문동만, 박수정, 박시하, 박후기, 백무산, 서영식, 손세실리아, 손택수, 송경동, 신용목, 신형철
③ 안현미, 양윤의, 염무웅, 오창은, 윤예영, 윤이형, 은승완, 이동수, 이만교, 이민하, 이상실, 이선우, 이시영, 이영광, 이윤엽, 이종수, 이진희
④ 정희성, 조약골, 지요하, 진은영, 차미령, 최창근, 한우진, 한지혜, 함돈균, 황규관

   
  ▲ 오열하고 있는 고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 (사진=손기영 기자)

한 번 태어났지만 돈이 없으면 두 번도 세 번도 죽어야 하는 세상
저녁을 훔친 자들만의 장밋빛 청사진
뉴타운천국
– 안현미(시인) <뉴타운 천국> 중에서

2009년 8월 11일. 용산참사 7개월째. 현장에 마련된 남일당 근처에서 <69작가 1인 시위>를 하는 날, 강의를 들었던 두 명의 학생들이 그곳을 찾아 왔다. 학생들은 우리 사회가 감추고 있는 ‘인권’의 현실을 보았고, 현실적 ‘자유’의 무력함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곳에는 도로교통법이 완비되어 있고, 경력대비가 있으며, 집시법이 있으나, 소통의 통로가 없고, 대화를 위한 시도가 없으며, 약자를 위한 기본권이 없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학생들에게 보여줄 희망이 남아 있지 않았다.
– 양윤의(문학평론가) <당신의 외투를 벗어 망루에 돌려 달라> 중에서

우리 문학인, 예술가들은 생래적으로 고도의 민감성을 존재의 특성으로 합니다. 우리는 세속정치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고고함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인간성의 기반을 훼손하는 불의와 폭력에는 온몸으로 저항하도록 설계된 유전자를 가진 존재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민중의 고통에 괴로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문학인, 예술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외치는 것은 정치적 구호의 복창이 아니라 문학⦁예술인으로서의 양심의 발로입니다. 특검에 의해서든 국정조사에 의해서든 용산참사의 진상을 철저히 재조사하라, 여섯 분의 죽음에 대해 우선적으로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사과하고, 무리한 진압을 명령한 지휘관을 처벌하라, 빈민⦁서민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기득권자 위주의 개발정책을 중단하라,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하며, 더 완전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 염무웅(문학평론가) <참담한 심정으로> 중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두 명의 외국인은 시위를 하고 있는 내게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하고 물었다. 나는 ‘정부에 의해 학살이 자행됐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라고 다시 질문했다.

나는 순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릴레이 시위에 참여한 8월 3일은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196일째였고, 곧 고통의 나날이 200일에 접어드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국 민주주의가 짓밟힌 지 200여일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우리 모두는 남일당 아래에서 난쟁이가 되어 왜소해지고 있었다.
– 오창은(문학평론가) <용산 4지구 안에서 우린 모두 난쟁이> 중에서

모두들 은평뉴타운에 환호할 때, 친환경마을,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던 한양주택의 주민들은 삶의 터를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토지보상금을 받고 흩어졌다. 10년 전 가수용단지를 얻어냈던 무악동 주민들이나, 토지보상금을 받고 각자의 길로 떠난 한양주택 주민들은 적어도 지금 용산의 사람들보다는 행복할지 모른다. 그들은 어찌 되었든 생명까지 철거당하지는 않았으니.

… 우리 모두 꽝꽝 얼어붙은 주검 옆에서 고통받고, 부끄러워하며, 오래 동안 아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우리가 내릴 역, 또 그 다음 역은 언제나 용산참사역일 것이다.
– 윤예영(시인)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중에서

9월 1일, 용산참사 공판에 친구들과 함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었다. 대체 무슨 얘기들이 오가는지 한 번 구경이나 해보고 싶었다. 법정에는 방청객의 얼굴을 잡는 채증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공간에 발을 들여놓아본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 그 카메라의 존재는 몹시 불쾌했고, 위협이 되었다.

나는 이 재판을 중립적으로 지켜볼 나의 권리가 침해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변호인단이 공석인 상황이었다. 자신들 이외에는 자신을 변호해줄 사람이 문자 그대로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법이라는 거대한 존재, 철벽같은 국가권력을 상대로 “나의 살아갈 권리, 말할 권리, 부당하게 처벌받지 않을 권리를 존중해주십시오” 하고 직접 말을 해야 하는 개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어떤 식으로 공기를 울리는지, 나는 똑똑히 들었다.

변호인이 없어도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재판장은 말했다. “그렇다면 돌아앉게 해주십시오. 나는 변호인이 없습니다… 나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나지막하게 떨리면서 법정에 퍼지던 피고인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 권력이 한쪽의 증거만 취사선택해 제시하는 부당한 법정에 한 인간이 피고인으로 계속 서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나라가 있다. 나는 그 나라의 국민이었다. 이제는 법이라는 것의 숭고함에 대한 환상도, 가슴속에 남아 있던 정의에 대한 일말의 믿음도, 한낱 추억이 되었다.
– 윤이형(소설가) <정의가 우리와 함께 하기를> 중에서

“내가 지하하고 일층서 삼층까지 인테리어 하는 데 일 억이 들었다. 권리금은 몇 억이고. 근데 사천만 원 받고 나가란다.”
“허, 날강도가 따로 없네요.”
“말도 마세요. 저는 권리금 사천에 보증금 삼천이었는데, 천삼백만 원 준다대요. 조합 가서 그랬어요. 그 돈으로 용역이나 많이 사라고, 나는 투쟁이나 하겠다고.”

“저는 도서대여점하는데요, 한 번 둘러보더니 책들이니까 차에 실고 나르면 되겄네. 그 걸로 끝이에요. 철거용역들이 얼마나 협박을 해대는지 밤에 다니기도 무서워요. 지난 번에는 집에서 안 나간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도록 패는데 경찰들은 뻔히 보고만 있더라구요.”
“우리 같은 세입자는 사람도 아닌께. 임시상가도 안 마련해주고 그 돈으로 어디 가서 장사를 하란 말이여?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순 없응께.”
– 은승완(소설가) <내 이름은 용산 남일당입니다> 중에서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이 끝나고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제 생각은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재개발 공사를 하기 위해 둘러쌓아 놓은 임시벽에 평화를 상징하는 스티로폼 꽃들을 붙이는 놀이를 하는 순간, 근처에서 하이에나처럼 노려보던 사람들이 나타나 훼방을 놨습니다. 용역깡패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벽에 붙여놓은 꽃들을 마구 떼어내고, 그 벽이 자신들의 사유재산이라며 악다구니를 놓았습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따로 공부를 한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사유재산을 마구 뜯어냈습니다. 사진을 찍는 기자들의 카메라도 막고, 빼앗고 상황이 험악해집니다. 저는 얼른 스케치북을 꺼내 그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 이동수(만화가) <용산에 가면 시대와 예술이 보인다> 중에서

제가
혹여 어려운 이웃과
부당한 일에 그만 눈을 감을 때,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깨어나고 각성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상상하고
마침내 즐거이 살아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억압하는, 자신이 자신에게
용역 깡패가 되는 짓이라고
꾸짖어 주세요.
– 이만교(소설가) <이상림 할아버지께> 중에서

그의 고질적인 난독증과 과대망상은 이 땅을 막무가내로 온갖 실험 무대로 만들고 인권 후진국으로 전락시켰다. 역대 정부와 달리 자신의 이름을 명칭으로 내건 정부답게 그는 지금 그만의 왕국, 그들만의 천국을 건설 중인 것일까. 방해가 된다면 무엇이든 누구든 기이하게도 금세 감금되거나 사라졌다.

그의 안중에는 도무지 대화란 게 없으며 대중이란 게 없다. 그 덕분에 이 땅은 심각한 애착장애로 인해 기형적으로 변형되고 있다. 겨울에서 멈춘 발육지체. 봄과 여름과 가을은 흔적도 없이 지나간다. 어쩌면 용산의 참극은 이 땅에 예정된 수많은 각본들 너머로 이미 소각된 엔지 필름에 불과할지 모른다. 무고한 죽음들이 등장하는 그 필름을 불사른 공권력과 그 모든 걸 연출한 정부, 양자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들은 서로 시치미 떼고 있지만 둘 중 적어도 하나는 살인자다.
– 이민하(시인) <죽은 새들의 행진> 중에서

나는 두어 시간 전에 지하철을 타고 용산역에 내려서 2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새로 만든 역사가 거대함을 느꼈습니다. 역사를 벗어나려면 수십 개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했습니다. 나는 회색빛 대리석의 계간을 밟으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중간쯤 내려갔을까요. 오른쪽 한 켠에는 계단을 따라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계단은 아무도 밟지 않았습니다. 대신 물결에 젖은 계단에는 대여섯 마리의 비둘기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거나 계단 이음새에 고여진 물을 부리로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 나는 한참 동안이나, 발을 담그고 몸 에 물을 들이키는 비둘기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비둘기도 목을 축일 곳이 있는데…’
– 이상실(소설가) <빈소 앞에서> 중에서

“대체로 법률이니 권리니 하는 따위는/(중략)/우리가 타고난 권리에 대해선, 유감스럽게도 한 번도 문제 삼는 일이 없”(파우스트, 1972~1979행)으며, 국가마저 자본에 복무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조국이 있는가, 주권이 있는가. 우리는 이중으로 추방된 자이며, 무분별한 욕망의 노예일 뿐이다. 추석이 지났다. 아비를 잃고 조국을 빼앗긴 자들, 이들에게 또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이오카스테가 말한다. 추방된 자들은 희망을 먹고 산다고 하더구나. 폴뤼네이케스가 답한다. 희망의 눈길은 따뜻하지만 걸음은 느리지요. 그 느린 걸음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가올 저 시간이 희망의 허망함 대신 승리를 드러내게 할 수 있을까.

… 크레온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제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주었던 안티고네의 입을 빌려 말해본다. 우리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려고 태어났다.
– 이선우(문학평론가) <용산, 추방당한 자들의 나라> 중에서

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 20일 오전 5시 30분, 한강로 일대 5차선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경찰 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 이시영(시인)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중에서

용산 참사 현장에서 돌아오던 유월 어느 날 밤 포장마차에 앉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국민이 최고 권력자를 짐승에 빗대어 부르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것도 궁기와 해악의 대명사인 설치류의 짐승으로. 뉴스는,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잡혀가 고문당하는 상황이 아니므로 지금은 독재 시대가 아니’라는 모 여당의원의 발언을 전하고 있었다. 세상에, 고문을 해야 독재라니.
– 이영광(시인) <말하라, 어서 말하라> 중에서

가난한 행복은 행복이 아니야, 개 무시하며 저 높은 꼭대기에서 불 켜놓고 사는 이상한 인간들이 잘못되었다. 그들이 떨어뜨리는 콩고물이나 쪼아 먹으면서, 그 콩고물에 전력을 다하는 놈들이 잘못되었다. 그들의 높은 벽에 걸린 행복이 오로지 행복이라 믿으며 그쪽만으로 열심히 할보하는 길거리 대다수의 눈들이 잘못되었다.

그런 것들이 간신히 쌓은 우리의 행복을 철거를 한다. 간신히 발견한 우리의 행복을 또 뭉개 버린다. 짓밟힌 행복 위에 무식한 공구리를 치고 “없는 것들은 오지 마. 무식한 것들은 오지 마.”한다. 근접할 수 없게 그들이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개발이고, 재차 확인사살하곤 더 높이 달아나는 것이 재개발 아닌가.
– 이윤엽(판화가) <용산에서 우리가 철거당하고 있다> 중에서

먼 남미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가 ‘시는 슬프고 음악적인 곱사등이란 걸/저 멀리/경계에서 경계까지의 정오의 발자국을/시가 알려준다는 걸'(「불완전한 탄생」>중에서) 하고 ‘난 신이 아파하던 날 태어났어’ 하고 말했던 것처럼 용산의 고통 속에서 내 시 또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이종수(시인) <쥐덫이 작품이 되는 세상> 중에서

용산참사를 빨리 잊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이렇게 참사가 일어난 날짜를, 희생된 분들의 이름을, 그토록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공권력이 벌이는 무자비하고도 치사한 짓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 이진희(시인) <남일당 미사> 중에서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