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파'여, 이명박을 악마화하지 말라
    2009년 11월 06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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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그와 함께 일했던 정치인들과 일군의 학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 발전시키는 정책연구서를 발간하기로 하고, 현재 그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연말과 내년 초까지 모두 세 권의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연구책자 시리즈의 제목은 『진보의 미래』다. ‘진보’나 ‘보수’라는 것이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어떤 정치세력이 ‘진보’나 ‘보수’를 자처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노무현 정권과 그 전신이라 할 김대중 정권을 ‘진보’라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구분법에 따르자면 한국의 민주당들은 전통적이고 완고한 보수정당일 뿐더러,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구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사회정책 역시 ‘진보’보다는 ‘보수’이며, 유럽적 기준으로 보면 ‘극보수’에 가깝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진지하게, 스스로를 ‘진보’라 규정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김 정권과 노 정권은 국민을 향해서 자신들이 보수 전통 위에 서있음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간혹 ‘진보’인 척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는데, 이는 주로 극우집단과의 공방에서 오가는 정치적 수사에 한해서였다.

따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지’들이 ‘진보의 미래’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 나온 것에 대해서는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상대적인 개념이라 해도, 정책으로 나타난 그들의 10년을 ‘진보’로 부르기에는 부적합한 곳이 많다.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적은 명찰을 패용한다고 진보가 되는 것은 아닐 터, 구체적 비전과 정책을 놓고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진보신당 정책연구소 ‘미래상상’과 <레디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지’들이 발간할 예정인 『진보의 미래』에 대당되는 『미래의 진보』를 기획하고, 12월 초순 경에 발간하기로 한 배경이다.

『미래의 진보』는 ‘진보’와 ‘보수’에 대한 올바른 정의, 노무현 정부가 펼친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 그리고 ‘짝퉁’이 아닌 진짜 진보의 비전과 정책,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토론을 담으려 노력했다. 아래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의 글은 20여 꼭지로 구성될『미래의 진보』의 일부이며, <레디앙> 지면에 3회로 나누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4.

김대중 ․ 노무현 정권 10년을 지배했던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였다. 시장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초대되면서 신자유주의 역시 별다른 저항 없이, 아니 기립 박수 속에서 빠르고 깊게 이 사회에 퍼져나갔다. 시장은 무적이었다. 국가는 시장의 자율성이 경쟁력과 효율성, 경제개혁, 경제성장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을 보증하는 제도에 불과했다.

이런 시장 만능의 사고는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의 부활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는 다시 2만 달러 달성을 위해 내달리는 급행 열차로 변모했고, 정경유착 ․ 부정부패 ․ 불투명한 경영의 세습 재벌은 일정한 시련기를 거쳐 더 강력한 괴물로 재탄생했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만 해도 사회적 과제로 인식되던 재벌 개혁은 10년 사이 매우 불온한 구호로 변해 버릴 정도로 재벌에 대한 도전은 상상도 못할 일이 되었다.

이렇게 10년을 통과한 한국사회는 사회적 자원의 배분을 전적으로 시장에 맡기는 정글 사회로 변화했다.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비정규직은 급증하는데 비해 공공성은 약화되고, 사회안전망은 제자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서민들은 시장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고 사회 개혁 과제들은 표류하고 민주화를 통해 가난한 자, 서민들의 삶을 책임지겠다던 약속들은 관료와 재벌에 의존한 국가경영으로 파기되었다.

정글 사회로 변한 10년

나아가 더 강력해진 관료와 재벌은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새로운 기득권 동맹을 구축, 든든한 권력 배경까지 갖게 되었다. 이로써 권위주의 체제의 불안정한 권력에 기반했던 보수세력의 위태롭던 기득권은 신자유주의 노선의 김대중 ․ 노무현 정권에 의해 안정화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도, 동반성장도 없었으며,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지도 않았으나 불평등은 심화되고, 중산층은 해체되고, 저소득층은 추락하고, 보수주의 헤게모니는 강화되었다. 이게 민주화 20년의 열정과 헌신, 역사 발전에 대한 믿음의 대가였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세력은 가난한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시대가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의 그림자 역시 길기만 하다

10년 집권의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사회, 다른 삶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해 놓음으로써 그 실패가 10년으로만 그치지 않게 했다는 점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쓸 수 있는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겨우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다면, 새로운 사회를 향한 행진은 이제 헛된 꿈이거나 이상주의자의 공상이 아닌가 하는 비관이 고개를 들게 한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삶을 바꿀 정치는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깊은 비관론의 유포는 사회의 진보를 향한 발걸음을 더욱 무겁고 힘들게 했다.

이것이 10년 집권이 남긴 뚜렷한 족적이다. 10년 집권세력이 본질적으로 사회 개혁을 할 수 없었던 자유주의적 정치세력으로서, 다수 서민의 정치적 대표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 때 표방한 가치와 구호들 때문에 진보적 변화는 순진한 발상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역사적 후퇴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자기 어깨 위에 놓여진 역사적 과제를 벗어던진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한 일이다. 권위주의 유산을 물려받은 정권이 아니라 자유주의 정권, 개혁과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정권이 받은 성적표가 이런 수준이라면, 과거 재야 원로들이 다시 모여 그 정권의 후계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절박한 호소를 한들 세상은 차가운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5.

김대중 ․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은 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불러왔다. 역대 대통령선거 사상 가장 많은 시민들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스스로를 퇴출시켰고, 그 때문에 이명박 후보가 상대 후보와 가장 큰 표 차이로 당선될 수 있다. 시민들은 정치참여 거부를 통해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고 그 결과, 노무현 정권은 이명박 정권과 민주당을 낳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이명박 정권과 민주당은 현실 정치에서 대립하고 있지만, 노무현 정권이라는 하나의 모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쌍생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10년이 낳은 쌍생아 이명박 정권과 민주당이 빚어내는 암담한 한국 정치의 현실을 뛰어 넘고자 한다면, 이 둘을 모두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명박과 민주당은 노무현 정권의 쌍생아

그러나 요즘 오직 하나의 적이 문제라는 논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 것은 이명박 정권을 파시즘, 독재, 반민주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기만 하면 한국 민주주의 과제가 일거에 해결된 듯 주장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악마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명박 정권은 반민주세력이요, 그런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은 민주세력이라는 민주 대 반민주의 선악 대결 구도를 당연시하고,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의 대동단결을 요구하는 강력한 주술이 되어 반이명박 민주 대연합론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이용되고 있다.

과연, 민주당과 이명박 정권은 각각 민주세력과 반민주세력을 대표하며 선악의 대결을 하며 대치하는 자리에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민주당을 낳은 김대중 ․ 노무현 정권은 이명박 정권과는 화해할 수 없는 상호 배타적인 노선을 추구했는가. 이미 살펴 보았듯이 김대중 ․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은 모두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종했다.

시장에 의한 자원 배분이 가장 바람직하고 정확하다고 믿는 시장주의 사고에서 두 정권의 차이는 별로 없다. 두 정권은 성장을 통한 분배 논리, 2만 달러 시대, 747공약 등 성장 목표 달성을 국가적 과제로 제시했다. 성장 지상주의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 2007년 당선인 시절의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한 ․ 미 자유무역협정, 금융 자유화 같은 대외적 전면 개방 정책도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법, 아파트 분양가 공개 반대, 규제 완화 등 시민의 이익과 충돌하는 기업이익을 우선시 한다는 점도 차별성이 없다. 사회적 양극화를 발생시키고 악화시켰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는 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구속노동자 1위, 노무현 정권

사회적으로 갈등하는 현안을 설득과 대화, 합의를 통해서 보다 법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공권력을 동원해 해결해왔다는 사실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노무현 정권도 부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사건, 노사분쟁 현장 공권력 투입과 같은 물리적 해결을 선호했고, 이명박 정권 또한 마찬가지이다.

노동통제 및 노동배제에 관해서도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주요 생산자 집단인 노동자와 정부의 협력을 통해 복지, 생산성 향상, 임금 문제 뿐 아니라 사회갈등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가지 않고, 노사간 힘의 불균형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노동자의 요구와 이익을 억눌렀다는 점은 전혀 다르지 않다.

노동문제로 구속된 노동자 수의 비교는 매우 시사적이다. 구속노동자 후원회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 출범 1년이 넘은 2009년 6월 현재 구속노동자는 225명이다. 김영삼 정권 632명, 김대중 정권 892명, 노무현 정권 1052명이었다. 숫자만으로 차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노무현 정권 때 비정규직 노동자 분신을 포함한 노동자의 항의 자살이 잇달았으나 노대통령은 이들의 죽음에 대해 “분신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는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도 철도 민영화 등 민영화를 추진했으며 철도청 노조에 75억 원 손해 배상 가압류를 제기하며 노동자를 압박했다.

물론 10년 정권의 정책 가운데 이명박 정권과 대립되는 것도 많았다. 이명박 정권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및 기능축소, 공공기관장 임기제 무력화 등 민주적 제도를 일정 부분 훼손하고 검경의 통치 도구화 등 퇴행적 통치방식을 도입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 후퇴’라는 평가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논란의 여지는 있다.

집권당이 정권을 잃을 가능성, 야당이 집권할 가능성을 가진 제도라는 최소한의 정의를 적용할 경우 두 번의 정권교체는 민주주의 공고화를 증명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질적 측면, 즉 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제도, 다수 서민의 사회경제적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은 분명하다.

두 정권 본질적 차이 없다

신자유주의 심화의 수준에서도 차이를 찾자면 찾을 수 있다. 10년 정권은 신자유주의를 본격 도입하고 확산시켰다면, 이명박 정권은 신자유주의 심화 속도를 높였다고 할 수 있다. 10년 정권은 이 사회가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저항과 반발 없이 신자유주의를 빠르게 흡수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한 반면, 이명박 정권은 신자유주의 모순이 부분적으로 폭로된 상황에서도 친 기업 정책, 무한 교육 경쟁, 공기업 민영화 확대, 각종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의 가속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다르다.

친 기업 정책의 경우는 이명박 정권에 의해 새로 개발한 아젠다라기보다는 과거 정권으로부터 계승된 것이지만, 지난 10년 정권과 달리 반노동과 공공성의 훼손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0년 정권이 자유주의적 가치를 상대적으로 중시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차이는 서민, 가난한 자의 관점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두 정권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권 역시 87년 민주화의 토대위에 서 있으며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 확보된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앞에서 두 정권의 차이를 이유로 이명박 정권 전체를 반민주세력으로 규정하고 민주대 반민주 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실권한 10년 집권세력이 자기 시대를 끝장낸 이명박 정권을 가장 열렬히 반대할 수 밖에 없겠지만,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 근거한 대안 없는 민주대연합론은 반대 여론을 동원하고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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