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식 복지와 우리 복지는 다르다"
        2009년 10월 29일 08: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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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의 복지국가와 우리 시대가 지향하는 복지국가는 완전히 다르다

    언제부턴가 예상되었던 일이긴 하지만, 박근혜의원이 드디어 ‘복지’를 자신의 핵심 정치노선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며칠 전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박근혜의원은 “우리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추도사를 남겼다.

    박근혜의원은 “국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버지의 꿈”이라고 강조하면서 박정희시대의 경제발전에 대해서도 “경제성장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고 재차 ‘복지국가’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려는 듯, 박정희 대통령의 육성 녹음으로 “가난을 떨친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박정희가 추구했던 복지국가와 우리 시대가 지금 꿈꾸고 있는 복지국가가 같은 복지국가일까? 대답은 ‘절대 아니오!’이다. 양자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장 최악의 노동이 박정희 복지의 실체

    박정희 시대에 복지국가의 모습이란 “1인당 국민소득 1,000불을 달성해 더 이상 굶는 사람이 없고,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는” 정도의 그림으로 상상되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에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던 국민들은 이러한 국가적 목표에 동의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당시 우리 민중들은 ‘대기업과 재벌 중심의 성장전략’과 ‘세계 최고 수준의 근로시간’, 그리고 ‘최악의 노동조건’ 등을 수용해야만 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군인들은 베트남으로, 노동자는 중동의 건설현장으로, 가자는 대로 따라가 주었다.

    박정희 시대에 꿈꾸었던 복지란 이렇게 나중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지금 당장의 고통을 모두 감내하며 열심히 일하자는 식의 기복신앙과도 같은 복지국가였던 것이다. 이것은 먼저 고도성장을 일으키고, 그 성장의 후과로 가난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뭔가 얻어갈 것이 생기는 이른바 낙수효과에 입각한 복지국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이런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일단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달라졌다. 어느덧 우리는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돌입했고, 집집마다 자동차가 넘쳐나 이제는 주차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복지국가로 생각하는 국민들은 없다. 더 이상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의 사회보장비 지출을 하면서 경제성장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국민도 별로 없다. 한마디로, 이제 미래의 불확실한 경제발전을 위해 현실의 복지와 삶의 질을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다.

    오히려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사회정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야 한다는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국가발전 전략(역동적 복지국가론)이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다수의 진보개혁진영이 이미 역동적 복지국가를 당장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대안적 국가발전 전략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GDP 대비 10%, 세계 최저의 복지비 비율

    이렇게 된 이유는 오늘의 현실이 복지국가를 추구하지 않아서 발생한 신자유주의적 사회 불평등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북유럽의 국가들이 국민소득이 2만 불에 도달하였던 시기에는 GDP의 30% 수준에서 사회복지비를 지출하였고, 미국이나 일본조차도 20% 수준을 넘는 지출을 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회복지비의 지출이 GDP의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을 현 정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지금 건설 관련 예산도 모두 복지예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지나친 과소 투자는 결국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분야 고용을 OECD 평균의 30% 수준에서 밑돌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정상적인 일자리 자체의 부족은 OECD 평균의 3배에 이르는 과도한 자영업 비율이 나타나게 했다. 또, 과도한 자영업자의 비율은 자영업 자체의 수익률을 떨어뜨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국민들의 삶이 개선되지 않는 구조적인 원인으로 정착하도록 만들고 있다.

    출산 파업이라고 불릴 정도의 저출산 문제, 지나친 사교육비 부담과 과도한 청년실업의 문제, 전체 노동자의 반이 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문제 등도 대부분 근본적인 복지 지출이 부족하여 생기는 문제이거나,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크게 부족하여 생겨난 문제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들은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에 따라 획기적이고 보편적인 복지정책의 제도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복지지출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복지에 대한 과소지출이 주는 심각한 폐해가 우리사회 전반을 강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빚어진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바로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는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고도화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에 조응하려면 그에 부응한 사회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민 누구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육아, 교육, 의료 등에 대한 보편적 사회보장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활발한 벤처 창업도 가능해지고 기업가 정신과 창의성이 살아난다.

    또, 사회공공성의 확대에 기반을 둔 사회서비스를 최대한 창출해야 그에 따른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늘어나고, 이것이 커다란 내수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벤처 환경과 내수기반이 있어야 산업구조의 미래지향적 재편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공세적 복지 추구해야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 복지 수준의 미달로 수출에 비해 극히 취약한 내수시장을 갖게 되었고, 모든 생계를 시장임금인 직장의 월급에 의존해야 하는 가계구조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가로막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산업구조의 변화와 발전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다른 이유가 아닌,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의원이 복지국가에 대한 우리 시대의 이러한 과제와 소망을 박정희의 복지국가와 연결시킨다는 것은 사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박정희의 복지국가는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복지국가가 아니다. 내일의 성장을 위해 오늘의 복지를 희생해야 한다거나, 성장이 되면 복지도 저절로 될 것이라는 생각과 방식으로는 오늘날의 시대적 요청에 맞는 복지국가를 지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정책의 확대라는 잔여주의 복지 정도로 복지국가를 이해하는 박근혜의원의 사고방식으로는 복지와 관련해서 아무런 진전도 이룰 수 없으려니와, 더 이상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대 할 수도 없게 된다.

    박근혜의원은 복지국가를 주장하기에 앞서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박근혜의원은 현재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에 목숨을 걸고 있는 한나라당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박근혜의원은 이명박대통령을 제외한 한나라당의 최대주주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성립이 가능한 복지국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말로 하는 것이라지만, 이 정도쯤 되면 말장난 수준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의 말장난 또는 대국민 기만

    또한, 박근혜의원은 입으로는 스스로 과거와 다른 정치노선인 복지국가를 제출하면서도 전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언급이 없다. 박근혜의원의 2007년 대선 당시 경선 공약이었던 ‘줄푸세’는 세금을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는 뜻으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의 핵심 정책들을 한국적이면서 대중적으로 알기 쉽고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복지국가를 해체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인 감세와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복지국가를 추구하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완전히 모순되는 것이다. 만약, 이 두 가지의 가치를 동시에 모두 추구하겠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국민을 속이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박근혜의원이 진정으로 복지국가 노선에 동의한다면 ‘줄푸세’ 공약에 대한 반성과 폐기 선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대하고 촉구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 정치인인 박근혜의원이 이제 와서 복지국가라는 대세를 따르겠다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적극 환영하는 바이며, 우리는 박근혜의원이 아닌 그 누구의 전향이라도 받아줄 의향이 있다. 박근혜의원이 진정으로 복지국가를 소망한다면, 지금까지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연구하고 축적한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들을 모두 즐겁게 퍼줄 용의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만큼은 확실히 해야 한다. 박근혜의원이 진정으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우선 한나라당 내의 신자유주의와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에 대한 정직한 평가와 반성을 하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만약 이런 선행조치들 없이 단순히 박정희 식 복지이념으로 복지국가에 대한 우리 시대의 소망을 호도하려 한다면 박근혜의원께서는 아마도 ‘신자유주의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이념을 창조해야 할 것이다.

    2009년 10월 29일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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