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소한 예의를
        2009년 10월 29일 12: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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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 1심 재판부가 철거민들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치상죄 등 무시무시한 죄목을 적용해 중형을 선고했다. 대신 경찰특공대를 동원해 건설재벌의 탐욕을 채워주려 한 정부의 강경한 무력진압에 대해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완전한 면죄부를 줬다.

    강경 무력진압에 완전 면죄부

    이번 판결은, ‘용산 사태’의 본질이 뉴타운 등 재개발 정책에 전 재산을 털린 세입자들이 생존을 위해 저항하다 가공한 국가폭력에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라는 점을 완전히 외면한 것이다. 나아가 국가 권력에 죽임을 당한 용산 철거민들을 사법부가 또 한 번 죽이려는 ‘사법참사’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지난 7개월 동안 재판 과정에서도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원한 국민참여재판을 무산시키려는 검찰의 무더기 증인신청을 방관하고, 검찰이 수사기록 3천 쪽을 제출하지 않은 것도 사실상 묵인하는 등 공정성을 의심받아왔다. 그런데 판결 내용도 상식 있는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최대 관심사였던 망루 발화 원인에 대해 재판부는 ‘농성자들이 경찰특공대 1차 진입 당시 화염병을 던진 뒤 큰 불이 나지 않고 꺼지자, 2차 진입 때도 그대로 던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고, 심지어 화염병을 누가 던졌는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재판부가 화염병을 누가 던졌는지도 모르면서 추정에 근거해 화염병 때문에 불이 났다고 단정하고 모든 책임을 철거민들에게 물은 셈이다.

    재판부가 철거민과 경찰에 대해 이중잣대를 적용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민들이 부당한 피해를 입은 점은 인정하지만 이는 법원의 몫이 아니라며 선을 그은 뒤, 동기가 정당하다고 수단과 결과가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철거민과 경찰에 대해 이중잣대 적용

    그러나 설사 철거민들의 농성이 현행법을 불가피하게 위반한 행위라 하더라도 농성 이틀도 안 돼 테러진압부대를 투입해 사람을 여섯 병이 죽게 할 정도로 강경하게 진압한 정부의 진압작전에 대해 재판부는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위법행위 진압’이란 동기가 정당하니, ‘테러전담부대를 동원한 폭력진압’이란 수단과 결과가 모두 정당하다는 논리다.

    용산참사 후 많은 국민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철거민들의 처지를 동정해왔다. 이번 재판과 관련해서도 상당수 국민들은 아무리 그래도 부모가 죽은 뒤 열 달 째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유족과 철거민들의 처지를 생각해 정상참작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여론이 강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참사 이후 철거민들이 사과도 않고 재판에 임하는 태도도 좋지 않아 무거운 형을 내린다고 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법정의조차 잊고 감정에 휘둘려 내린 가혹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용산참사는 건설재벌, 국가권력과 정치권, 부동산 언론 등 부동산 5적이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을 얻기 위해 경찰특공대와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뉴타운 재개발을 밀어붙이다 빚은 참극이다. 이들은 지난 9개월 동안 철거 세입자들을 ‘도심테러분자’니 ‘생떼집단’이라 매도하고 심지어 스스로 불을 질러 그 불에 타죽었다는 식의 논리를 펴왔다.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잊은 듯한 부동산 기득권층의 망발은 마치 인간이 부동산 탐욕에 사로잡히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부동산 탐욕의 극한

    보다 못한 신부들이 곡기를 끊고 철거민들과 함께 하다 쓰러졌고, 많은 뜻있는 국민들이 딱한 처지의 용산참사 유족들과 함께 하려 애써왔다. 어찌보면 우리사회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회복하자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게는 소귀에 경 읽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재판부마저 부동산 탐욕에 사로잡혀 타락한 인간군상들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따라하고만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난한 철거 세입자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는 길은 정녕 무엇인지 우리모두 자문해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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