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예뻐지고 싶었나?
    2009년 10월 20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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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이 단어를 듣다 보면 어렸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엄친아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무수히 많은 엄마 친구의 아들딸 나아가 아빠 친구의 아들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내 친구 아들은 전교 1등을 도맡아서 한다더라, 내 친구 딸은 서울대에 붙었다더라….

하지만 나는 괴롭지 않았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들의 얼굴에 두꺼운 안경을 씌우고 피부색이 안 보일 정도로 붉은 여드름을 상상 속에서 그려 넣었다. 거기에, 전체에서 한 문제 틀렸다고 신경질을 부리다 친구 하나 없는 사람이 되는 설정까지 더하면 나의 승리였다. 어렸을 때 내 목표는 전교 1등을 하거나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적당히’ 공부 잘하고 또 ‘적당히’ 예쁜 아이가 되고 싶었다.

나는 ‘적당히’ 예쁜 아이가 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내 주변에는 예쁜 친구가 많았다. 그 친구들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호의를 보면서 한번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었지만 이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도 공부는 내가 더 잘해.’ 그러던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친해진 친구가 나보다 얼굴도 예쁘고 ‘성적’도 좋았던 것이다. 위안 삼을 것이 없어진 나는 방황했다. 그 후로 반년을 변변찮은 친구 하나 없이 지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그간의 시간들을 거듭 돌아보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나는 학급 인기 투표에서 항상 순위권에 들었고, 여중에 다니던 시절에도 학원에서 만난 다른 학교 또래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정작 나는 쌍꺼풀이 없는 눈, 주근깨 있는 피부, 곱슬머리 때문에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주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는 한편 자존감도 쌓으면서 살았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새롭게 사귄 친구들도 모두 예뻤다. 그렇지만 더는 ‘경쟁’하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무언가 결핍된 듯한 상태는 그대로였지만, 이후 학교생활은 즐거웠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생활했으므로 학교 밖의 공기를 마음껏 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수 시절은 무척 행복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사귀었던 친구에게서 받은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말씀하시던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아이 정도로는 더는 엄친아 혹은 엄친딸 대열에 끼지도 못했다. 집안 좋고, 학벌 좋고, 외모 좋고, 성격 좋고, 스타일까지 좋은 그들을 나는 누구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왜 예뻐져야 했을까

전세는 역전됐다. 내가 무심코 던지는 엄친아, 엄친딸 들의 아빠, 엄마의 직업과 재력에 관한 이야기에 부모님은 그 친구들 부모에게서 흠을 찾곤 했다. “직업 좋고 돈 많은 부부 중엔 화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의사라고 다 돈 잘 버니? 요샌 돈 많이 버는 의사는 따로 있다더라.” 이런 식이었다.

대학에 다니는 내내 많은 사람이 나에게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유히 떠다니는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나의 발은 물 밑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엄친딸들과 비교해 내가 유난히 매달렸던 건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래 삼 년 동안 즉, 반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아침 부산스러웠다. 보통 수업 시작 두 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전신 거울 앞에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화장을 했다 고쳤다를 반복했다. 보고서를 쓰느라 밤을 새운 다음 날에도 잠시 눈을 붙이는 대신, 바로 씻고 화장하고 옷을 골라 입고 학교 가는 쪽을 택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피부 관리도 받았고 그냥 두면 관리 안 되는 곱슬머리 때문에 미용실도 자주 찾았다. 비싼 옷을 사 입을 형편은 안 되어도 계절마다 옷과 구두, 가방 따위를 샀다. 그러다 가끔 내가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쳐도 엄친아, 엄친딸 들이 멘 명품 가방과 그 친구들이 신은 수제화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적잖이 괴로워했다.

"너 페미니스트 아니지?"

하지만 나를 더 괴롭힌 것은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여겼다는 사실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친절한 오빠들 덕에 삶이 편한 편이었다. ‘남녀차별’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였는진 모르겠지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의 삶과 내가 시작한 공부가 모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치장은 과연 나를 위한 것인가.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경쟁에 나는 자발적으로 길들여지고 있던 것은 아닌가. 고민이 밀려왔고 이 일로 또다시 방황하게 되었다.

“너는(예쁘장하게 하고 다니니까) 페미니스트 아니지?” 하며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싸우는 일도 지겨웠다. 함께 페미니즘 공부를 하던 친구들은, 예뻐지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이고 그 욕구를 발현하는 방법은 각자 다른 것이라며, 충분히 성찰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어떤 외적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사람들의 말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다고도 말해 주었다. 친구들의 그런 말에 어떤 때는 힘이 나다가도 곧 자신이 없어지는 등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사고’를 치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익숙해진 차림을 쉽게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다 휴학했던 학기에 급기야 ‘사고’를 쳤다. 오지랖이 넓은 덕에 학교에 입학한 이래 삼 년을 휴일, 방학도 없이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에서 살았다. 어느 날 문득 그 생활이 지겨워져 한 학기 휴학을 했던 것이다.

휴학하는 동안 연극도 배우고, 제과제빵도 배우고 싶었지만, 부모님 안심시킨다고 토플 학원에 등록하고 말았다. 결국 영어는 영어대로 공부 안 하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도 못 배우면서 시간만 허비했다. 휴학 기간을 이렇게 보낸 것이 아쉬워서 한 일이, 토플 학원이 있던 강남역 앞의 모 성형외과에서 한 쌍꺼풀 수술이었다.

실은 전부터 쌍꺼풀 수술을 할까 말까 고민했었지만, 진짜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건 충동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일은 저질러진 뒤였다. 복학하고 나서는, ‘성형수술’까지 했는데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느니, 예전이 더 낫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더욱 치장하는 일에 매달렸다. 한동안 끊었던 피부 관리도 다시 받기 시작했고, 쇼핑도 자주 했다. 두세 달에 한 번 가던 미용실 가는 횟수도 잦아졌다. 예뻐졌다는 말은 기분 좋았지만, 그만큼 고민은 깊어졌다.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라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 피부 관리를 받는 것은 기본이고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정말 더 가치 있는 상품이 되기 위해서 예뻐지고 싶은 욕망을 갖는 걸까? 그래서 화장도 하고, 성형수술도 하고, 매일 저녁 부은 발을 주무르면서도 내일 아침 또다시 하이힐을 신고 나서는 걸까?

예쁨에 대한 사회적 기준

나는 이 주제로 친구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여자 일곱, 남자 세 명이 모여 ‘나는 왜 예뻐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갔다. 그 과정이 쉽진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고민하던 우리는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닥치는 대로 실천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예쁨’은 무엇인지 몇 주에 걸쳐 이야기해 보았고, 내가 예뻐지고 싶어서 하는 일들은 무엇인지도 찾아보았다. 나는 왜 예뻐지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서로 묻기도 했다. 이야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자기만족’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왔지만, ‘잠재적 연애 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나오면서, 실제 ‘자기만족’도 타인의 평가에서 나온다는 의견으로 이어졌다.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나이듦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도 함께 보았고, 성형외과에 가서 ‘견적’이란 것도 내 보았다. 민낯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나이듦에 대해서 당당히 말하는 할리우드 여배우들 모습은, 주름지지 않은 얼굴을 ‘예쁨’과 밀접하게 여기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성형외과에서 낸 견적은 우리의 신체 각 부위마다 사회가 예쁘다고 인정하는 기준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느끼게 해 주었다. 쌍꺼풀을 하거나 코를 높이는 정도의 성형수술만을 알고 있던 우리는 상담을 받으면서 수술 부위와 종류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예쁨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평소와 다른 나로 변신도 해 보았다. 매일 예쁜 차림으로 학교에 가기 위해 분주했던 나 같은 경우에는, 맨 얼굴로 머리를 질끈 묶고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학교에 갔다. 평소에 늘 단정한 차림이었던 친구들의 경우에는 최신 유행 스타일로 꾸미고 학교에 왔다.

   
  

어떤 식의 변화인가에 따라 주변의 반응은 달랐다. 이 실험을 하는 동안 우리는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차림새가 낯선 것도 그 이유였지만, 자신의 외양이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답이 있는 질문인 것도 같고 없는 질문인 것도 같았던 프로젝트는 한 줄로 요약되는 결론 대신에 예뻐지고 싶은 욕망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한 시각에 변화를 주면서 끝이 났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주변 사람 중 누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뒤에서 흉을 보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친구들과 “저 사람 성형한 것 같지?” 하며 비난조로 자주 얘기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나는, 누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본인이 만족하는지를 먼저 묻게 되었다. 인터넷을 떠도는 연예인들의 과거 사진을 볼 때에도 그 연예인의 성형수술 여부에 관심이 생기기보단, 누구의 몸을 유희거리로 올려놓고 수술인지 아닌지 논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게 됐다. 그리고 예뻐지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느라 스트레스도 받지 않게 됐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살련다

각종 알파벳으로 설명되던 우리 세대에게 우석훈 선생님은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셨다. 88만원 세대. 알파벳이 붙었을 때 우리 세대는 공통적으로 ‘개성’과 ‘다양성’으로 설명되곤 했었다. 하지만 88만원 세대가 된 우리는 알아 버렸다. 우리에게 ‘개성’과 ‘다양성’은 없었다. 그것은 ‘구입’해야 할 것이지 애초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우리는 명품을 살 수 없음에 괴로워했고, 유행하는 스타일을 쫓기 위해 바둥거렸다. 우리는 경쟁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구입했던 개성과 다양성을 버려야 했다. 스펙을 쌓아야 된다고 하던가. 남과 같은 것을 갖되 더 높이 쌓아야 했다. 이번에도 우리는 경쟁했다. 최근 유행하는 엄친아 혹은 엄친딸은 20대인 우리가 이러한 사회에서 승자로 살아남기 위해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사회가 정해 놓은 어떤 기준안에서 평가받고 경쟁하는 것이 재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최근의 일상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면, 나는 예전만큼 열심히 치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뻐지고 싶은 일에 전혀 관심을 잃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생겼다. 나는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고시를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재산이라고는 경기도 어느 지역에 오래된 빌라 한 채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인 우리 부모님, 명문대 간 딸이 결국에는 그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성공’하리라고 순진하게 믿고 기다리시는 부모님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이 마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 글을 읽은 누구는 나더러 철이 없다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굶지 않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알고 싶은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책도 봐야 하고 고민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술도 마셔야 한다. 요즘은 자연스레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아져 몇 년을 공들여 가꾸어 놓은 피부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나는 즐겁다. 물론 요새도 옷장에 가득한 옷들을 보면서도 입고 나갈 옷이 없어 고민한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본 프로그램에서 같은 과 출신 선배가 엄친딸로 출연한 것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살련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고 사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 이 글은 우석훈 박사가 최근에 『88만원 세대』후속작으로 펴낸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 세대 새판짜기』에 실린 글이다. 『혁명은…』에는 ‘대학생들의 20대 관찰기’라는 장에서 7명의 대학생들이 쓴 88만원 세대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글은 그 가운데 하나.

필자는 1년간 스터디팀에 참가했던 학생들 중에서 가장 가난했던 것 같다. 언제나 리더십을 발휘하며 리더로 움직였던 친구다. 필자는 연세대 운동권의 대모 중의 한 명이고, 맨 앞에 서기보다는 뒤에서 서로 다른 조직들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학생생협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연세대의 생협운동과 생태운동을 대표한다. 공부를 아주 잘하고, 성격도 명랑, 쾌활하다. 성적이 좋고, 수업과 학생운동 모두에서 좋은 성과를 낸, 80년대 운동권과는 전혀 다른 패턴을 보여 주는 친구다. 최근 졸업을 앞두고 학자가 되는 것과 현장 활동을 계속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민주노총 간부들이 강연회에서 이 친구를 만나고는 새로운 대학생 모습에 무척 놀랐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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