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자의 전성시대’와 악성 바이러스
    공공부문 몰락 사회 양극화 지름길
    [기고] “9호선 환수하고 KTX 민영화 즉각 중단해야”
        2012년 05월 09일 09: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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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투자사업 가면을 쓴 민영화

    지하철 9호선이 발화시킨 민간투자사업의 문제는 껍질을 벗기면 벗길 때마다 그 참혹한 실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고통 없이 서서히 몸을 갉아먹는 암세포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사회 전반에 탐욕의 블랙홀이 뚫려 버렸다.

    권력과 의회와 자본이 하나가 되어 합법적으로 진행된 서민 주머니 털기가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아무 탈 없이 진행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자정기능과 능력이 형편없이 소진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특히 민간투자사업의 실행 과정에서 이를 주도하는 측의 장밋빛 전망을 담은 보도 자료만 앵무새처럼 공표했던 일부 언론이 이제 와서 심판관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은 더욱 커진다.

    공공부문 몰락 사회 양극화 급행열차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경쟁을 통한 효율화이다. KTX 민영화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국토부의 관료들도 경쟁을 통해 독점의 폐해로부터 철도를 구원하겠다는 것을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과 KTX 민영화 강행 반대 기자회견 모습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경쟁을 통한 효율화의 결과는 결국 독점으로 귀결된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기업이 몰락할수록 승자는 더 힘이 세지고 과점과 독점으로 이어져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좀먹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국가는 시장경제체제의 효율성을 살리는 경쟁을 강조하면서도 그 결과로 나타나는 독점의 비효율을 막아야만 하는 이율배반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이에 따라 경쟁을 촉진하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 외에 카르텔이나 독점의 방지를 위한 여러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나라마다 두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업자본주의시대는 기업 활동을 촉진 시키는 사회적 인프라를 국가의 몫으로 정하고 사회적 비용을 들여 구축했다. 사회간접자본(SOC)이라 불리는 기반시설들은 거대한 투자비와 그 사회적 성격으로 인해 국가가 감당해야 할 부분으로 인식됐고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SOC 분야는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것 외에 국가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에서 꼭 필요한 교육, 에너지, 이동권 등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기능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이에 따른 이윤율 하락은 기업들에게 새로운 이윤 창출 창구가 요구되었고 마침내 사회기반시설부분의 장악을 통한 이윤확보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거대하게 성장한 산업금융복합 자본들은 충분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으로 정부의 역할 축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기본 테마인 ‘작은 정부’, ‘민영화(사유화)’의 회오리가 전 세계에 자본주의를 구할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되었고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그 깃발의 선두에 섰던 일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안은 없다며 폭력적으로 진행된 영국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바로 공공부문의 해체를 통해 구현되었다. 산업전반에 대한 구조조정과 노동조합의 분쇄, 경쟁을 통한 승자 독식의 패러다임이 진행되는 동안 눈에 보이는 실물 경제지표의 반짝 효과와 단기 호황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고 사회는 이미 대세로 굳어진 신자유주의 흐름에 밀려 갈 뿐이었다.

    신자유주의를 통해 자본은 위기를 극복하고 일부 기업들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냈으며 국가의 경제지표도 향상되었다. 그러나 그 성장의 열매는 국가의 구성원 중 극히 일부의 거대자본에 집중되었고 어두운 그림자는 대다수 사회 구성원의 몫이 되었다.

    복지혜택의 축소, 실업, 물가고 등으로 사회전체는 급격하게 양극화의 물살을 탔다. 20:80의 사회라고 불리던 것이 10:90으로 마침내 1:99라는 상징적 슬로건으로 자리 잡았다. 무너지는 공적 시스템과 그에 비례해서 확장되는 사적 이윤체제는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좀먹는 가장 큰 해악으로 변해가고 있다.

    민간투자 사업으로 위장한 민영화

    한국에서 민간투자사업이 시작된 것은 1994년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자본 유치 촉진법’이 처음으로 제정 되면서였다. 이에 따라 인천공항고속도로가 최초의 민자사업으로 추진되었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니 메니지먼트(PM)니 등의 생소한 용어들이 새로운 경영기법인 것처럼 등장했다.

    민자사업은 민영화의 위장잠입(Undercover)형태이다. 민자사업은 그 대상을 사회간접자본으로 삼아 광범위하게 추진되었다. 포항제철처럼 완결적 구조의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전통적인 민영화 방식이 아니라 소유권은 국가가 갖고 운영권만 확보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진행됐다.

    이런 이유로 민자사업은 사적 기업의 이윤창출 도구로 기능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국가가 관리하고 민간기업의 효율성을 도입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여기에 가장 큰 함정이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기반시설 전반에 걸쳐 사회적 자산이 사적 수익 창출의 도구로 변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조용하고 서서히 진행되었는데 정부가 촉진하고, 법이 보장하면서 당연하고 자연스런, 국제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처럼 보이게 했다. 이것은 끓는 물에 닿은 개구리가 놀라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서히 온도를 높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에 부담을 전가했고 그 결과 오늘 날과 같은 숨 막히는 민영화의 압박에 노출되게 된 것이다.

    KTX 민영화를 추진하는 국토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수서발 KTX는 절대 민영화가 아니고 민간경쟁체제 도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월 4일 까지 약 8일 간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여러분께서는 수서발 KTX 운영을 외주화할 경우 수서발 KTX의 운임이 인하되고 서비스가 좋아질 거라 생각 하십니까?” 라며 아예 질문 항목을 외주화로 바꾸어 버렸다. 어떻게든 민영화란 프레임을 바꿔보려는 몸부림이다.

    철도민영화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나라인 영국의 현재 모습이 국토부가 추진하는 민영화 방식이다. 기반시설은 국가가 소유하고, 민간이 일정기간 운영권을 갖고 재계약 여부에 따라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다.

    국토부의 논리라면 영국의 철도는 민영철도가 아닌 셈인데 이런 주장은 국제적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철도는 민영화 초기 시설과 운영을 모두 민간에 매각했다. 이런 사실을 들어 지난 2002년 국토부(당시 건교부)가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한국철도의 민영화 모델은 실패한 영국의 모델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영국철도는 민간에 매각했던 시설부분을 정부가 인수하면서 재공영화 되었고 지금 국토부가 추진하는 방식의 구조로 자리잡았다.

    철도 민영화와 구조개편 방안을 제출 했던 세계은행은 민간 참여의 방법으로 9가지를 제시했는데 “국가소유 기업에서 운영분야의 개방, 사업권 분할, 서비스 공급계약, 경영위탁계약, 사업권 승인”등 국토부가 추진하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세계은행이 말하는 민영화의 핵심요소들을 모두 담고 있다. 민자사업처럼 가면을 쓴 채 민영화란 맨얼굴을 보이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미 국민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

    공기업의 비효율을 민간의 효율로 극복?

    국토부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민간의 효율성’이란 말은 언뜻 보면 당연한 명제인 것 같지만 근본주의적 한계를 갖고 있다. 종교적이든 경제적이든 근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오류주의이다.

    우리가 항상 옳다는 신념은 결국 상대에 대한 폭력적 제압을 정당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민간은 정말 효율적인가?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효율적인 민간은 망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몰고 온 것은 누구인가? 문어발식 확장, 부당한 내부거래, 무리한 인수합병, 탈세와 위장 증여 등 온갖 불법과 탈법의 주범은 바로 민간 기업이 아닌가? 게다가 민자사업 전반에서 드러난 민간기업의 행태는 최소한의 도덕성까지 팽개쳐버리고 있다.

    정부의 막무가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과 민간의 탐욕이 만났을 때 민간이 효율적이란 말은 얼마나 허망한 신기루인지 최근의 사태가 잘 보여준다. 민간의 효율성에 대응하는 말이 공기업의 비효율이다.

    공기업은 근본적으로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는 정부당국의 주장은 이제 신앙에 가깝다. 그러나 공기업은 정말로 비효율적인가?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공기업은 그 특성상 내재적인 효율성을 이미 담지하고 있다. 투자자와 관리자가 납세자인 시민을 대행하는 정부나 지자체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발생하는 이익이나 효용은 모두 시민들의 몫으로 환원되게 되어있다. 특정한 사적인 투자자나 주주의 수익을 보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비효율은 관리 대행체제를 맡은 정부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 4대강 사업 같은 공기업 본연의 임무를 방기한 채 정권의 치적을 위해 강요당하는 사업 시행, 퇴임 후 고위 관료들의 노후 보장 수단, 심지어는 민간기업의 부실 떠안기 등 공기업의 제 기능을 방해하는 거의 모든 일들이 정부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문제를 감시하고 제어할 시스템을 만들자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정부가 끈질기게 거부하고 있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스티글리츠 박사나 노엄 촘스키 같은 석학도 입을 모아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지적하는 것은 모두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네트워크에 침투한 악성 바이러스, 민영화

    지하철 9호선과 수서발 KTX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거대 네트워크망의 일부분이고 또 그 부분만 최초로 들어온 민간기업이라는 점이다. 서울지하철의 중요성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서울시의 필수 교통수단이다.

    여러 개선할 지점에도 불구하고 이 지하철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지하철 노선 전체가 단일한 체계로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서울시와 관계된 지하철 시스템은 5개의 운영기관이 있음에도 상호간 연계와 환승이 가능하고 동일한 요금체계로 시민들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9호선처럼 민간이 들어온 부문만 요금인상 압박을 하거나, 신분당선은 아예 비싼 요금(기본요금 1750원)을 받고 있다. 궤도교통의 다른 대체제가 없는 필수 기반시설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일부 특정 시민들만 더 높은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면 이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이런 일이 한시적이거나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 기업들의 수익보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민자사업이나 민영화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네트워크 산업의 특징 중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전체가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는 시스템이기에 어느 특정 부분의 성과나 손실이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는 네트워크망의 일부에 심각한 폐해를 일으킬 수 있는 악성 바이러스가 침투했고 이것이 전체를 감염시키려 하고 있는 게 지하철 9호선이고 KTX 분할 민영화의 본질이다. 이 문제를 치료할 백신은 분명하다. 지하철 9호선은 시민의 것으로 환수하는 것이고 수서발 KTX의 민영화 추진을 당장 중지시키는 것이다.

    필자소개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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