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 상위 30개교 납부금 최대 6.2배
        2009년 10월 14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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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과 <조선일보>가 수능점수를 학교별로 공개했습니다. 작년에 치러진 2009학년도 수능의 언어, 수리, 외국어 3개 영역 평균점수를 합산하여 상위 30개교를 친절히 알려주었고, 각 영역별 상위 100개 고교도 덧붙였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점수로 학교를 쭉 줄세우고 ‘누가누가 숫자 크네’만 알려준 게 다입니다. 1면 탑으로는 중량감이 다소 떨어집니다. 서울대 진학자수로 고교서열을 보여주는 것도 있었는데, 그것에 비해 과한 대접이기 때문입니다.

    분석 없이 그냥 줄세우기

    한나라당 의원들이 서울대 진학자수로, 교과부가 일제고사 점수로 줄세웠던 때의 풍경이 이번에도 반복됩니다. 분석 없습니다. 예컨대, 학생이 400점을 받으면 여기에는 가정환경, 친구, 교사, 학교풍토, 개인 특성 등이 두루두루 섞여있습니다.

    따라서 ‘그 학교라서 400점이다’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잘 살아서 200점은 그냥 먹었다’ 또는 ‘100점 정도는 원래 능력도 되고 집중력도 뛰어난 아이라서 그렇다’ 등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전혁 의원과 조선일보의 합작품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분석이 없으니 당연합니다. 대신 소숫점 둘째짜리 따져가며, ‘0.02점 앞서니 이 학교 勝’이라고 말합니다. “강남 고교가 100위권에 없다”나 “비평준화 고교가 많다” 등의 표현이 있기는 한데, 이거야 줄세운 다음에 어떤 학교들이 있나 살펴보면 나옵니다. 단순 해석인 겁니다.

    따라서 ‘분석’이라는 표현은 곤란합니다. 두 당사자야 그 말을 쓴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들은 참아야 합니다. 이 집 기름과 저 집 기름의 가격 비교를 두고 분석이라고 말하기 어려우니까요. 기름의 성분 분석이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교과부는 조전혁 의원에게 손해배상 청구해야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은 아무래도 수능점수에 남다른 애착을 지니고 있나 봅니다. 의원이 되기 전에도 소송까지 불사하며 자료를 확보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2005년부터 신지호 당시 뉴라이트닷컴 대표 등과 함께 인천대 교수 신분으로 정부와 재판을 진행해 왔습니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문에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원고들이 원래 공개요구 목적과는 달리 이를 언론 등에 공개하거나, 외부로 원자료가 유출되어 잘못 인용될 경우 생길 수 있는 혼란을 막을 필요가 있다면, 피고로서는 정보 제공 방법을 제한하거나(원자료 전체에 대한 복사는 허용하지 않고, 원고들에게 피고의 관리하에 있는 전산기기를 이용한 원자료에 대한 접근권만을 부여하는 등의 방법), 부관으로 원고들에 대하여 유출금지에 대한 다짐을 받고, 고의 또는 과실로 자료가 유출될 경우 손해배상을 하거나 차후 동일한 자료에 대한 공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한을 둘 수도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정보공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 2006년 9월 6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문(2005구합20825) 중

    원고는 조전혁 의원측이고, 피고는 교육부 장관이며, 원고의 수능성적 공개 목적은 학문연구입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조전혁 의원이 언론에 주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여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면, 정부는 적절한 사전 조치를 취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의나 과실로 자료가 유출되면 손해배상 청구 등의 후속 조치를 강구하라고 밝힙니다. 당시 재판부는 이런 전제 하에서 자료 공개에 대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립니다.

    신기합니다. 재판부가 선견지명이 있었나 봅니다. 2006년 판결인데, 3년 후인 지금 벌어지는 일을 이리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웬만하면 판결을 따라야 합니다. 조전혁 의원이 연구목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았고, 고의로 언론에 유출하였고, 혼란을 초래하였으므로, 교과부는 손해배상 청구 등을 해야 합니다.

    수능 상위 30개교는 모두 일반고보다 비싼 학교들

    2008년 일반고의 학생 1인당 납부액, 즉 학비는 평균 258만원입니다. 전문고는 166만원입니다. 그런데 수능점수가 높다고 하는 30개 고교는 이 금액보다 비쌉니다. 1위를 했다는 대원외고는 669만원으로 일반고의 2.6배 정도입니다. 2위인 민족사관고는 1611만원으로 일반고보다 6.2배 더 비쌉니다. 나머지 28개 학교 모두 일반고보다 학비가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30개 학교는 평균 662만원으로, 일반고의 2.6배 수준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다니려면 일반고 학생보다 돈이 더 있어야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30개 중에 26개 학교가 특목고와 자사고이니, 일반고보다 사교육비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들어가기 위해 사교육 받아야 하고, 입학하고 나서도 받습니다.

    예컨대, 정부가 지난 2005년 전국 6개 자사고를 조사해보니, 사교육비가 평균 562만원이었습니다. 통계청 조사 결과, 작년 일반고의 사교육비는 298만원입니다. 자사고 학생의 4년전 금액이 일반고 학생의 작년 금액보다 2배 정도 많습니다.

    이번에 2위를 했다는 민족사관고의 경우, 학교 다니면서 내는 학비가 1611만원입니다. 4년 전에 조사한 사교육비는 학생 1인당 1254만원입니다. 단순 합산하면 2865만원입니다. 그동안의 교육비 상승이나 기타 경비 등을 고려한다면 년 3천만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게 평균 가격입니다. 더 적게 내는 학생도 있겠지만, 더 많이 부담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민족사관고 전경.(사진=학교 홈페이지)

     

    결국 ‘비싼 학교에 다닌 학생들의 수능성적이 높다’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경제력 등의 가정환경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긴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을 넘어 ‘시아버지의 경제력’을 이야기하는 때이니 오죽 할까요. 

    대규모 중장기 연구 필요

    지난 6일 조전혁 의원은 수능과 일제고사 자료를 전문연구자에게 유출하겠다고 만방에 고했습니다. 순간 “아니 경제학 박사이자 대학교수가 분석을 못해서 다른 연구자에게 준다고? 실력이 안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조전혁 의원이었습니다. 전문연구자라고 해놓고, 기자에게 주었습니다. 스스로 ‘비전문적인 분석과 이를 토대로 한 주장, 정치적 선동 도구로의 전락’을 우려하더니,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조선일보>로 자료를 유출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만 해야 합니다. ‘점수로 줄세우기’가 자제되어야 합니다. 점수에는 학생 개인의 노력과 능력 이외에도 많은 변인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그랬던 것처럼, 언론보도도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이 했으니까요.

    숫자를 허투루 만지면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수능점수와 학비를 알면, 두 개의 숫자로 ‘비용 대비 효과’를 구할 수 있습니다. 즉 학교별로 수능점수의 단가가 산출됩니다. 이러면 대원외고나 민족사관고 등이 수능점수는 높지만, 비용 대비 효과는 떨어집니다. 점당 1만 6천원이나 4만원 정도 하니까요. 이를 두고 낮은 생산성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숫자로 그냥 줄세우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백해무익한 일을 해서 어디에 쓴다 말입니까. 대신 연구팀을 꾸려 정부가 지원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입니다. 학력격차나 교육양극화 등에 대해 보수, 진보, 중도를 망라한 대규모 연구진을 구성하여 중장기에 걸쳐 그 실태와 원인을 분석하는 게 보다 낫습니다.

    이 편이 불필요한 논쟁과 사회적 혼란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효율적입니다. 물론 교육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정하는 데에도 당연히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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