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죽고 싶지 않다"
    2009년 10월 06일 03: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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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실시되고 있는 일제고사가 오는 13~14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치러질 예정이다. 앞서 몇 차례의 일제고사과정에서 벌어진 교사해직문제 등 부작용이 명백히 발생하고 있음에도 정부 측은 일제고사를 강행하려 하고 이에 대한 교육운동진영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에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청소년 모임 ‘Say-No’는 학생과 학교 간의 경쟁을 가속화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3회에 걸쳐 기고 연재한다. 그 첫 순서로 인천의 중3학생의 글을, 이후 학부모와 일제고사로 인해 해직당한 교사의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Say-No’ 등 교육운동진영은 릴레이 기고 외에도 일제고사에 맞춰 등교거부 / 체험학습 등 다양한 활동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 연재는 <프레시안>에도 공동 게재된다. – 편집자 주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이 이명박 같은 아이야’라는 말은 욕으로 통한다. 뭐, 그런 정도다. 내가 상당히 바쁜 와중에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우리 이야기를 하면 ‘가카’가 좀 제정신을 차릴까 해서다.

어차피 익명인데 할 말은 해야겠다.(실명으로 썼다가 학교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두렵다.) 작년에 일어난, 일제고사로부터 비롯된 참극을 보고도 또 일제고사를 치게 할 맘이 들까? 아, 정말 우리 ‘가카’ 탄핵을 해서라도 좀 말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카’를 말리고 싶다.

“헬 오브 지옥”이라는 영화 제목을 아는가? 지금의 학교를 묘사하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적절한 어휘다. 일단 내 학교만 예를 들어서 봐도, 등교시간이 빨라지고, 6교시까지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를 하다 7교시 방과 후 학교, 8교시 자습이 반강제다. 후덜덜.

참고로 이번 일제고사 성적이 나쁘면 야자까지 할 수도 있다는 악의 수괴(통칭 교장)의 협박이 수 차례 들려오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몇몇 학교는 벌써 하고 있다고 한다. 후덜덜. 그 학교 학생에게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 사진=교육공동체 ‘나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시내에서 벗어난 지역이기도 하고, 고등학교도 거의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올라가는 식이라 경쟁 자체가 적다보니, 작년까지만 해도 방과후 프로그램에 비교과 프로그램이 구색맞추기나마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아놔, 올해 들어서 갑자기 전학년 일제고사대비프로그램이다.

거기다 다짜고짜 8교시 자습이다. 그뿐인가? 갑자기 단속도 심해졌다.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 교사의 지도에 불응한 학생, 복장 두발이 교칙에 어긋나는 학생, 수업시간에 분위기를 흐트리는 학생, 결과(땡땡이)한 학생, 지각생, 전부 모아다가 3교시 끝나고 운동장 한 구석에서 오리걸음 시킨다. 후덜덜. 그거 30분만 하면 5교시 음악수업에 계단을 오르지 못해 지각하는 불우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외에도 여러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 선생들은 ‘아놔 8교시까지 수업해야 함’ 하고 울상이고, 학생은 ‘……살려줘요’ 하고 죽을 상이다.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가만 생각하고 있자니 요즘 유행가 구절이 떠오른다. ‘나도 어디서 꿀리진 않어, 아직 쓸만한 걸 죽지 않았어, 그런데, 너 하나 때문에 망가진 몸, 사라진 꿈, 불타는 맘’ 공감 100% 아닌가?

시험지옥 속에 바보들의 행진

당연한 얘기지만, 우선 대한민국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또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학생으로서 일제고사에 반대한다. 반대하는 이유? 우선, 너무나 당연하게도 시험은 1년 4번으로 많다는 거다. 그 이상 보면 나 울지도 모른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돌연변이도 간혹 있는 모양이지만, 공부는 상당히 힘들다. 특히 시험이 주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보통 시험 보기 2~3주 전부터 시험기간이라 하여, 시험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는데, 이때 학원에서 내는 숙제, 공부하라는 부모의 잔소리, 잘 봐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 등이 겹쳐진다. 내 경우는 이러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불안으로 손톱을 물어뜯기도 한다. 시험이 끝나면 성한 손톱이 없을 정도다.

스트레스뿐인가? 하루에 대부분을 공부는 안 하더라도 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책상에 갇혀있게 된다. 그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아프다. 중3인데.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친구와 생기는 묘한 분위기. 내 친구가 나보다 시험을 잘 보면,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심한 경우는 그걸 원인으로 싸움이 나기도 한다.

이딴 시험을 줄일 생각을 해야지, 늘리면 도대체 어쩌겠다는 건가? 이미 수행평가에, 중간기말고사에 시험은 너무나 많았다. 일제고사 시험은 내신에 반영이 안 되니까 부담이 없을 거라는 건 헛소리다. 내신에 반영하겠다는 학교들도 많고, 제대로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내라는 학교의 압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충 봤다가 미달이라도 나오면 수치스럽기도 하고, 강제로 보충수업에까지 끌려가야 한다.

학생들을 숫자로 만드는 일제고사

두 번째로, 일제고사는 우리를 줄세운다. 학교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숫자이다. 내가 부른 노래도, 내가 그린 그림도 모두 수행평가점수라는 숫자가 된다. 나의 학교생활에서의 태도도 ‘태도점수’라는 숫자가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의해 ‘나’도 숫자가 된다. 그리고 그 숫자들에 순위가 매겨지고, 그 순위로 평가된다.

뭐, 사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순위니까. 그 순위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 그러면, 대학에 가지 못한다. 대학에 가지 못하면, ‘무능한 놈’이 된다. ‘필요 없는 놈’이 된다. 그러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든 순위를 올려야 한다. 순위를 올려야 한다. 순위를 올려야 한다. 순위를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죽어라고 공부만 해야 한다. 몇 명이 그렇게 한다면 나머지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뒤처지니까.

   
  ▲ 사진=교육공동체 ‘나다’

일제고사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줄을 세우면 이런 식으로 공부만을 강조하고, 공부만 해야 한다는 풍조가 퍼질 것이다. 결국 이제는 중3부터는 대학입시를 준비해야만 한다. 일제고사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일제고사가 지나고 남는 것은 피폐해진 심신과, 앞으로 펼쳐질 지옥 같은 공부의 나날뿐이다.

이러한 공부의 나날들이 펼쳐지게 되면 또 사교육이 엄청나게 판치게 될 것이고, 그 사교육과 공교육의 틈새에서 학생들만 죽어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죽고싶지 않다. 나는 그런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죽음의 낭떠러지를 향하는 바보들의 행진에 반대하는 것이다.

난 죽고 싶지 않다

일제고사, 전국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과목의 같은 문제를 푸는 것, 우리가 무슨 좀비냐? 다 똑같이 그러고 앉아있게. 그런 식으로 해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코메디다.

권력자들의 웃기지도 않는 촌극에 도대체 왜 우리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학생들이 공부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어떻게 하면 종이 몇 장에 인쇄된 선택지 5개 중 하나를 고르고, Tom이 전화를 건 목적을 알아맞히고(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석출된 붕산칼륨의 양을 구하고, 삼각형의 높이를 구하고,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운 목적을 알아맞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학생들의 능력과 적성이 일제고사 시험 성적으로 평가될 수 있단 말인가? 절대 불가능하다.

일제고사를 계속 강행하는 것은 그냥 우리를 죽이겠다는 심산이다. 아니, 의도야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는 학생들은 죽어나가게 되는 시험이다. 난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 공부에 깔려서,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학원에 치여서 죽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일제고사에 반대한다. 일제고사는 원래 입시지옥에 살던 학생들을 ‘헬 오브 지옥’, 지옥 속에서도 더 지옥에 처넣는 첫걸음이다. 이것은 단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학생들의 일시적인 반항이나, 공부하기 싫은 것들의 투정이 아니다. 한 번 살아보겠다고, 그저 한 번 살아보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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