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국제인권법정에 세우고 싶다
        2009년 09월 28일 07:52 오전

    Print Friendly

    어제 저희 학교에서 저와 저희 동료들이 주최했던 ‘불교와 군사주의’라는 국제학회를 두루 다 마쳐 이제는 조금 숨을 돌리고 있습니다. ‘접빈객’이란 서생의 본질적인 명예로운 의무겠지만 여러 손님들의 이런저런 일을 해결해드리고 행사를 조직하는 것은 제게 보통 힘든 일은 아닙니다.

    평소에 글을 읽고 쓰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이다 보니 ‘현실세계’에서 뭔가를 조직할 때가 되면 이렇게 당황하고 힘들어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여간 학회가 재미있게 잘 진행돼 부처님께 감사를 드릴 일입니다.

    국제학회에서 일어난 일

       
      ▲필자

    이 학회하다가 한 가지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오신 한 학자 분께서 명치 일본의 고승대덕인 석종연(샤쿠 소오엔: 釈宗演, 1859-1919)의 러일 전쟁 때의 종군승 행각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석종연은 비록 로서아를 ‘악마’라고 부르고 일러전역을 ‘항마’, 즉 악마를 항복케 하는 불사라고 부르는 등 일본 군국주의를 불교적으로 합리화한 노릇을 맡았지만 이와 동시에 로서아군의 부상자와 전몰자를 보면서 이를 불쌍히 여기고 눈물을 흘러주는 자비심도 보였다"라고 하여 그 석종연의 ‘이중성’을 지적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한국에서 오신 한 유명하신 교수님께서 크게 웃으면서 이렇게 일갈하셨어요. "참, 당신은 동아시아권의 유교적 사고 방식을 잘 모르시는군. 여기에서는 일단 국가를 섬기는 노릇이 된다면 멸사봉공 이공위천이지, 개인적으로 적을 불쌍히 여기고 이러는 게 있었다 해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거에요.

    석종연은 명치천황의 충실한 신하였으며, 신하로서 ‘악마’인 러시아군을 무자비하게 살상하고 대일본제국의 완승을 거두는 것은 목숨과 맞바꿀 과제로 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장에서의 대다수의 공식 발언, 즉 법어를 봐도 ‘적을 죽이란’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지요. 그게 ‘공’을 하늘로 삼는다는 논리죠. 그리고 자비스러운 척하는 게 직업 윤리 문제라고요. 그렇게 약간이라도 안하면 누가 고승대덕 대접 해주겠어요?"

    즉, 석종연의 그 어떤 ‘이중성’을 찾으려는 그 미국 선생의 노력이 결국 "불승이라면 좀 평화주의적이어야 한다"는 서구 불자의 소망적 사고의 소치고, 실제로는 철저하게 국가화된 명치 시대의 불교에서는 평화주의의 ‘평’자 도 보일 여지가 없을 만큼 ‘공, 즉 국가에의 봉사’의 열이 높았단 이야기였어요.

    글쎄, 석종연과 그 제자 스쯔키 다이세쯔 등을 아주 좋아하는 구미권의 선객들에게 듣기 안좋은 이야기지만, 이 한국 선생의 말씀은 일단 맞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석종연의 대다수 공사석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그에게 ‘공’이란 우주와 하나가 되는 천황의 국가에 심신을 바치는 일이었던 것이고, 이와 같은 철저한 사고의 소유자가 죽어가는 적군을 한 번 봤다고 해서 마음이 크게 움직일 일은 없었을 걸요.

    마음이 움직였다고 해도 그게 이중성으로까지 발전될 만한 요소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국을 신들의 나라, 즉 신국으로 보고, 천황을 대일여래쯤으로 보는 신정적 국가주의의 사고에서는 죽어가는 한 인간을 갖고 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를 부정할 수는 없죠. 그게 바로 근대 초기 동북아 국가주의적 질서에서의 ‘공’의 논리입니다.

    이산, 반인권적 폭력

    제가 그 ‘국가주의적 공 관념’에 대한 생각이 언제 다시 들었는가 하면, 최근 남북 이산 가족들의 상봉 장면을 인터넷 텔레비전으로 봤을 때였어요. 아니, 50년 동안 만나지 못한 모자, 부자, 모녀, 형제, 자매에게 기껏해야 2~3일의 같이 보낼 시간을 주고 그 다음에 서로 서신왕래도 불가능한 ‘이산’의 상태로 다시 돌려버리는 게 잔혹 행위가 아닌가요?

    도대체 국제 인권 관련 법률만 봐도 가족 재결합권이란 분명히 천부 인권 중의 하나입니다. 즉, 국가라고 해서 부모와 자식 내지 형제, 자매간을 강제로 분리시키고 재결합을 불가능케 만드는 것은 원칙상 반인권적인 폭력입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사고한다 해도, 그들에게 여생의 마지막 몇 년을 같이 보낼 수 있게 해드리는 게 과연 그렇게까지 ‘해국적’ 요소가 있나요? 청진에서 사는 서울 김 모씨의 80살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이 사는 서울로 영구적으로 돌아와 여생의 몇 년을 아들 가족의 품에서 보내신다고 해서, 그에게 연금/배급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득이면 득이지 손실 볼 게 없는 것 같아요.

    하여간 남북한 양쪽 당국에게 인권적 사고라는 게 있었다면 적어도 80세 이상의 제1세대 이산가족의 영구적 재결합의 권리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기 위해 노력이라도 했을 터인데, 지금 그렇게 해보자는 움직임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안보이네요.

    사실, 북한 당국과의 평화 공존 차원에서 각종의 원조를 적극적으로 해주고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면, 그 연장선상에서 그런 부분도 부탁해볼 수 있을 터인데, 김대중, 노무현 때도 별로 진척이 없었고 이제는 기대도 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공, 즉 국가’를 위해서 임종의 자리에서 아들을 보고 싶은 노인의 마지막 꿈을 짓밟아도 되는 모양입니다.

    남북한, 국제법적 책임져야

    이와 같은 이산가족 재결합 문제 관련해서 국가에 대해서 우리가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 부분부터 참 재미있네요. 석종연만큼이나 국가주의적 사고가 몸에 배어서 그런가요? 하여간, 국가의 분단에 개인들이 이렇게 희생되는 걸 당연시하는 분위기를 보면, 우리가 석종연보다 더 진화된 것 같지도 않네요.

    정말 제가 법률가였다면 이산가족의 상시적 편지 왕래 및 영구결합을 가능케 만들려는 노력을 전혀 제대로 하지 않는 남북한 양쪽을 국제인권법정에라도 제소했을 것입니다.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엄마를 마음껏 안아드리지도 못하게 하는, 그러한 류의 두 개의 한반도 안보국가들은 분명히 무거운 국제법적 책임을 져야만 이 세상에 정의라는 게 상대적으로나마 구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